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직장 내 ‘왕따’로 죽음 택했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4.21 19:03
  • 호수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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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F 인턴 디자이너 원 아무개씨 자살 ‘후폭풍’…유족 측 노동위원회 제소 및 검찰 고발

LF(옛 LG패션)의 인턴 디자이너였던 고(故) 원 아무개씨(29)의 자살 ‘후폭풍’이 거세다. 원씨는 2월26일 서울 개포동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들은 직장 내 ‘왕따’(집단 따돌림)와 가혹한 근무환경을 자살의 원인으로 꼽았다. 사고 직전 원씨가 지인과 나눴던 카카오톡 내용을 근거로 제시했다. 실제 기자가 확인한 원씨의 카톡에는 “나 왕따 당했다” “지쳤다. 그냥 죽고 싶다” 등의 글이 여러 차례 남겨져 있었다. 쓰레기를 줍고 있는데 바닥에 핀을 던지거나, 실을 정리하라며 마구 섞어버리는 등 조직적으로 고인을 괴롭혔다는 것이다. 근무환경도 녹록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턴임에도 주말에 출근을 했고,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2월26일 자살한 LF 인턴 디자이너의 어머니 박 아무개씨는 4월15일 기자와 만나 회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유족 “출근 때마다 두통과 메스꺼움 호소”

원씨 유족들은 지난 3월말 진상규명과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LF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했다. 서울중앙지검에도 고발장을 제출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고발장에 따르면, 원씨는 비록 인턴으로 근무했지만, 여느 인턴과는 달랐다. 오래전부터 여성 속옷 디자이너로 활동해왔다. 유명 패션쇼에 란제리 작품을 출품해 여러 차례 입상하는 등 디자이너로서 입지를 다져가는 중이었다. 지난해 한 기관이 주최한 패션쇼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LF에서 인턴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원씨는 2개월의 인턴 기간이 끝나면 정식 사원이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출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디자인실에서 이른바 ‘왕따’를 당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불면증과 심리 불안에 시달렸다고 유족들은 주장한다. 실제 2월16일에는 메스꺼움과 호흡곤란 증세로 조퇴를 했고, 다음 날에는 회사에도 출근하지 못했다. 어머니 박 아무개씨는 4월15일 기자와 만나 “딸은 평소 쾌활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LF에 인턴으로 들어가면서 성격이 바뀌었다”며 “출근할 때마다 두통과 메스꺼움을 호소했다.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와 괴롭힘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감정에 겨운 듯 박씨는 인터뷰 중간중간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유족들은 회사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장례식조차 연기했다. 그럼에도 원씨와 함께 근무했던 디자인실 직원들은 사흘 넘게 빈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오규식 대표 역시 원씨가 자살한 지 나흘 후인 3월1일 빈소를 찾았다. 박씨는 “회사에 여러 차례 연락을 했지만 디자인실 직원들은 물론이고, 경영진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원씨의 한 지인은 “생전 원씨로부터 (회사에서) 눈치가 없다며 화장실로 자신을 불러 따귀를 때린 적도 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한두 명에서 시작된 괴롭힘이 나중에는 실 전체로 퍼졌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원씨의 남자친구인 송 아무개씨도 뒤이어 자살하는 등 파장이 확산됐다. 평소 끔찍이 아꼈던 여자친구 원씨가 자살한 것에 따른 충격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원씨 유족 측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길의 문성근 변호사는 “피신청인(LF) 회사는 상급자와 하급자, 정직원과 인턴직원으로 구별하고, 업무상이나 인격적으로 차별적 처우를 했다”며 “이로 인해 고인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절망 속에서 가슴앓이를 해야 했던 만큼 근로기준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원씨 유족 측의 주장에 대해 LF 측은 “직장 내 왕따나 부당 노동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회사 측은 원씨가 채용을 전제로 한 인턴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LF의 한 관계자는 “사고 발생 후 직원들과 개별 면담을 했다”며 “고인과 주고받은 직원들의 문자메시지 등도 면밀히 분석했지만 집단 따돌림과 관련된 정황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LF 측에 따르면, 고인이 근무했던 2월은 패션업계에서 가장 분주한 시기였다. 매해 가을과 겨울 상품에 대한 품평을 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팀원 전체가 옷이나 부자재를 나르는 등 정신이 없었다는 것. 이 과정에서 인턴의 업무 강도가 다소 높았을 수는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원씨는 팀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생일파티에도 참석하는 등 활기 있게 생활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고인이 병가를 내기 위해 디자인실장과 주고받은 문자에도 큰 문제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2월26일 자살한 LF 인턴 디자이너의 어머니 박 아무개씨는 4월15일 기자와 만나 회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회사 측 “자체 조사 결과 왕따 없었다”

오히려 회사 측은 유족들이 검찰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한 것에 의문을 표시한다. 앞서의 회사 관계자는 “그동안 유족들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했다. 대표이사 조문 시에는 사망 원인에 대한 공동 규명을 유족들에게 제안하기도 했다”며 “그럼에도 유족들은 일방적으로 근로조건 위반 및 손해배상 청구 신청을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제기했다”고 말했다.

4월4일,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원씨 사건에 대한 첫 심리가 열렸다. 원씨의 유족들은 부당 노동행위를 주장했고, LF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맞섰다. 노동위원회는 사건을 각하 처리했다. ‘현행법상 근로기준법 위반은 당사자만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 위원회 측의 입장이다. 즉 자살한 원씨가 아니면 문제를 제기할 수조차 없다는 얘기다. 유족들은 중앙노동위원회에 항소했다. 한편으로 검찰 수사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검찰은 현재 서울지방노동청에 사건을 이첩한 상태다. 노동청은 조만간 LF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설 예정이어서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원씨의 어머니 박씨는 “내 딸아이 사건은 단순히 한 젊은이나 회사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인턴이 직장 내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른바 ‘열정 페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턴 고용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조만간 마련해 시행하기로 했다. 지난해 실태 조사에 따른 후속 조치였다. 하지만 정부 대책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인에게 왕따를 호소하는 고(故) 원 아무개씨의 생전 카카오톡 대화 내용.


“대다수 인턴, 문제 공론화하기 꺼려”

실제로 청소년근로권익센터가 운영하는 인턴보호콜센터는 2월1일부터 50여 일간 인턴들을 대상으로 근로권익 상담을 진행했다. 접수된 부당 인턴 상담 건수는 총 73건이었다. 센터는 73건 중 대부분을 ‘고용주의 부당 노동행위’로 판단해 지역노동위원회에 진정을 넣을 것을 권유했지만, 진정으로 이어진 건수는 한 건도 없었다. 현행 인턴 제도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김상찬 제주대 법학대학원장은 “대다수 인턴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취업 시 부정적인 평판을 우려해 문제를 공론화하기를 꺼린다”며 “회사가 인턴들을 착취하지 못하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인성교육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기업 인턴 자살 왜 반복되나?  



 

대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다 자살한 사례는 이번 LF의 원 아무개씨 경우만이 아니다. 지난 2013년 4월 동부금융네트워크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이던 최 아무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씨는 그해 1월 동부금융이 공고한 ‘핵심 인재 양성 프로그램 인턴십 과정’에 응시했다. 인턴 기간 중 성과가 좋으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말이 맘에 들었다.  인턴 초기만 해도 일정 부분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이후 최씨는 위 천공 수술을 받을 정도로 극심한 영업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보험 영업을 위해 가족은 물론이고 지인에게 손을 벌렸다. 하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확인 결과, 최씨와 같은 방식으로 인턴십을 치른 인턴 중 정규직으로 전환한 인턴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청년 취업이 어려운 점을 악용해 인턴을 이용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었다.

2014년 1월에는 CJ제일제당 충북 진천 공장에서 고졸 인턴으로 근무하던 김 아무개씨가 기숙사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족들은 김씨의 자살 원인으로 사내 폭행을 지적했다. 회사의 사과와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정부 차원에서 진상조사가 벌어졌고, 근로복지공단은 2015년 3월 김씨에 대한 산업재해 사망을 인정했다.

대기업만의 일이 아니다. 2014년 10월에는 중소기업중앙회에 근무하던 인턴사원 권 아무개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중소기업CEO스쿨에서 보조 업무를 하던 중 여러 차례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 참다못해 회사에 알렸지만, 오히려 계약 연장이 되지 않으면서 해고됐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다. 유족들은 중앙회 간부들과 중소기업 CEO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렇듯 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다가 자살하는 사례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회사 측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정확한 자살 원인을 유족에게 알리기보다, 문제를 축소하는 데 혈안이 됐다. 정부 역시 대책 마련을 공언했지만, 그때뿐이었다.

LF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다 최근 자살한 원씨 사건도 마찬가지다. LF 측은 “(오규식 대표가) 직접 장례식장을 찾아 유족에게 진상조사를 제안했다”며 “노동부와 검찰 고발로 이어지면서 진상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유족들의 설명은 달랐다. 오 대표가 공동 조사를 제안했다는 LF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족들은 그 근거로 오 대표와 나눈 대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대화 녹취록에는 공동 조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오 대표는 오히려 “법정 다툼보다 회사에서 먼저 (진상을) 밝히는 것이 LF에 대한 이미지 차원에서도 좋을 수 있다”고 유족들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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