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대로 먹어라? 식당에는 없는 다문화주의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5.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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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인 로라 쿠르댕(29)씨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붉은 고기’는 먹지 않는다. 한국에 거주한 지 5년이 되어가는데 그는 아직까지도 외식을 할 때마다 매번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식당에서 요리를 주문할 때마다 해당 요리에 ‘고기’가 들어가는지 확인을 하는데 “안 들어간다”는 대답을 들어도 결코 안심을 할 수가 없다. 

한 번은 감자탕 집에 들어가 감자탕의 재료를 묻자 식당 종업원이 ‘감자하고 파’라고 대답해 주문을 했다. 잠시 후 그의 앞에 놓인 접시 안에는 커다란 돼지뼈가 들어 있었다. 쿠르댕 씨가 항의를 하자 식당 사장은 “그럼 감자만 골라먹으라”라고 말했다. 

주재료가 양송이와 감자라는 말을 듣고 양송이 스프를 주문했을 때도 스프 그릇에는 베이컨 조각이 둥둥 떠 있었다. 쿠르댕씨가 ’고기가 들어있다‘고 항의를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다. “고기는 별로 들어 있지 않은데요?” 
그는 말한다. “한국 식당 주인들은 어떠한 이유로든지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이 있단 걸 이해 못하는 것 같다. 음식을 가리면 몽땅 ‘편식하네’라고 싸잡아 보는 듯하다. 나에게 채식주의는 동물이 요리재료가 되기 위해 사육되고 가공되는 구조적 문제에 문제의식을 갖고 임하는 일종의 의식운동이다. 그런데 한국의 식당 주인들은 단순히 ‘야채만 골라 먹으면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IT회사에 근무하는 류영하씨는 채식주의자다. 유제품과 생선, 해물도 먹지 않는 ‘비건(vegan, 엄격한 채식주의자)’이다.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오랫동안 채식주의의 길을 걸어왔지만 아직도 ‘유별 떠는’ 것처럼 여겨진다고 한다. 그가 채식주의자임을 밝혔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건강해치지 말고 아무거나 그냥 먹어라”다.

 

“회사원 채식주의자는 최약자다. 회식장소를 잡을 때마다,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갈 때마다 메뉴 선택에 있어서 스스로 걸림돌이 되는 기분이다. 주변 동료들이 나보다 더 신경을 쓰는 게 고마운 한편 그래서 더 불편하다.”

한국 정부는 한식의 세계화를 꾸준히 추진해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07년 ‘한식의 세계 5대 음식화’를 목표로 한식 세계화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세계인의 식탁에 한식을 올린다’며 5대 전략, 9대 중점 과제를 발표했다. 민관이 참여하는 한식세계화추진단도 구성했다. 관주도형 ‘한식의 세계화’ 때문이든, 대중매체를 타고 확산돼가는 한류에 의한 것이든 차츰 한국 음식문화에 대한 세계적 이해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식의 세계적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정작 ‘국내 음식문화의 수준이 세계화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종교적 혹은 개인적 신념에 따라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인구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에는 문제가 더 커진다. 최근 문을 연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일부 가게에서는 체질적 특성에 따른 성분 제한 요구를 반영해 조리를 해주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특정성분의 음식을 빼고 준비해달라는 부탁을 하면 “유별나다”는 핀잔을 듣거나 “따로 조리가 안 되기 때문에 다른 메뉴를 고르라”는 주문을 거꾸로 받기도 한다. 체질적 특성에 따라 특정 음식을 피해야 하는 경우도 선택의 폭이 제한되는 것이다. 한 할랄푸드(이슬람 율법에 따라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음식) 식당에서 만난 한 한국계 미국 남성은 “일부 한국 식당을 보면 한국사회가 다문화시대 글로벌 국가로 위상을 세우려면 갈 길이 먼 것 같다”며 “한식 세계화만큼 한국 내 음식문화의 세계화도 신경써야 한다”고 꼬집어 말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처음으로 2천만명 시대를 열었다. 매년 점점 더 많은 외국인들이 결혼이나 취업, 유학이나 여행을 이유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2015년 4월 법무부 체류 외국인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있는 외국인은 총 184만6049명이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UN CERD)에서는 ‘한국 사회가 다민족 사회가 된 만큼 단일 민족 국가라는 개념을 극복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음식 역시 예외 사항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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