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라 버릴수록 행복해진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1.07 16:58
  • 호수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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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일고 있는 ‘미니멀 라이프’ 바람…물건에 대한 신경 끊고 행복을 찾는 삶

작은 창문이 달린 약 20㎡(6평) 남짓한 월셋방에 책상과 의자, 옷가지를 걸어둔 행거, 이불이 있다. 딸린 욕실에는 치약, 칫솔, 클렌저, 샴푸, 수건이 덩그렇다. 수납장에는 밥그릇·국그릇·숟가락·젓가락이 한 개씩 있다. 김지은씨(가명, 여·35)가 소유한 세간살이 전부다. 침대·TV·장롱같이 덩치 큰 물건은 없다. 그는 “차 한 대에 실을 수 있는 양만큼의 물건만 가지고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3~4년 전만 해도 그는 물건에 집착이 컸다. 직장생활 10년 동안 쌓인 서류더미, 전자제품, 옷가지 등으로 넘쳐난 방은 앉을 자리도 없을 정도였다. 그즈음 야근에다 직장 상사와의 마찰 등으로 회사생활에도 염증을 느꼈다. 심신이 지친 그는 주변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라면박스 10개 분량의 물건을 버렸다. 언젠가 입을 것이라고 묵혀둔 옷가지를 사회단체에 기부했고, 계절별로 15~20벌 정도만 남겼다. 남은 신발은 10켤레가 안 되고 가방도 2개다. 화장품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만 가지고 있다. 그는 “물건이 많을수록 사물에 대한 욕심이 강했는데 물건을 버리니 집착하지 않게 됐다”며 “그 대신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스트레스 받으며 지냈던 10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자신이 가치를 둔 홍보 일에 매진하고 있다. 물건보다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 김씨는 “불만·시기와 같은 감정의 찌꺼기가 사라지면서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게 됐다”며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를 선택한 것이 삶을 바꿨다”고 강조했다.

“물건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 같다”

‘미니멀 라이프’는 말 그대로 최소한의 삶이다.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 꼭 사용하는 물건만 소유하는 것이어서 ‘사물 다이어트’라고도 표현한다. 많은 짐을 덜어낸 삶이라는 뜻에서 ‘다운사이징 라이프’라고도 한다. 이를 실천하는 사람을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라고 부른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미니멀리스트다. 한때 애플에서 쫓겨났던 그가 복귀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오래된 서류와 장비를 없애는 일이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제품을 내놓는 일에만 집중하고자 그 외의 것은 최소화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아이폰의 단순함에 세계는 열광했다.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미니멀 라이프 바람이 불고 있다. 예컨대 ‘333 프로젝트’는 3개월(한 계절) 동안 33개 의류(속옷·신발·액세서리 포함)로 살자는 움직임이다. 이런 분위기가 점차 국내로도 전해지고 있다.

한국교육방송공사(EBS)는 최근 서울 명동에서 시민들의 의식을 조사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물건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러면서도 가능하면 물건을 넉넉하게 가지고 살고 싶다고도 했다. 독일 주간신문 ‘차이트(Die Zeit)’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 사람이 소유한 물건 수는 1970년 6000개에서 2011년 1만 개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은 약 20%밖에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직장에 있는 서류의 85%는 다시 보지 않는 것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이 소유한 물건을 살펴보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의외로 많음에 놀란다. 운동을 위해 산 러닝머신은 빨래 건조대로 전락하고, 고가의 캠핑 장비는 창고에서 썩어간다. 30대 주부 이미화씨(가명)는 “아파트단지에서 끌고 다니는 유모차, 놀러 갈 때 차에 실을 수 있는 간이 유모차 등 유모차만 3개인데, 집이 좁아서 문밖 복도에 놓는다”고 말했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게 인간의 심리다. 집에 옷이 넘쳐나지만 입을 옷이 없다며 백화점으로 달려간다. 사실 옷이 많은데 입을 게 없다는 것은, 입어서 행복한 옷이 아니라 사고 싶은 것을 샀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물건은 늘어나고, 이를 저장할 더 큰 집으로 이사한다. 물건이 쌓일수록 신용카드 빚도 늘어난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여유로운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고, 은행 대출 이자를 갚느라 등골이 휜다. 이는 결코 행복을 위한 생활은 아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려는 욕망과 그것을 남에게 보여주려는 허세에 초점을 맞춘 삶이다. 최근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기 시작한 40대 주부 임정우씨는 “버릴 물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두 달 동안 물건의 70%를 정리했다”며 “생각보다 많은 물건을 가지고 산다는 점에 놀랐고 물건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김지은씨가 단출한 자신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아무런 감정 느끼지 않는 물건은 버려라”

단출한 삶을 찾으려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미니멀리스트들은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는 게 우선이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막상 버리자니 아까운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사용할 일은 없지만 비싸게 산 물건이거나 추억에 깃든 것을 차마 버리지 못한다. 또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정리 전문가 윤선현 베리굿정리컨설팅 대표는 “버릴 것과 남길 물건의 기준은 값이나 추억이 아니라 ‘일’이다. 자신의 활동과 연결된 물건은 남기고 그렇지 않은 것을 버리면 된다”며 “또 다른 기준은 ‘감정’이다. 아픔이나 스트레스를 주는 물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물건은 정리 대상이다. 어느새 기분 좋은 물건만 남는다”고 설명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한 사람들은 물건이 없어서 불편할 것 같은데도 한결같이 물건을 사려는 욕심이 오히려 줄어든다고 말한다. 물건을 사고, 사용하는 데 허비하는 시간·돈·감정과 같은 에너지를 인간관계나 하고 싶은 일 등 자신이 가치를 둔 것에 집중할 수 있다고도 한다.

미니멀리스트 김지은씨는 “자신이 가치를 둔 것에 집중해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삶에서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고 가치 있는 것을 채우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라고 강조했다.

 

 

 냉장고·옷장은 칸별로 정리

냉장고와 옷장 정리법은 비슷하다. 일단 모든 내용물을 꺼낸 후 먹지 않을 음식과 입을 수 없는 옷을 버린다. 냉장고와 옷장은 칸으로 나뉘어 있다. 각 칸에 어떤 물건을 둘지를 정한다. 자주 사용하는 물건은 꺼내기 쉬운 곳에 둔다. 시간이 부족하면 한 번에 한 칸씩 정리해도 된다. 특히 옷을 잘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언젠가 입겠지’라는 생각과 비싼 옷이어서 아깝다는 집착 때문이다. 그러나 1년 동안 입지 않은 옷은 앞으로도 입지 않는다. 과감하게 처분해야 한다.

 

 주방 정리에는 박스 준비

주방은 물건이 늘어나고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이 있고, 필요 이상으로 많고, 보고 있으면 감정이 상하고, 어디에 쓰는지 모르는 물건을 버린다. 이때 박스를 준비하면 도움이 된다. 빈 공간을 채우고 싶은 게 인간의 심리이므로  더디게나마 필요 없는 물건으로 그 박스를 채우게 된다.

 

 읽지 않을 책은 과감하게 처분

책을 한 번 읽은 후 지속적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책장 속 책은 시간이 지나면서 먼지만 쌓이고, 새 책을 들여놓을 공간이 부족하다. 필요 없는 책과 참고할 일이 없는 책은 과감하게 버린다.

 

 회사 책상은 영역을 나눠 사용

컴퓨터 모니터 등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은 내용을 다른 곳에 옮겨 적은 후 버린다. 사용하지 않는 문구류는 공용함에 넣어 다른 사람이 사용하도록 하고, 종이로 된 자료는 내용을 컴퓨터에 저장하고 버린다. 회사에 있는 개인 물건은 집으로 가져간다. 출근 후 5분 또는 퇴근 후 5분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삼아 규칙적으로 책상을 정리한다. 책상을 사용할 때도 ‘업무’ ‘자료’ ‘인맥’ ‘아이디어’ 등 영역을 나눠두면 사용하기가 수월하다.

 

 정리하는 시간과 체력을 아끼는 법

시간을 내서 한 번에 온 집안을 정리하려면 시간과 체력 소모가 많다. 힘들면 정리를 하기 싫어진다. 이보다는 한 번에 방 한 개씩 또는 하루에 15분씩 정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매일 물건 1개 버리기

정리는 습관이다. 습관은 꾸준히 반복할 때 생긴다. 매일 물건 1개를 버리면 집 안 정리가 쉬워진다. 일이나 공부에 사용한 물건을 정리하지 않은 채 다른 일로 넘어간다. 그래서 쌓인 물건을 치우려면 시간과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정리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수시로 정리하므로 큰 노력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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