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제재 속에서도 남북 대화 노력 병행해야
  • 고유환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17 18:59
  • 호수 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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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나진-하산 프로젝트’ 보이콧 이후의 북핵 해결 방안

지난 1월6일 북한의 수소탄 핵실험과 2월7일 광명성 4호 로켓 발사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압박이 본격화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월2일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를 채택하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억지를 위한 자금줄 차단에 나섰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미국과 중국의 50여 일에 걸친 오랜 줄다리기 끝에 나온 유엔 대북 제재 결의는 북한산 광물자원 수입 금지, 항공유와 로켓 연료 대북 수출 금지, 무기 수출 전면 금지, 제재 대상 북한 선박의 입항 금지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사각지대(loophole)를 없애는 전 방위적 대북 제재를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요구로 북한 주민생활과 관련한 원유 지원과 수출, 생필품 교역, 인력 송출 등과 관련한 제재는 가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북한 정권을 겨냥한 자금줄은 조이면서도 주민생활의 숨통은 틔워주겠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최근 보이콧을 선언한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한 축인 나진·선봉 경제특구의 모습. ⓒ AP 연합


한국 독자 제재는 실효성보다는 상징성 염두


개성공단 전면 중단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한반도 배치 실무 검토라는 배수진을 치고 유엔의 강화된 제재 결의를 이끌어낸 우리 정부는 3월8일 금융 제재, 해운 통제, 수출입 통제, 북한 영리시설 이용 자제 등과 관련한 독자 제재 조치를 취했다. 북한의 무역은행 등 단체 30곳, 개인 40명이 추가 제재 대상에 올랐다. 금융 제재의 경우 북한 자산이 국내에 없어 실효성이 크지 않고, 북한산 물품의 국내 반입 금지 등 수출입 통제는 5·24 조치로 이미 시행 중이다. 북한 기항(寄港) 이후 180일 이내 외국 선박의 국내 입항 불허로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사실상 백지화됐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러시아산 유연탄 등을 철도로 북한 나진항까지 운송해 화물선으로 남한 포항·부산으로 실어오는 복합 물류 사업이다.

 

박근혜 정부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실행 차원에서 이 사업을 추진하려고 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하면서 합의한 후 3차례 시범운송을 시행했지만 채산성이 맞지 않아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지 못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남북협력기금이 투입되지 않으면 시행이 어려운 사업이었다.

 

이와 같이 우리 정부가 독자 제재안을 발표했지만 대부분 제재의 실효성이 크지 않은 것들이다. 그럼에도 독자 제재를 발표한 것은 한국 정부가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물샐틈없이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 조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남측의 독자 제재를 빌미로 남측 자산의 청산 절차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북한 조평통은 남북 사이에 채택·발표한 경제협력 및 교류 사업과 관련한 모든 합의들을 무효로 한다고 선포하고, 남측 기업들과 관계 기관들의 모든 자산을 완전히 청산해버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북한이 공언한 대로 금강산광관지구와 개성공업지구의 남측 자산을 몰수할 경우 남북 협력 사업을 재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가 나오기도 전에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를 취하고 유엔 제재 결의 채택 직후 다시 독자 제재를 가하는 데는 기존 방식과 선의(善意)로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과, 북한의 핵미사일 실천 배치가 임박했다는 상황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우리 사회 일각에서 “햇볕은 뜨겁지 않았고, 채찍은 아프지 않았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고 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를 시작으로 우리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카드를 사용해 전 방위적인 대북 제재와 압박을 하는 데는 기존의 햇볕정책과 상호주의 강경 정책으로는 더 이상 북한 핵 능력의 고도화를 막을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핵으로 정권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 주민들을 착취하고 핵개발에만 모든 것을 집중하는 것이 북한의 정권을 유지시킬 수 없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엔 제재 결의 2270호 채택 직후인 3월3일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정권의 폭정을 중지하도록” 하겠다며 한층 더 강한 압박을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정권을 인민을 착취하는 폭정(暴政)으로 규정하고 핵개발을 고집하면 정권 유지가 어렵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김정은 정권이 핵을 포기하고 폭정을 중단하지 않는 한 남북 관계는 없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핵개발의 동기를 북·미 적대 관계에서 찾지 않고, 3대 세습 정권의 체제 유지에서 찾음으로써 정권 교체와 체제 붕괴를 겨냥한 제재와 압박을 본격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연초 북한의 연이은 전략적 도발이 금지선(red line)을 넘은 것으로 인식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막기 위한 극약 처방으로 개성공단 전면 중단과 사드 배치 카드를 들고나온 것이다.

 

우리 정부가 출구 없는 대북 제재를 강력히 추진하는 데 비해 미국과 중국은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 추진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기 직전인 지난해 말 미국에 평화협정과 관련한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고, 중국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 추진을 선호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외부 세계의 우려 사항과 북한의 요구 사항을 6자회담에서 합의한 ‘동시행동 원칙’에 입각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쪽으로 출구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북한, 남측 자산 청산 시 협력 사업 재개 어려워


남측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과 북측의 남측 자산 청산, 남북 사이의 모든 통신선 차단 등으로 남북 관계는 출구 없는 강(强)   대 강(强)의 치킨게임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사소한 충돌이 국지전 또는 전면전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국가신인도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재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주민생활과 관련한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조건에서는 완벽한 제재란 불가능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어쩌면 미국까지도 제재만으로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 정부의 경우 동원 가능한 모든 카드를 사용하고도 북핵 고도화를 막지 못하면 궁지에 몰릴 수 있다. 제재와 압박과 함께 북한의 시장화 촉진 등 내부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노력도 병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미국은 소련과의 대결에서 강력한 군비 경쟁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헬싱키 프로세스를 통한 ‘평화적 이행 전략’을 추진했다. 강경 일변도가 소련을 붕괴시킨 것이 아니다. 제재와 압박을 지속하면서도 북한 핵능력 고도화를 막기 위한, 대화를 통한 설득 노력도 병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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