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우울증·불안장애 일반인의 15배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1.07 16:49
  • 호수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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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진단> 소방관의 정신건강 ‘빨간불’…“현장 출동한 날엔 술 안 마시면 잠도 못 자”

“구급출동, 구급출동. 구로구 신도림역 투신사고. 구급출동, 구급출동.”

2015년 12월22일 오후 3시40분. 서울 구로구 구로소방서 건물 전체에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현장지휘차량 1대와 순찰차, 4대의 구급차, 구조대 버스, 구조대 장비차, 펌프차, 탱크차가 소방서를 빠져나왔다. 화재진압요원들과 구급대원, 구조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차량에 올라탔다.

사고 지점은 신도림역을 불과 200여 m 앞둔 KTX 선로 구간. 구로소방서로부터 3㎞ 떨어진 지점이었다. 20대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부산을 출발해 서울역을 향해 가던 무궁화호 열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철로 위의 남성을 발견한 무궁화호 운행요원이 급정거를 시도했지만 이미 사고는 벌어진 뒤였다.

사고 현장은 참혹했다. 철로 중간에 멈춰선 열차 아래로 시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들은 사고 당사자의 생사 여부를 판단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미 사망이 확실한 사고라 할지라도 ‘혹시 모를’ 생존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열차 아래 동강 난 시신은 이미 생명을 잃은 지 오래였다. 소방관들은 시신 위에 담요를 덮어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차단했다. 여기까지가 소방관들의 몫이었다.

2015년 12월1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의 상가건물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인명 수색 작업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에휴, 고생하셨습니다. 요즘 세상이 흉흉한가 이런 일이 자주 생기네.”

신도림역 입구 자동차도로에 세워둔 소방차량으로 가는 소방관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각자의 차량으로 돌아온 그들은 “수고했다” “고생했다”며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들의 말 속에는 묵직한 슬픔, 그리고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구조대원으로 일하다 보면 별별 환자를 다 본다. 누구는 평생 가도 안 볼 것들이지만. 끔찍하고 잔혹한 현장일수록 잔상(殘像)이 오래 남는다. 그 충격이 꽤 크다.”

구급대원 양 아무개씨의 표정이 굳어졌다. 특전사 출신의 그는 군 선배의 추천으로 소방관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3년 차 구급대원이 되어 있지만 그는 “참혹한 현장을 보는 건 힘들다”고 말했다. 끔찍한 사고 현장을 수습한 날이면 선배 소방관들이 술 한잔 사주면서 “누구나 다 겪는 일이다. 이거 마시고 잊어라”며 위로해주지만 사고의 잔상은 그 후로 며칠이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불안장애에 우울증 앓는 소방관들

참혹한 사고 현장을 보기 힘든 건 선배라도 마찬가지다. 올해로 20년 차가 되는 한 베테랑 소방관은 “지금도 현장에 다녀온 날이면 술 한잔 하지 않고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중순 김승섭 고려대 교수(보건정책관리학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으로 실시한 ‘소방공무원 인권 상황 실태조사’에서 정신건강 고위험군 판정을 받았다.

소방관 임용 초기 사고 현장에서 투신해 자살한 시신을 수습해야 했다. 그는 “당시에는 선배들이 마대를 하나 던져주고 바닥에 흩어진 시신을 주워오라고 했다”며 “오랜 시간이 지나 그런 것들을 봐도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정도로 정신을 단련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마음의 병으로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직업 특성상 사고 현장에서 받은 충격을 겉으로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병은 더 은밀하게 커져간다. 그는 우울증 증세로 신경성 고혈압과 두통을 호소했으며 음주가 잦아졌다. 시사저널이 만난 대다수 소방관은 업무 중 불가피하게 경험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음주를 통해 해소하고 있었다.

김승섭 교수팀의 조사 결과 ‘우울증·불안장애를 겪고 있다’고 답한 소방관은 전체 응답자 7541명 가운데 1467명(19.4%)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제3차 근로환경조사 당시 일반 근로자의 우울증 유병률이 1.3%였던 것과 비교하면 15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또 조사 기간 동안 ‘지난 일주일간의 우울 증상 경험 여부’를 물은 결과 응답한 7345명의 소방관 중 20.8%가 지난 일주일 동안 우울 증상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승섭 교수는 “이는 비교 대상인 일반 근로자(제1차 한국복지패널조사, 2006년)에서 관찰된 8.2%의 2배가 넘는 수준”이라며 “소방관들의 업무피로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언제 어느 위험한 장소로 출동할지 모르는 소방관들은 만성적으로 긴장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 경력 18년인 한 소방관은 “피가 흥건한 현장에서 사고 처리를 하고 병원에 가서 환자 이력을 조회해보니 에이즈 환자더라”며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소방관 3명 중 1명 수면장애 호소

중앙소방본부(옛 소방방재청)가 2014년에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에 의뢰해 실시한 전국 소방관 대상 심리평가 결과 역시 앞선 연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국 소방관 3만7093명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소방관들의 심리질환 유병률이 일반인과 비교할 때 적게는 4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에 따르면 소방관들은 연평균 7~8회 참혹한 현장에 노출되며 연간 15회 이상 노출되는 소방관도 5300여 명(약 14%)에 달했다. 소방관 3명 중 1명이 수면장애를 호소했으며, 외상후스트레스장애·알코올사용장애·우울장애·수면장애 중 한 가지 이상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3만6912명 가운데 1만4452명(39%)에 달했다. 사고 현장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업무 특성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한 소방관은 “야간 근무를 할 경우 선잠을 자면서도 출동 경보에 신경 써야 한다. 비번이라 집에 와서 잘 때에도 얕은 잠을 자는 게 습관처럼 돼버렸다. 빨리, 깊이 잠들려면 어쩔 수 없이 술에 의존하게 된다”고 말했다.

강도 높은 정신적 고통 경험에 비해 제때 치료받는 소방관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1개월 이내에 치료를 경험한 적이 있는 소방관의 비율은 3.2%, 1년 내에 치료 경험이 있는 소방관은 6.1%에 불과했다. 한 소방관은 “고위험군으로 진단받으면 그 치료 과정이 더 많은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위에서 눈치를 주는 경우도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지난 수년간 거짓으로 각종 심리평가에 임했었다. 아마 나 같은 동료 대원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는 연구 결과보다 훨씬 더 많은 소방관이 우울증과 수면장애,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정신적 피로의 누적으로 인한 정신·심리질환이 더 큰 2차, 3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소방관은 직무 특성상 일상적으로 위험에 노출돼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등 심리적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고강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나 우울증의 경우 개별적 회복에 맡겨놓을 만한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충격적인 감각적 경험으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오래 두고 잊으려 하다가는 상처만 더 커질 수 있어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전국 소방관들은 매년 건강검진을 받는다. 이 가운데 응급 현장 처리를 담당하는 구급대원들은 연 2회의 건강검진을 받는다. 또 매년 특수건강진단이 이뤄져 고위험군을 미리 진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행 특수건강진단은 신체건강진단 위주의 검사로 이뤄져 문제점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부좌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5년 11월 소방관의 정신질환 예방 및 치료를 강화하는 내용의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현행법에 따라 실시하고 있는 특수건강진단 항목에 정신건강을 포함하고, 대면 상담 등 정신질환적 징후 발견에 효과적인 검사 항목으로 구성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직 소방관들로 이뤄진 조직인 한국소방발전협의회 소속의 한 소방관은 “지금의 심리치료는 일시적 교육에 머무르고 있다”며 “소방관 전문 병원 등을 통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22일 서울 구로소방서에서 출동한 소방관들이 긴급 구조 활동과 사고 현장 수습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 시사저널 김경민

“심리치료, 일시적 교육에 머물러”

지난 2012년 소방관 중 응답자의 36.8%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고위험군으로 분류되고 소방관들의 직무 스트레스가 일반 평균치보다 높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소방관의 심리치료비 명목의 예산이 편성되기 시작했다. 2014년 국회예산정책처의 소방방재청(현 중앙소방본부) 결산자료집을 보면, 2012년 편성 예산의 9%인 5300만원, 2013년에는 23%인 1억8200만원을 소방관의 심리치료비로 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소방본부는 정신과 치료 지원과 함께 심신건강캠프를 병행해 운영하고 있다. 또 2015년부터 각 관서마다 ‘심리센터’ 설치를 확대해오고 있다. 안마의자와 휴식기기 등을 제공해 관내에서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도에서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소방관은 지방직 공무원이기 때문에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련 예산이 나온다. 지자체 예산 규모에 따라 소방서 복지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심리센터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 소방관은 “전문 상담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TV랑 의자 갖다 놓고 심리센터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또 하나의 탁상행정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좀 더 실질적으로 소방관들의 신체적·정신적 노동의 강도를 해소시켜줄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관의 업무 스트레스 요인을 근본적으로 최소화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력 부족 문제다.

한국 소방관의 근무 체계는 지자체별로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3교대 형식을 채택하고 있다. 3교대가 비교적 잘 지켜지는 서울 지역과 달리, 일부 지방의 경우 2교대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인력 상황이 낫다는 서울 지역에서조차 ‘구급대원 3인 출동’ 명령이 떨어져도 인력 부족으로 인해 두 명이 출동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열악한 근무 조건에 비해 응당한 치료나 처우를 받지 못하는 것도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다.

김승섭 교수는 “소방관들의 정신건강 이슈를 단순히 치료해야 할 질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소방관들의 물리적·사회심리적 스트레스 요인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근로 환경의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자체별로 제각각인 교대 근무 체계와 열악한 재정 문제의 해결도 요구된다. 김엽래 경민대 교수(소방안전관리학과)는 “결국 모든 것이 재정의 문제”라며 “소방관도 경찰처럼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는 게 우리 소방관들의 자부심이다.” 한국소방발전협의회 소속 한 소방관은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시민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방관의 헌신이 당연한 것만은 아니다”라며 “사회에서 소방관의 처우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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