김정은 절대권력 체제 “2인자는 없다”
  • 임을출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 승인 2015.12.17 18:33
  • 호수 136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성택 숙청 2년, 북·중 관계 개선과 북한 경제 호전 조짐 뚜렷

12월12일은 북한의 2인자로 군림하던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전격적으로 처형된 지 2년째 되는 날이다. 장성택 처형 소식은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갓 출범한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 불안의 시선과 달리, 김정은 유일 영도 체제는 더욱 공고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공포 정치에 따른 북한 내부 엘리트의 동요를 추측하는 시각도 적지 않았지만,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작은 틈의 체제 균열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어쨌든 장성택의 사형 집행은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국가전복음모 혐의로 숙청이 결정된 지 나흘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지면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공포 통치를 국제사회에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김 제1위원장이 고모부이자 2011년 12월17일 김정일의 사망 이후 자신의 후견인 역할을 하던 장성택을 처형한 것은 무엇보다 ‘김정은 유일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포석으로, 결과적으로 김정은의 의도는 적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13년 12월12일 북한 보위부는 장성택에게 ‘국가전복음모의 극악한 범죄’로 사형을 선고하고 바로 집행했다. ⓒ 조선중앙통신연합

돈주·자영업·부동산·핸드폰 등이 키워드

앞서 김 제1위원장은 2012년 7월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할 목적으로 군부 실세였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을 숙청했다. 장성택 처형 이후로도 올해 4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하고, 지난 11월 초에는 최룡해 노동당 비서를 함경도 소재 협동농장으로 혁명화 교육을 보내는 등 김정은은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김정은 체제에서는 1인자만 존재할 뿐 2인자, 3인자도 있을 수가 없게 됐다.

김정은은 확고히 틀어쥔 권력을 토대로 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핵병진 노선을 밀어붙이며 핵개발과 경제 건설을 위해 매진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형성된 ‘고모부를 처형한 잔인한 지도자’라는 인식을 하루빨리 지우겠다는 듯 그는 사회주의 문명국가 건설을 기치로 내세우며, 북한을 리모델링하는 데 주력했다. 요즘 북한 내부 변화의 속도와 내용들을 키워드 중심으로 들여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돈주(신흥 부유층), 자영업, 건설 붐, 국산화, 온라인 쇼핑몰, 부동산 등 각종 시장, 핸드폰, 전자결제 카드, 경제개발구, 위락시설, 우주과학기술 등. 일부 현상은 이전부터 불거진 것들이긴 하지만, 김정은 시대는 아버지 김정일 시대와 확연히 다르다.

우리 정부의 5·24 조치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는 호전 조짐이 뚜렷한 것으로 보인다. 평양·신의주·혜산 등 북한 내 주요 도시를 기준으로 보면 북한 시장 환율이 8000원선으로 하향 안정화됐고, 장마당(시장) 쌀 가격도 5000원대가 유지되고 있다.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시장의 수를 통해서도 북한 경제의 호전이 읽힌다. 북한 경제는 이미 되돌리기 힘들 정도로 사회주의 틀 안에서의 시장화가 크게 진전됐고, 이에 따라 주민들의 사적인 부 축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유통·금융·관광 등 3차 서비스산업의 변화도 눈길을 끌었다. 북한은 그간 유통업에서 새로운 형태의 국영상점 개설, 온라인 쇼핑몰 구축 등 국영 유통망을 강화해왔다. 금융 분야에서는 직불카드 확대, 전자상거래 등 일부 새로운 금융 거래 방식을 도입했다. 또한 북한은 2013년에 관광산업을 ‘경제강국 건설’을 위한 중요 과업 중 하나로 제시하면서 적극 육성해왔다. 평양공항 2청사 준공, 평양관광대학 설립 등 적극적으로 관광 인프라를 구축했다.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 체제 경제정책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수입병’을 질타하며 국산화를 강력하게 추진한 점이다. 중국 상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되찾으려는 김정은의 의도가 강하게 작용했다. 결국 오늘날 북한 시장에서는 북한산 경공업 제품이 점차 중국산을 밀어내고 있는 놀라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경공업 국산 제품을 많이 생산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김정은 브랜드의 ‘새 경제 관리 체계’가 조금씩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앙에서 우선적으로 전기와 원료, 자재들을 대주어 ‘새 경제 관리 체계’를 도입한 상당수 공장·기업소들에서는 국산 제품 생산이 활기를 띠고 있다. 물론 아직은 걸림돌이 적지 않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비롯해 만성적인 전력 및 원부자재 부족 등이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친중파로 분류된 장성택의 처형 이후 북·중 관계는 살얼음 위를 걷는 듯했다. 장성택이 처형된 2013년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체제가 공식 출범한 해였다. 중국과 혈맹임을 과시했던 북한이 시진핑 체제가 출범하자마자 북·중 경제 협력의 상징으로 통했던 장성택을 처형한 것은 북·중 관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했다. 그해 2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에 크게 분노했던 시진핑 지도부는 장성택이 처형되자 설상가상으로 김정은 체제를 더욱 불신하게 됐다. 특히 북한이 장성택의 죄목 중 하나로 “나라의 귀중한 자원을 헐값으로 팔아버리는 매국행위를 했다”며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에 크게 당혹스러워했다. 2014년 2월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의 방북을 마지막으로 양국 간에 고위급 인사 교류가 1년 반 이상 중단된 것이 이를 잘 방증한다.

북한 주민들의 사적(私的) 부 축적 가속화

하지만 북·중 관계는 지난 10월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에 권력 서열 5위인 중국 공산당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이 참석한 이후 개선되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과 류 상무위원은 단독 회담에 이어 열병식에 나란히 참석하는 등 우호 관계를 과시하며 양국 관계의 복원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대신 북한은 국제사회의 우려를 샀던 장거리 로켓 발사를 하지 않는 등 중국의 체면을 세워줬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북·중 당국 간 관계가 악화하면서 답보 상태를 보였던 나선경제특구 개발 등 정부 간 사업도 조심스럽게 재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 지방정부와의 경제 협력이나 민간 교류는 장성택 처형과 무관하게 이뤄져왔지만, 앞으로 더욱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결국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 여부가 북·중 관계 복원의 속도와 교류·협력의 수준을 좌우하는 관건이 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