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향한 성난 민심 후폭풍 몰아친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5.23 18:51
  • 호수 138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회사였던 OCI그룹 책임론 대두 구속된 신현우 前 대표 소유 불스원·슈마커 불매운동 조짐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 번 잘못 찍히면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는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지난해 말 조작된 실험 결과 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제품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원들뿐 아니라 경영진이 검찰에 줄소환 당했다. 이 과정에서 신현우 전 대표와 김 아무개 전 연구소장, 최 아무개 전 선임연구원이 구속됐다. 검찰은 조만간 옥시의 외국인 전·현직 임원들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고 있으면서 묵인했는지 여부가 검찰 수사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파장은 컸다. 옥시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옥시의 매출은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1년 옥시를 인수한 영국의 다국적 기업 레킷벤키저도 유탄을 맞았다. 피해 유가족들은 레킷벤키저 영국 본사로 몰려가 항의 시위를 벌였고, 검찰도 수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를 항의 방문했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덕종씨와 환경보건시민단체 관계자들이 5월11일 옥시가 입주한 여의도 IFC 앞에서 영국 본사 방문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레킷벤키저 매각 전에 가습기 살균제 개발” 

 

애경과 롯데마트·홈플러스·이마트·GS리테일 등도 검찰 수사를 지켜보며 마른침을 삼키고 있다. 옥시 수사가 마무리되면 다음 타깃은 자신들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해 말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 15곳 중 8곳의 대표이사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유가족들은 주요 그룹 임원 125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피고발인 중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등도 포함돼 있다. 검찰의 칼날이 회사뿐 아니라 오너 일가로 확대될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배제할 수 없는 상태여서 긴장감이 더하다.

 

시사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옥시를 퇴직한 한 인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2001년 3월 옥시가 영국 레킷벤키저에 매각되기 전에 이미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한 상태였다”며 “책임 소재만 따지고 본다면 옥시를 인수한 레킷벤키저보다 원래 모회사였던 OCI그룹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옥시는 한때 동양제철화학(현 OCI) 계열사였다. 생활용품과 자동차용품 판매를 주로 하는 회사였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회사의 어려움이 가중됐고, 2001년 3월 레킷벤키저에 매각됐다. 그는 “당시 레킷벤키저가 자동차용품 사업에 대한 인수를 거절하면서 생활용품 사업만 레킷벤키저 쪽에 매각되고, 자동차용품 사업은 불스원이라는 이름으로 분사됐다”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도 2001년 레킷벤키저에 매각되기 전에 개발이 끝난 상태였다. 그에 따르면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는 이전까지 안정성이 검증된 독일 원료를 사용했다. 그런데 이 제품을 가습기에 넣으면 뿌옇게 흐려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고객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옥시는 독일 제품 대신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가 주성분인 SK케미칼 제품으로 원료를 교체했다. 당시 실무자들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만큼 흡입독성시험을 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하지만 경영진이 이 요구를 묵살했다.

 

실제로 검찰은 최근 옥시의 신 전 대표와 김 전 연구소장, 최 전 선임연구원을 업무상 과실치사 및 과실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SK케미칼 제품으로 원료 교체를 주도한 인사들이다. 신 전 대표와 김 전 연구소장은 검찰에서 “유해성을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개발 당시 ‘흡입독성’의 위험성을 여러 전문가들로부터 전달받았지만 묵살했다는 증언과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2001년까지 옥시의 모회사였던 OCI 역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책임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OCI 측은 “검찰 조사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미 25년이나 지난 문제다. 당시(OCI 계열)에는 독일 원료를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검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OCI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특히 옥시는 레킷벤키저에 매각되기 전까지 이수영 OCI그룹 회장과 차남인 우정씨가 회사의 지분 33.59%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회장의 둘째 동생인 이복영 삼광글라스 회장과 셋째 동생인 이화영 유니드 회장도 각각 옥시의 지분 4.52%와 11.99%를 보유한 대주주였다. 이들은 레킷벤키저에 지분을 매각하면서 천문학적인 시세차익을 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과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이 5월4일 이마트 용산점을 방문, 옥시 제품 앞에서 불매운동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불스원 “옥시와는 16년 전 이미 분리된 상태”

 

자동차용품 업체인 불스원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유탄을 맞았다. 검찰에 구속된 옥시의 전 대표나 연구소장이 불스원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신 전 대표는 불스원의 지분 44.34%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신 전 대표는 2006년 3월 옥시 대표로 5년간 근무하다 친정인 OCI그룹으로 복귀했다. 신 전 대표는 2010년 말 이수영 회장 등 오너 일가가 보유한 불스원 지분 42.93%를 인수했다. 기존에 신 전 대표가 보유했던 주식 9.05%를 합치면 총 보유지분이 한때 51.97%에 이르렀다. 이후 옥시의 핵심 인사들이 모두 불스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구소장을 포함한 핵심 연구원과 재경본부장(CFO), 서비스부문 사장 등이 옥시 출신으로 알려졌다. 불스원의 역대 CEO 역시 동양제철화학 출신으로, 신 전 대표와 같이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불스원뿐 아니라 계열사인 슈마커 등에 대한 불매운동 움직임도 일고 있다. 슈마커의 최대 주주는 55% 지분을 보유한 불스원이다. 신 전 대표 역시 3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집중 성토 대상이 되고 있다.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도 이들 회사를 비판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한 소비자는 “불스원을 사게 되면 오너인 신 전 대표의 재산을 불려주는 꼴”이라며 “불스원의 불매운동에 동참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불스원 측은 “옥시와는 이미 16년 전에 분리된 상태고, 같은 회사였을 때도 법인만 같았지 별도로 운영됐다”며 “더욱이 문제의 옥시 제품이 판매될 때 이미 별개의 회사였기 때문에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신 전 대표 역시 지분만 가지고 있을 뿐 회사 경영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