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장묵의 테크로깅] “나무야 나무야,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니?”
  • 강장묵 |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 (.)
  • 승인 2015.12.31 18:32
  • 호수 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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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물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사물인터넷’이 가져올 미래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시대가 되었다. 혹자는 ‘만물인터넷(IoE; Internet of everything)’ 시대라고도 말한다. 사물이든 만물이든 쉽게 설명해서, 우리가 쉽게 마주치는 ‘나무와 대화한다’고 말해보자. 나무와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듣고 싶은가?

 

시인이라면 낭만적인 대화를 꿈꿀 것이다. 연인이라면 둘만의 사랑을 나무가 기억해주길 희망할 것이다. 만약 경찰이라면? 어젯밤 도둑이 나무 앞에서 무슨 작당을 했는지, 혹시 증거 파일이나 녹음된 내용은 없는지 나무에게 물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불가능하다고? 나무가 인터넷에 연결되면, 횡단보도의 나무는 행인의 이동 숫자를 셀 것이다. 아파트 난간의 나무는 자동차가 후진으로 주차하려는 순간 운전자에게 ‘매연가스 때문에 살기 힘들다’고 푸념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작은 영상 카메라나 나무의 성장을 재는 센서 등을 삽입하고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정보를 올리면 된다. 클라우드 네트워크는 덤이 되는 것이다.

 

ⓒ 일러스트 권오환

바야흐로 테크놀로지의 시대가 열렸고 우리 사회는 연결이 극도로 복잡해진 초(超)연결 사회에 이르렀다. 지난 1000년의 기술이 산업혁명 100년의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듯, 장래 5년의 기술 변화가 지난 수십 년의 기술보다 급변할 것이다. 기술 변화가 이처럼 큰 시대에도 변곡점이 있다. 사물, 더 나아가 만물과 연결된 세상이 열린 것이다.

 

‘애플민트’라는 산뜻한 화초가 있다. 이 허브는 집에서 키울 수 있고 더러 샐러드에 넣어 먹거나 말려서 차로 마신다. 맥주를 마실 때 재미 삼아 띄워놓고 마시면 은은한 허브 향이 난다. 잘 자라고 있는 애플민트를 볼 때 언제 잎을 따면 좋을지, 오늘은 방 안 공기가 얼마나 혼탁한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수 있다. 물론 화초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화초의 잎이든 화분이든 어디에든, 화초의 생육과 상황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넣어두고 화분 속에 스피커도 넣어보자. 물을 언제 줄지, 오늘은 햇볕 드는 창가에 옮겨두면 좋을지를 스피커를 통해 말해주게 된다. “물 주세요” “창가로 옮겨주세요” “잎이 잘 자랐으니 한 잎 따서 말려 드세요”라고 애플민트가 말해준다면 어떨까. ‘사물인터넷 아니 만물인터넷 서비스란 이렇게 따뜻하구나’라는 생각마저 든다.

 

필자는 올가을에 라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저런 살가운 인공지능이 존재한다면 밤마다 송곳처럼 찌르는 외로움을 무디게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영화는 단순한 컴퓨터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인 사만다와 그런 그녀와 시간을 나누는 주인공 테오도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컴퓨터 입장에서 인간은 변덕이 심하고 들쑥날쑥하다. 더러 사람들은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하기도 한다. 반면 사물에 인터넷을 연결하면? 사람이 쿵쾅쿵쾅 보도블록 위의 압력 센싱을 누르며 달리고 있다고 치자. 그러면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정보가 손목시계를 통해 감지되고 땀을 흘린다는 촉촉함도 웨어러블로 체크된다. 컴퓨터는 사물을 마치 사람의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분석할 수 있게 되는데, 인공지능 연구에서는 이게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사물인터넷은 요즘 유행하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정교하게 만드는 정보원을 세상에 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상이 말을 하고 의자가 속닥거리는 세상


눈을 감고 2020년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5년 남짓 남은 기간은 짧을 수 있지만, 자율주행 자동차가 기존의 횡단보도를 새롭게 이해하고 움직이는 자동차가 자기들끼리만 대화를 하며 운전자를 ‘왕따’시킬 세상이 올 수도 있다. 운전자가 끼어들지 않아도 알아서 차들끼리 양보하니 도로에서 더러 운전자끼리 언성을 높이는 진풍경은 사라질 듯싶다. 그뿐이랴. 집 앞 상점에서 쌀과 채소를 주문하면 드론이 날라주는 서비스를 이제는 스마트 배송이라 명명할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이런 미래 청사진은 여러 기술들과 함께 진화한다. 그 첫 단추가 바로 사물인터넷이다.

 

자동차가 자율주행을 하려면 도로를 읽어야 한다. 운전자는 눈으로 도로를 읽지만, 자동차는 CCTV만으로 영상을 판독하기 때문에 아직 정확성이 높지 않다. 이럴 경우 도로에 압정만 한 작은 센서들을 삽입해도 자동차가 얼마나 뜨거운 도로 위를 달리는지, 센서와 센서 사이를 지나는 속도는 얼마나 빠른지, 도로에 물이 있어 어느 정도 미끄러운지, 살얼음이 맺혔는지, 눈이 쌓였는지를 판독할 수 있다. 이때 도로 속에 깨알같이 들어가서 자동차와 속닥거릴 이야기꾼이 바로 사물인터넷이다.

 

이런 기술은 우리 삶의 질서를 바꾼다. 예를 들어보자. 운전자는 눈으로 차선을 파악하고 보행자는 횡단보도의 빨간불과 파란불로 길을 건널지 말지를 판단한다. 그러나 자율주행 자동차는 색맹이다. 운전자와 보행자만큼 눈으로 본 정보를 빠르게 분석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더 이상 차선을 그리기 위해 흰색 도료와 노란색 도료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 자율주행 자동차에게는 오히려 차선을 그리는 대신 센싱 즉 사물인터넷을 도로 위에 덧붙이면 된다. 그러면 자율주행 자동차는 더 정확하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게 된다.

 

아마도 페인트를 생산하는 사업주 입장에서는 사물인터넷이 자신의 사업과 전혀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앞선 설명처럼 도로 위에 사용되는 페인트양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동시에 어떤 페인트는 그 속에 사물인터넷과 같은 센싱 물체를 음료 속 알맹이처럼 품고 있어서 도로 위에 사용될 수도 있다. 또는 하늘에서 볼 때 전파 신호를 더 잘 잡을 수 있는 안테나를 비행기 활주로에 그려 넣을 수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 사물에 인터넷이 들어오면 죽었던 사물은 생명을 얻은 듯이 재잘거리게 된다. 이제 우리는 귀를 쫑긋하고 책상이 말을 하고 의자가 속닥거리고 전구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상을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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