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건 핵심 책임은 산업부에 있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5.12 17:37
  • 호수 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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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가 맹물에 KC 마크까지 붙여줘”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기업 뒤에 숨은 정부 비판

살균제는 사람이 흡입하면 안 되는 물질이다. 따라서 이 물질을 넣은 가습기 살균제는 이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는 제품이다. 게다가 이들 제품의 성분은 99%가 물이고 여기에 살균제 성분은 0.1%가량밖에 되지 않아 애초부터 가습기 살균 효과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불거지면서 옥시 제품이 주목받고 있지만, 애경 등 다른 업체의 제품도 문제가 심각하다. 살균 성분의 입자 크기가 작아서 인체에 더 해롭기 때문이다.

 

정작 이런 사실이 강조되지 않는 것에 대해 화학 전문가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5월3일 학교 교수실에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런 제품의 판매를 허가하고 KC 마크(국가통합인증마크)까지 붙여준 것은 심각한 비리”라며, 이번 사태에 있어 기업 뒤에 숨은 정부의 책임이 오히려 더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 있는 성분은 어떤 물질인가.

 

한마디로 공업용 미생물 퇴치제, 즉 범용 살균제다. PHMG라는 성분은 살균제로 쓰이고, CMIT(또는 MIT) 성분은 살충제로도 사용한다. 외국에선 주로 수영장·물탱크·정화조 청소용으로 쓰인다.

 

그 성분을 흡입하거나 먹어도 되는가.

 

살균제제는 방부제·살균제·보존제·항생제 등 4가지가 있다. 방부제는 손으로 만지는 것조차 금지된 물질이다. 포르말린이 대표적인데, 이를 마시거나 흡입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따라서 방부제를 흡입했을 때 독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연구할 필요조차 없고, 실제로 그런 연구 결과는 없다. 살균제는 피부 접촉 정도를 허용한 물질이다. 흡입이나 섭취는 당연히 안 되는 물질이고, 피부 접촉이 마지노선이다. 보존제와 항생제는 우리 몸으로 들어가는 살균 성분이다. 식품에 사용하는 보존제는 그 용량을 정부가 정해두어 허용치 이상 섭취하지 못하도록 했다. 항생제도 의사 처방으로 먹어야 하고 실제로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는 게 상식이다.

 

그런 살균제를 가습기에 넣어 공기 중에 분사한 것은 어떤 의미인가.

 

2011년 가습기 살균제의 심각성에 대한 첫 언론 보도가 나왔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의사가 28명의 폐섬유증 환자를 확인한 것에서 시작됐다. 정부는 당시 가습기 살균제와 폐섬유증 환자의 상관관계가 1%도 안 된다고 발표했다. 나는 당시 가습기 살균제란 게 거즈에 묻혀 가습기를 닦는 용도로 사용하는 제품으로 알았다. 식기 세척기를 청소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사람이 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멀쩡한 제품을 몰아붙이면 안 된다는 내용의 칼럼까지 썼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습기 살균제를 물에 타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살균제는 사람이 흡입하면 안 되는 물질이므로 공기 중에 분사한다는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생각해 보라. 소독약을 마시는 사람이 있는가? 가습기 살균제는 절대 만들지 말았어야 하는 제품인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가 필요한 제품이긴 한 건가.

 

가습기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물을 끓인 증기를 뿜어내는 것과 초음파를 이용한 것이 있다. 물을 끓이는 것은 그나마 덜하지만 초음파 가습기는 곰팡이나 균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그래서 가습기는 매번 잘 씻어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귀찮으니까 업체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것이다. 마치 가습기를 살균함으로써 순수한 습기만 나올 것으로 소비자는 기대한다. 사실 가습기는 일반 주방 세제를 사용해서 닦아줘도 된다. 특별한 약품이 필요한 게 아니다. 또 가습기를 햇볕에 잘 말려 사용해도 무방하다.

 

‘흡입 시 유해’ ‘증기를 흡입하지 말 것’이라는 조건으로 미국 환경보호청에 등록된 살충제 관련 문건.

 


업체의 광고대로 제품에 살균 효과는 있는가.

 

가습기 살균제 성분을 조사해봤더니 ‘옥시싹싹’이라는 제품은 물이 99.68%다. 쉽게 말해 맹물에 독약 한 방울 떨어뜨린 것이 가습기 살균제로 둔갑해 팔린 것이다. 나머지 성분을 보면, PHMG가 0.1%이고 소금이 약간 있다. 소금은 왜 넣었는지 알 수 없다. 애경의 ‘가습기 메이트’ 제품도 98%가 물이다. 나머지는 질산마그네슘인데, 이 역시 왜 넣었는지 알 길이 없다. 살균이나 세척과는 무관한 물질이다. PHMG는 10%, CMIT 또는 MIT는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20~30% 정도로 희석해야 살균·살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0.1%로 무슨 살균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나. 살균은 하지 못하고, 사람을 살(殺)해버린 셈이다.

 

그런 제품에 정부는 KC 마크까지 붙여준 셈인가.

 

1994년 유공(현 SK케미칼)이 세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당연하다. 지구상에 살균제를 흡입하는 나라는 없으니, 우리가 세계 최초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런 제품에 KC 마크까지 붙여줬다. 화학을 몰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제품을 살균제로 허가해주면 안 되는 것이다. 정부가 맹물을 살균제로 허가해준 것과 KC 마크까지 붙여준 것은 비리 수준이다.

 

가습기 살균제 업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의 책임은 기업 뒤에 감춰진 듯한데 어떻게 보는가.

 

이번 사건의 핵심 책임은 산업통상자원부에 있다. 산업부 산하에 국가기술표준원이 있는데, 여기가 가습기 살균제를 허가해준 곳이다. 그럼에도 가습기 살균제를 ‘자율안전확인대상 공산품’이라며 관리의 책임을 업체의 자율에 떠넘기며 살짝 빠졌다. 가습기 살균제는 물에 타서 사용하면 사람이 흡입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인데, 정부는 이를 관리하지 않았다. 자율이라도 관리는 해야 하는 게 정부다. 질병관리본부는 처음부터 감염성 질병이 아니라며 발을 뺐고, 환경부도 환경에 의한 노출 사고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현재 검찰 수사나 불매운동 등으로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불똥이 환경부로 튀는 모양새다. 2012년 구미 국가산업단지에서 불산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이것 역시 산업부 소관인데 나중에 환경부가 덤터기를 썼다. 사고는 산업부가 치고 뒤처리는 환경부가 하는 격이다. 이번만큼은 산업부가 가습기 살균제를 허가해준 배경이 무엇인지 밝히고 책임져야 한다.

 

제2의 피해는 나오지 않을까.

 

가습기 살균제는 사라졌으니 이 문제는 더 이상 나오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문제는 현재 피해자들인데, 정부는 살균제와 피해자의 상관관계를 쥐 실험으로 확인하겠다고 한다. 쥐에게도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그 피해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쥐는 본래 사람보다 면역력이 강하다. 페스트균이나 한타 바이러스에도 저항력을 가진 동물이다. 따라서 사람에게 치명적인 것이 쥐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이 쥐에서 이상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이런 쥐 실험으로 사람이 본 피해를 판가름하겠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이다. 현재 피해자가 나온 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는가. 유독물질의 인체 독성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역학조사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이 정부에 쥐 실험만 강조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런 전문가들 때문에 17년 동안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제품을 국민이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하다 이런 변을 당한 것이다.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기업은 어떻게 해야 바람직할까.

 

세계 최대 석면 회사인 맨빌(Manville)은 미국에서 도산한 기업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석면 논란으로 이 회사는 1982년 1300억 달러의 보상금 부담을 넘지 못하고 파산했다. 제조물책임법의 위력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품공법)에는 ‘제조물 개발 당시 과학, 기술적으로 피해를 예상할 수 없는 경우 책임을 면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것이 많은 ‘나쁜’ 기업들에 면죄부로 작용해왔다. 그러나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을 벌인 회사에 법이 면죄부를 주면 안 된다.

 

2011년 권준욱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센터장이 출산 전후 산모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원인미상의 폐질환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옥시 외에 애경 등 다른 기업의 제품은 성분이 다른데, 정부의 말대로 인체에 해가 없는가.

 

정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보면 ‘옥시싹싹’의 성분 PHMG로 간 독성, 호흡 문제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고 돼 있다. 그럼에도 그 인과관계를 밝히지 않고, 폐섬유증에 대해서만 관련이 있다고 했다. 게다가 CMIT는 폐섬유화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애경의 ‘가습기 메이트’가 빠져나간 배경이다. ‘가습기 메이트’ 성분 CMIT는 크기가 매우 작아 더 위험하다. 미세먼지 중에 지름이 가장 작은 초미세먼지는 2.5μm(마이크로미터) 이하다. 1μm를 1000분의 1로 자른 게 nm(나노미터)다. 원자가 0.1nm 정도이고 CMIT는 1nm이다. PHMG는 CMIT보다 몇 백 배 크지만 초미세먼지보다는 작다. 즉 세 가지 입자 중에서 폐에서 혈액으로 잘 나가는 순서를 보자면 CMIT-PHMG-초미세먼지 순이다. 초미세먼지와 PHMG보다 작은 CMIT가 폐와 혈액에 들어가는데 폐 질환과 무관하다는 발표는 거짓말이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못한다.

 

최근 미국 환경보호청에 제출된 자료를 하나 찾았다. 한 회사가 CMIT와 MIT가 첨가된 제품을 살충제로 등록한 자료다. 이 제품은 통나무집이나 목제 가구 등의 목재 보존용 살충제다. 이 제품의 사용 조건에는 ‘흡입하면 해롭다’거나 ‘증기를 흡입하지 말라’는 경고가 포함돼 있다. 그런 성분을 우리는 밀폐된 실내에서 뿌리고 사람이 흡입하도록 방치한 것이다. 내가 이 자료로 떠들어대자 그제야 당국이 CMIT도 조사하겠다고 했다. 이렇듯 어렵게 이슈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손 살균제 등 다양한 살균제가 우리 주변에 있는데 어떻게 봐야 할까.

 

‘살균’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살균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인식한다. 살균제를 우습게 아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살균은 인체 독성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국민이 알았으면 좋겠다. 외국에는 실내에 뿌려 사람이 흡입하도록 만든 살균제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살균제, 소독제가 주변에 널렸다. 살균제를 많이 쓸 수록 세균은 내성을 지닌 슈퍼박테리아가 된다. 또 더 강한 살균제를 만들어야 하는 셈이다. 예컨대 과도한 위생관념 때문에 아이들이 세균에 노출되지 않아 면역력이 과거보다 떨어진다. 이 때문에 아토피 등 다양한 질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살균을 남용하면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 그 후유증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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