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쾌거, 그것이 ‘우리의’ 쾌거일까?
  • 남인숙 작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5.30 07:29
  • 호수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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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면서 문학계가 한껏 들썩이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진즉에 나온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지금껏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우리가 이번 수상 하나로 마치 상처 받은 자존심을 위무 받으려는 분위기다. 이 소식에 덩달아 기뻐하며 이런저런 관련 뉴스를 찾아보다가 필자는 ‘한국 문학의 쾌거’라는 표현에서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그것은 한국인 최초로 LPGA 우승을 거머쥐었던 박세리, 설명이 필요 없는 피겨 여왕 김연아, 아마 인공지능에 맞서 이긴 최후의 인간일 수도 있을 바둑 기사 이세돌 9단에 열광하던 모습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치열한 노력으로 그 경지에 오르기까지 관심도 지원도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마침내 그들이 전 세계를 향해 큰소리칠 만한 성과를 거두었을 때 ‘우리의 쾌거’라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따져보면 그들은 모두 척박한 불모지에서 기적처럼 태어나 운 좋게 재능을 꽃피운 천재들일 뿐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배출한 양질의 토양이 아니라, 단순한 존재의 배경이었다. 오히려 천재들의 출현은 우리가 뭘 잘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 앞으로 무언가를 잘할 수 있게 할 시작점이 되어주었다. 박세리 이후 이른바 ‘박세리 키즈’라고 불리는 여성 골퍼들이 세계무대를 석권하게 되었고, 김연아의 영향을 받은 후배 선수들이 보다 좋은 조건에서 훈련 받으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게 그 예다.

한강이라는 또 하나의 천재가 세상에 드러난 이번 일은 문학이 스포츠처럼 한정된 사람들만의 영역의 것이 아니라는 데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한 인간이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바탕이 되는 것이 문학인데도, 최근 우리는 이것을 너무 푸대접해왔다. 입시나 취업, 생산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등한시했고, 대학에서는 인문학 관련 학과를 통폐합하고 학생 수를 줄이기 위한 경쟁에 나서는 듯한 상황이 진행 중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정신이 빈곤해지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게 문학을 경원시했던 지난 시간들의 보복임을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 단 한 사람의 천재가 이루어낸 성과를 우리 모두의 성공인 양 착각하며 얼토당토않은 문학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는 것이다.

서점에서는 이미 십여 년 전에 출판된 그녀의 작품이 지금 새삼 베스트셀러가 되며 관심을 받고 있다. 이것이 잠깐의 돌풍이 될지 변화의 시작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일이다. 필자는 이번 쾌거가 이전 천재들의 경우처럼 결과가 아닌 ‘시작’으로 작동해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문학을 보편적으로 향유하고, 인재를 길러내고, 숫자로 측량할 수 없는 문학적 역량을 높이 사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등의 변화가 일어나면 좋겠다. 그리고 누군가 그녀를 보고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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