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없는 ‘치킨게임’ 치닫는 롯데 3부자
  • 한광범 시사비즈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21 10:48
  • 호수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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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검찰수사 촉발…롯데 직원들만 가장 큰 피해” 그룹 안팎 비판 목소리

롯데그룹을 향한 전방위 검찰수사로 인해 다시 형제간 분쟁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양진영이,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승자 없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 또한 그룹 안팎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 


검찰이 롯데그룹 총수 일가 배임·횡령 혐의를 포착하고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인 가운데, 신 전 부회장이 이를 기화로 반격에 나서고 있는 탓이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해 롯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동생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의해 그룹에서 쫓겨난 뒤 경영권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검찰이 수사를 공식화한 지난 6월10일부터 적극 공세에 나섰다. 6월 말로 예정된 롯데홀딩스 정기 주주총회를 반전의 기회로 보고 있다. 그는 검찰 압수수색 다음 날인 11일 신 회장에 대한 이사직 해임안을 주총 안건으로 올렸다. 


신 전 부회장은 압수수색 당일 롯데홀딩스 종업원지주회를 겨냥해 일본어로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한국에서의 수사 상황을 전하며 종업원지주회 이사회에 경영정상화를 위한 긴급 협의를 제안했다. 신 전 부회장은 현 상황에 대해 “롯데그룹의 사회적 신용과 기업 가치가 훼손될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사태”라며 “신 회장 중심 현 경영체제의 중대한 문제점이 새롭게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주총에서 종업원지주회의 지지를 얻어 경영권을 되찾겠다는 입장이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왼쪽 사진)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영권 분쟁에 이은 검찰수사로 롯데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총수 일가로서 무책임” 신 전 부회장 비판

 

신동주 전 부회장은 종업원지주회 설득 외에도 당초 각종 소송전을 통해 신 회장의 경영이 실패했다고 주장해왔다. 신 전 부회장은 이번 검찰수사를 통해 자신이 주장해온 신동빈 회장의 부실경영이 고스란히 드러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검찰이 전 계열사를 샅샅이 뒤지며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을 수사하는 만큼 신 회장 체제에 대한 롯데 내부의 동요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한국에 비해 대기업에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일본 문화를 고려할 때 신 회장 체제가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 중인 신격호 총괄회장 간병차 지난 6월8일 귀국한 바 있다. 그는 검찰 압수수색 이후 측근들과 대책을 논의한 후, 6월12일 일본으로 출국했다. 신 전 부회장은 일본에서 롯데홀딩스 주총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롯데홀딩스 임시 주총에서 패한 이후 주로 일본에 머물며 종업원지주회 설득 작업 등 정기 주총 준비를 해왔다. 


신 전 부회장의 공세에 대해 롯데 안팎에선 “총수 일가로서 무책임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검찰수사는 신동빈 회장에 한정되지 않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 역시 검찰의 주된 표적이다. 검찰은 두 사람과 관련한 자금 흐름 전체를 파악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비자금 조성과 배임·횡령 부분 입증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과 관련해선 계열사와의 수상한 부동산 거래를 살펴보고 있다. 계열사들이 신 총괄회장 부동산을 시세보다 수백억원 비싸게 매입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까지 신 전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경영해온 일본 계열사들과의 수상한 거래내역도 도마에 오른 상태다. 하지만 신 전 부회장은 총수 일가 중 유일하게 수사 선상에서 벗어나 있다. 검찰 관계자는 6월15일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아 신 전 부회장에 대한 자료는 없다. 압수수색에서도 관련 자료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이유로 신 전 부회장이 검찰에 회계장부 등 수사 정보를 제공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신 전 부회장 측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다만 향후 수사 협조 가능성은 열어뒀다. 이와 관련해 한 재계단체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에 대해 “한국 롯데 경영과 관련해 아버지와 누나를 포함한 총수 일가 전부가 검찰수사 선상에 오른 상황에서 적절한 행태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롯데 관계자도 “신 전 부회장도 총수 일가로서 얼마 전까지 한국 롯데 계열사에 등기임원으로 있었다”며 “남의 일로만 볼 수 없는 상황인데 스스로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게 의아하다”고 비판했다.


비리 입증될 경우, 3부자 모두 치명타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이 끝나 경영권의 향배가 결정된 뒤에도 신격호 총괄회장과 분쟁 당사자인 신동빈 회장 및 신동주 전 부회장 사이의 상처는 계속 남을 전망이다. ‘원 롯데 원 리더’를 외쳤던 신 회장의 경우, 경영권 사수에 성공해도 검찰수사로 인해 그가 드라이브를 걸었던 대부분의 사업이 좌초되고 있다. 3조~4조원대 투자금 확보를 위해 6월까지 마무리할 예정이었던 호텔롯데 상장 및 2조원대 화학회사 인수는 모두 중단됐다. 글로벌 M&A(인수·합병) 계획은 물론, 롯데정보통신 등 계열사 추가 상장 계획까지 삐걱거리면서 사업적·금전적 피해만도 천문학적 금액에 달할 전망이다. 


신 전 부회장도 주총에서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웃을 형편은 못된다. 그는 아버지인 신 총괄회장을 앞세워 ‘정통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롯데그룹이 신 총괄회장 보유 부동산을 수백억 웃돈을 얹어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파장이 오너 일가로 번지고 있다. 롯데그룹 비리가 사실로 입증될 경우, 가장 큰 화살은 경영을 책임졌던 신 총괄회장에게 날아들 가능성이 크다. 신 전 부회장은 이번 검찰수사를 초래한 당사자로 비판받고 있다. 그가 명분으로 내세웠던 ‘아버지의 원대복귀’는 어불성설이 될 수밖에 없다. 경영권 분쟁에서 승기를 잡더라도 ‘정통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검찰수사를 촉발하면서 결국 서로 명예 없는 상처만 입은 셈”이라며 “무엇보다 재계 5위인 롯데그룹은 성장동력이 가로막히는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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