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이 국회를 개원시키다
  •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17 15:23
  • 호수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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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원 구성이 거의 국회법에서 정한 날짜에 이뤄진 것이 22년 만의 일이다. 3당 체제라는 낯선 구도 속에서 더 많은 국회권력을 가지려는 정당들의 욕심이 원 구성을 지연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깨고 기분 좋게 국회개원을 맞이하게 됐다. 여야가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몇 가지 단상을 갖는다.

 

먼저 국민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킨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주장이 있었다. 그는 관례적으로 국회의장직은 여당 몫이며,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선 여당이 국회의장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틀린 말이다. 국회의장직은 국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가진 정당에 배정하는 게 관례다. 1992년 총선 이후 예외 없이 당시 여당이 제1당이었기 때문에 국회의장직을 맡은 것이다. 따라서 겉보기엔 여당이 국회의장을 맡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국회에서 다수의석을 가진 정당이 의장직을 가져간 것이다. 

 

또한 삼권분립의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국회 지도부 구성이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 소속 정당에 맞춰야 한다는 정 원내대표의 주장은 모순이다. 국회는 입법기능과 아울러 행정부 견제기능을 갖는데,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국회 지도부가 대통령과 같은 정당 소속이어야 한다는 것은 국회의원인 정 원내대표 스스로가 국회를 폄하하는 것이다.

 

선거법상 국회 지도부를 선출해야 하는 6월7일이 가까워져도 정당 간 합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언론은 원 구성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보도했다. 그중 하나가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직 배분방식을 법으로 명시하자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다. 만일 원 구성 방식이 법으로 정해진다면 정당 간 합의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법적 배분방식이 유리한 정당은 자신의 몫이 작아지는 정당 간 합의에 따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원 구성의 법적 명시화는 국회에서 합의방식을 없애는 것이 된다.

 

헌법적 독립기관이라는 엄청난 법적 지위를 가진 국회의원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어쩌면 유일한 방법은 여론의 압박이다. 여론의 힘이라는 것이 다소 모호하고 또 합의된 여론도출이 어렵기 때문에 별로 영향력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 정책변화에 관한 연구를 보면 여론의 변화가 정책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국회 공전이나 파행이 끝나는 시점을 보면 언론에서 사설과 칼럼을 통해 국회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내는 시점과 같다는 것이 경험적 분석이다.

 

재선이 현직의원의 가장 큰 욕구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국회의원들이 여론에 민감하다는 것도 당연하다.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론은 지레 많은 걱정을 했다. 국민은 19대 국회가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20대 국회를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에 대한 여론도 그중 하나였다. 자칫 무한정 지연될 원 구성을 합의에 이르게 한 것은 이러한 국민들의 감시를 여야가 충분히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체도 없어 보이는 여론의 힘이 국회를 통제한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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