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번개-화재-아버지 순으로 무섭다”
  • 임수택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4.25 16:18
  • 호수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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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시스템·교육·안전의식으로 재난 대처하는 일본인들
4월17일 연쇄 지진이 일어난 구마모토현 마시키에서 경찰이 무너진 주택가를 돌며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 AFP 연합

지난 4월14일 일본 구마모토(熊本)현에서 시작된 지진 활동이 아소(阿蘇) 지방과 오이타(大分)현까지 확대돼 피해가 커지고 있다. 4월14일 저녁 구마모토현 마시키초(益城町) 가까운 곳에서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한 후 16일 새벽에도 7.3의 강진이 발생했다. 4월21일 현재까지 지진으로 인한 피해자는 사망자 48명과 사망 추정자 11명을 포함해 총 59명에 이르며 피난민은 12만명을 넘어섰다.

연속 강진으로 지진 활동이 약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여진에 대한 공포도 계속되고 있다. 첫 지진 발생 이후 4월21일까지 규모 1 이상의 지진이 761회나 발생해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지금까진 대지진이 발생하면 그 이후의 지진은 작아졌는데 이번 지진의 경우에는 처음보다 강도가 더 세졌다. 일본 기상청도 이제까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지진이라고 발표했다. 또 지진의 범위도 커져 구마모토현의 동쪽에 있는 아소산 주변과 오이타현까지 100km정도로 진원 범위가 확대됐다.

日 기상청 “이제까지 경험한 적 없는 지진”

일본 기상청에선 4월14일 지진 발생 후 규모 6인 약(弱)강도 이상의 여진이 발생할 확률을 20%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4월16일 오전 1시25분에 규모 7의 본진이 발생해 지진의 강도와 활동 영역이 오히려 확대됐다. 이번 지진은 구마모토현 중부에 연계돼 있는 후타가와(布田川)·히나구(日奈久) 단층대가 어긋나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열도에 있는 활단층은 알려진 것만 해도 2000개 이상이다.

구마모토현의 경우 메이지 시대인 1889년 7월28일 규모 6.3의 직하형 지진이 발생해 20명이 사망한 사례가 있지만 그동안 지진이 거의 일어나지 않은 지역이다. 지진 전문가들에 의하면 활단층에 의한 지진은 일본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고 하는데, 특히 서(西)일본 지역의 경우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서일본 지역은 도쿄 근처인 가나가와(神奈川)현에서 규슈의 미야자키(宮崎)현까지 광범위하다. 서일본 태평양 해안의 난카이(南海) 트러프(trough)는 대지진이 약 100년 주기로 반복해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다음 지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내각부 전문가 회의에서도 서일본 지역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과 비슷한 규모인 9의 대형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쇼와히 가시난카이(昭和東南海·1944년)·난카이 지진(南海地震·1946년) 등 수십 년 전부터 내륙에서 지진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발생 확률을 높이고 있다.

또 다른 위험은 수도인 도쿄에서 발생하는 직하형 지진(수도 직하형 지진)이다. 근거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2011년 3월11일 대지진으로 동일본 지반에 균열이 많이 생겨 태평양의 깊은 해저로부터 해수가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도쿄 동부 지하에 넓어지는 ‘남관동 가스전’의 메탄이 지반 변형의 영향을 받아 팽창하고 있다는 가설이다. 전문가들은 수도 직하형 지진이 발생하면 사망자가 9700명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걱정스러운 규칙성도 발견되고 있다. 고베 대지진(1995년), 9년 후 주에쓰(中越) 지진(2004년), 7년 후 동일본 대지진(2011년) 그리고 5년 후인 이번 구마모토현 지진이다. 이론화된 현상은 아니지만 대지진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처럼 일본인들은 지진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전세계에서 1629회 발생했는데, 이 중 18.5%에 해당하는 302회가 일본에서 발생했을 정도로 대지진에 많이 노출돼 있다.

일본이 수많은 자연재해를 겪어오면서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먼저 정부 및 각종 단체의 시스템이다. 우선 건물의 안전을 체크하는 응급위험도 판정사가 전국에 약 10만명 있다. 건축 전문가가 ‘조사 완료’ ‘요주의’ ‘위험’ 3단계로 나눠 표지(標識)를 붙인다. 일본의사회·일본약제사회·피해자지원노하우민간단체 등 지원단도 체계화돼 있다. 재난 대책의 기본은 재해 예방과 사전 대책, 재해 응급대책, 재해 복구와 복구 대책으로 돼 있다.

건물 응급위험度 판정사 전국에 10만명

일본은 대형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찰·소방서·자위대가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피해규모가 작은 경우 국토교통성의 방재센터, 총리부의 비상재해대책본부가 대응하거나 도도부현(都道府縣)이 개별적으로 본부를 설치해 대응한다. 일본 정부의 재난 구조 체계는 크게 소방, 경찰, 해상보안청, 항공자위대, 해상자위대, 의료기관, 민간기관으로 되어 있다.

두 번째는 안전의식에 대한 교육과 실전 훈련이다. 일본인들은 자기 주변에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대피 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9월1일은 방재의 날로 학교·기업 등에서 소방 훈련, 피난 훈련을 실시한다. 이처럼 반복된 훈련과 안전의식을 통해 재해를 줄이고 있다. 관동 대지진 이후 규모 7.5 정도에서도 견딜 수 있는 건물들에 거주하는 사람들조차도 대피 훈련만큼은 빼놓지 않고 있다. 또 구명조끼, 캡슐형 방재 대피용품을 준비해 스스로 보호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세 번째는 질서 및 공동체의식이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 당시 붕괴된 건물 밑에 깔려 며칠간 생사의 갈림길에서 가까스로 구조된 할머니의 “신세를 지게 돼 죄송합니다”라는 표현은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 한 인간으로서 평생 몸에 배어 있지 않고서는 그같이 절박한 상황에서 할 수 없는 표현이다. 일본인들은 어려서부터 메이와쿠(迷惑), 즉 “남에게 신세나 걱정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화합과 집단의 공존·공영을 위해선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집단의 규례(規例)와 질서를 중시하는 사상의 뿌리는 에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라하치부(村八分)라는 말이 있는데 촌락 생활의 규례와 질서를 어긴 사람은 장례식과 화재 진압하는 일 이외에는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고 관계를 끊는다는 말이다. 일종의 이지메다. 집단생활을 중시하는 공동체정신이 자연재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더 큰 피해를 줄이고 있다.

네 번째는 자연재해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다. 일본 사람들은 흔히 “지진, 번개, 화재, 아버지 순으로 무섭다”고 말한다. 그만큼 지진에 대한 공포가 심하고, 지진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대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상자와 피해가 발생해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매뉴얼대로 대처하며 미래에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재해를 방지하는 대책을 강구한다. 이 같은 시스템과 안전의식 및 훈련이 일상화돼 있기 때문에 대지진이 발생해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빠른 시간 내에 복구할 수 있다. 자연재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시스템과 안전의식과 훈련을 통해 인재형(人災型) 피해를 최소화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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