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험한 것은 ‘진화하는 범죄에 대한 무지’다”
  • 조철 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01 16:57
  • 호수 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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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에 대한 무관심과 잘못된 상식 깨는 범죄학자 이창무·박미랑 교수의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

“모든 범죄는 테러와 같다. 두려움을 이용해 목적을 달성하고 피해자를 만들며, 주위 사람들은 ‘관객’이 되어 두려움에 떤다. 그렇게 탄생한 공포의 폭심지에서 범죄는 파괴력을 더하고, 사회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파괴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진화하는 범죄에 대한 무지’다. 범죄를 모르면 피해를 입고도 자기가 피해자인 줄 모른다.”

 

범죄학자 이창무·박미랑 교수는 최근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를 펴내며 “범죄는 우리의 무관심과 잘못된 상식의 틈에서 싹튼다. 특히 살인·성폭력·강도 같은 흉악범죄의 피해자들은 잘못된 상식 때문에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번에 서울 강남역 공용화장실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으로 흉흉한 분위기가 가실 줄을 모른다. 자신만은 범죄로부터 안전하다고 믿고 살았는데, 범죄는 그저 뉴스로만 접하거나 괴담 또는 황당한 이야깃거리로 남아 있기를 바랐는데….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니 충격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모르는 이에게 당한 ‘묻지마 범죄’로 알려졌는데, 이보다 더 무섭고 더 많이 벌어지는 살인 사건은 가까운 사람에게 당하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살인 피해자 10명 가운데 6명은 자신과 잘 아는 사람에게 피살된 경우다. 모르는 사람에게 당한 경우는 5명 가운데 1명 정도밖에 안 된다. 그 아는 사람 중에는 가족을 포함한 친족이 가장 많다. 살인 피해자 4명 가운데 1명은 친족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경우다. 2014년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 조사 결과, 응답자의 32.5%가 최근 1년간 가족갈등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의 3분의 1 정도가 가족갈등을 겪은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덴마크에서는 무려 57%가 친족에 의한 살인이고, 단 12%만이 전혀 모르는 사람에 의한 살인이다.”

 

 

“자신이 범죄에 대항해 뭘 해야 하는지 알아야”

 

이창무·박미랑 두 교수는 한국이 ‘범죄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범죄가 확산돼 당신이 언젠가 피해자가 되기까지는 범죄에 대한 공포가 큰 원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범죄의 진화를 모를 경우, 공포가 커지고 심지어 피해를 입고도 자신이 피해자인 줄도 모른다는 것이다. 해외의 선진적인 형사사법학을 공부하고 한국의 대표적인 범죄학자로 부상한 두 교수는 “범죄와 타협하지 말고, 피해를 부정하지 말고, 정보를 공유하라”며 각종 범죄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방법을 전한다. 

 

“범죄를 생각할 때 누군가가 날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 범죄에 대항해 뭘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사회구조가 남 탓하는 구조로 되어 있으면 남의 피해, 아픔을 아우르지 못한다. 범죄에 대해서도, 안전에 대해서도 많이 민감해져야만 내가 범죄를 예방하고 남이 피해를 당했을 때 작은 것도 어루만져줄 수 있다. 그게 안 되면 뉴스에 보도되는 매우 큰 범죄가 아닌 이상은 너무 둔감해진다. ‘그럴 수도 있지’라면서. 그런 걸 함께 얘기하고 싶었다.”

 

반론도 가능할 것이다. 강남역 공용화장실 살인 사건만 보더라도 그렇다. 밤중에 여성 혼자 어떤 곳을 거닐어도 안전한 사회가 돼야 하지 않을까라고. 문단속하지 않아도 안전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저자들은 이런 반론에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진화하는 범죄에 대한 무지’가 범죄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고. 흉악 범죄뿐 아니라 각종 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이 늘어나기만 하는 것은 몰라서 눈 뜨고 당하기 때문이라고.

 

“가정 폭력과 데이트 폭력, 군대 성폭력 같은 ‘보이지 않는 범죄’는 사회의 무관심이 큰 원인이며, 주변의 편견 때문에 2차 피해로 이어지곤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범죄 또한 진화해 나타난 것들도 있다. 사이버 범죄와 금융범죄가 바로 그것이다. 트래킹, 각종 보이스피싱을 모르면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다.” 저자들은 각종 범죄의 축적된 데이터와 피해자의 실제 사례, 피해를 방지할 대응책 등을 소개하면서 시민들은 서로를 보호하고 범죄자를 감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데이트 폭력은 ‘미리 찾아온 가정 폭력’ 

 

최근 일련의 흉악범죄 때문에 ‘한국 여성들은 범죄 피해를 입고도 정작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분석과 함께 제시하는 구체적 사례들도 주목을 끈다. 국내 최초로 데이트 폭력 논문을 발표하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범죄 연구의 권위자인 박미랑 교수는 “한국 여성들이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을 당하고도 모르거나 부정해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데이트 폭력은 ‘미리 찾아온 가정 폭력’으로서 방치할 경우 우울증·살인·자살로 이어지기 때문에, 연인의 데이트 폭력이 조금이라도 의심이 든다면 ‘데이트 폭력 진단표’를 체크해보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서기를 권한다. 

 

“데이트 폭력은 가정 폭력과 매우 유사하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연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피해자는 자기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한 쪽은 나니까’ 같이 전형적인 가정 폭력 피해자의 왜곡된 사고를 하기도 한다.” 박 교수는 ‘선진국이란 무엇일까, 선진사회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많이 한다며, 그것을 데이트 폭력이나 약자에 대한 범죄와 연결해 정리한 생각을 들려준다. 

 

“작은 범죄까지도 막을 수 있게 촘촘히 망을 만들어주는 것이 선진사회라 생각한다. 가해자를 다 처벌하자는 게 아니라, 피해를 받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촘촘히 만드는 사회가 선진사회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이창무 교수는 범죄를 막을 대응책을 연구한 결과, 개인의 성장배경과 범죄가 얼마나 깊은 관련이 있는지 들려준다. “부모의 폭력은 학습효과를 초래해 결국 대물림되는 악순환을 낳는다. 여러 연구 결과를 봐도 그렇다. 범죄를 저지르는 결정적 변수가 뭐냐, 딱 한 가지를 말한다면 성장배경이라고 본다. 부모나 양육자의 관심, 애정, 더 나아가서 감시까지 얘기할 수 있을 텐데, 어렸을 때 보호자가 관심과 감시를 기울이면 나중에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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