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반기업·반재벌 정서 심각한 수준
  • 최문기 | 서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한국윤리학회 부회 (.)
  • 승인 2016.01.07 16:56
  • 호수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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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오너 일가들의 비리와 부도덕한 언행 연말까지 이어져 중소기업에서도 사고 잇따라

병신년(丙申年) 새해를 맞아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유난히 대기업 오너와 그 일가들의 비리와 부도덕성이 많이 회자됐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재벌 2·3세들의 부적절한 언행이 언론 매체에 보도될 때마다 국민들의 반기업·반재벌 정서는 더욱 커져갔다. 각종 탈세와 배임, 건설사 입찰 담합, 주가 조작 등과 같은 범법행위뿐만 아니라 마약 흡입, 원정 도박 등과 같은 삐뚤어진 일탈행위, 그리고 부하 직원에 대한 폭언과 폭행, ‘갑질’ 등과 같은 특권의식에서 나온 부당행위, 더 나아가서 경영권 승계를 둘러싸고 벌인 형제간·부자간 다툼, 이혼 및 불륜 등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스캔들의 연속적인 보도는 국민들의 관심을 촉발하는 것을 넘어, 실망과 상대적 박탈감을 증폭시켰을 것이다.

당장 최근 며칠 새만 해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내연녀 및 혼외자를 인정하는 ‘커밍아웃’ 스캔들이 연말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비단 재벌가뿐만이 아니었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몽고식품의 김만식 명예회장이 직원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가한 사실이 전 국민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한 기업은 크리스마스 연휴 때 단합대회 명목으로 직원들의 지리산 산행을 강행했다가 40대 남성 직원이 숨지는 사태도 발생했다.

 

기업 오너 일가들의 불법적이고 부적절한 사건들이 유독 많았던 2015년, 몽고식품의 김만식 명예회장도 운전기사를 상습 폭행한 일로 12월28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들에게 사죄해야 했다. ⓒ 뉴스1

더 높은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이 요구돼

문제는 이러한 기업 오너와 그 일가들의 불법적이고 부적절한 사건·사고들이 단순히 개인이나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주·임직원·협력업체·고객 등을 망라한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 모두와 관련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왜곡된 오너십, 특권의식, 윤리의식 부재 등에서 비롯된 부적절한 행위들은 기업의 신뢰를 떨어뜨려 주가 폭락과 투자자 손실을 야기하고, 반기업·반재벌 정서, 불매운동 등을 초래함으로써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방해해 결국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기업 오너들의 사회적 책임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흔히 사회 지도층이 모범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고 한다. 부와 권력과 명성을 지닌 사회 지도층에게는 그만큼 더 높은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이 요구됨을 의미한다. 급변하는 국내외 기업환경의 변화에 비추어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업의 윤리경영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로 인식되고 있다. 국제화·개방화 시대에 즈음해서 국제적으로 뇌물 제공과 같은 부패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부패 라운드’가 미국 주도하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에 적용되고 있다. 그리고 탈세, 환경오염, 허위·과대 광고 등에 의존하는 비윤리적인 거래 관행은 ‘윤리 라운드’에 의해 강하게 규제를 받고 있다. 국내적으로도 OECD 회원국들 간의 뇌물방지법이 적용되고 있는 탓에, 기존의 낡은 지배주주와 CEO(최고경영자)에 의존해 기업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기업 경영의 관행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발붙일 여지가 없게 되었고, 비윤리적 기업에 대한 사회적 신뢰성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흔히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이나 목적을 두 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나는 기업이란 주주의 소유 재산이고, 주주들이 선정한 이사회와 CEO들은 주주들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주뿐만 아니라 종업원·협력업체·고객·지역사회·여론 등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이해관계자들의 전체 이익을 더 폭넓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곧 전자에만 치중한 데서 벗어나 후자까지도 고려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기업들, 여전히 경제적 책임 완수에만 집중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강제성의 정도에 따라 크게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구분되기도 한다. 첫째, 경제적 책임은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이 기업 경영자에게 이익이나 배당을 극대화하고, 시장이나 기술의 점유율을 높일 것을 요구하는 책임이다. 이에 기업은 각종 경영 전략, 기술 혁신, 인사 정책 등을 통해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윤과 고용을 창출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둘째, 법적 책임은 법률이나 규정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기업을 합법적으로 투명하게 운영하고, 바른 정보를 제공하며, 성실하게 납세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뇌물, 주가 조작, 가격 담합 등과 같은 불법적인 행위들은 처벌을 받는다. 셋째, 윤리적 책임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치관이나 윤리규범에 일치해서 기업을 운영해야 할 책임으로서 신뢰, 투명 거래, 인권 존중 등에 유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선활동 책임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불우이웃돕기, 사회봉사, 장학금 지원 등과 같은 기부나 자선활동을 하는 것으로서, 앞의 세 가지에 비해 강제성이 가장 약한 편이다. 따라서 기업들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책임은 아닌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런데 주주나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은 불가피하게 경제적 책임을 완수하는 데 우선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이윤 극대화 과정에서 법적이고 윤리적인 책임에는 등한시해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예를 들면, 미국의 기업 엔론(Enron)은 회계장부의 조작으로 인해 2001년 파산했고, 지멘스(Siemens)는 계약 체결 시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오늘날 기업이 담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란 바로 최소한의 합법적인 활동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경제적 책임과 법적 책임만의 완수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윤리적 책임이나 자선활동 책임까지도 자발적으로 완수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자사(子思)는 <대학(大學)>에서 “뜻이 정성스럽게 된 이후에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야 몸을 닦을 수 있으며, 몸을 닦은 이후에야 집이 가지런해지고, 집이 가지런해진 이후에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고, 나라를 다스린 이후에야 천하가 태평해진다”(心正而后 修身, 修身而后 家齊, 家齊而后 國治, 國治而后 天下平)고 역설했다.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재벌 2·3세들과 크고 작은 기업의 경영진들은 엄격한 자기 수양을 기반으로, 가정과 사회와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는 대업을 수행해줄 것을 새해를 맞아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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