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왔숑”, 직장인 카톡포비아를 말하다
  • 김회권․김경민․박준용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6.24 08: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이터 안 터지는 곳으로 가요.”

 


요즘 세상에 데이터가 안 터지는 곳이 어디 있을까. “어디로 여행 가냐?”는 질문에 제발 휴가만이라도 조용히 보내고 싶은 직장인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멘트를 던져야 할 판이다.

한때는 메신저를 이용한 업무 소통을 두고 ‘즉각적’이니, ‘수평적’이니 하며 호평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채팅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활성화되면서 오히려 고통스러워하는 직장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지극히 개인적이어야 할 채팅방은 업무의 수단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온 지 오래다. 카카오톡(카톡)이 대표적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포럼도 열렸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6월22일 ‘카카오톡이 무서운 노동자들’이라는 포럼을 열었다. 발제자로 나선 김기선 연구위원은 “전체근로자의 86.1%는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 등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면 노동 시간도 증가하는 법. 업무 시간 이후에 평균 하루 1.44시간, 주당 11.3시간을 더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법안도 나왔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영등포을)은 6월22일 동료 의원 12명과 함께 '퇴근 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유럽의 일부 국가는 이미 퇴근 후 통신 수단을 사용한 업무 지시를 금하고 있다. LG유플러스의 경우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매뉴얼을 통해 밤 10시 이후 카톡으로 업무 지시를 하면 보직 해임을 시키는 방안을 마련했지만 우리나라서는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로 치부돼 왔다. 그런 점에서 법제화 시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법안 발의 자체가 화제가 될 정도로 공감대를 얻고 있는 카톡 업무 지시.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직장인들에게 날 것(지시를 받는 사람과 지시를 하는 사람, 모두 포함했다)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넷 언론사 기자 A씨(29)
“기자란 직업이 퇴근시간이란 게 없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주말에도 수시로 업무 지시가 온다. 이해는 가지만 카톡 스트레스가 심한 건 사실이다. 상사로부터 카톡이 오면 ‘아이C'부터 입에서 나온다. 무시할 수도 없다. 카톡을 안 봤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왜 카톡 메시지를 씹냐고 오히려 질책한다.”

 

 

대학 교직원 B씨(29)
"카톡으로 업무 지시를 받는 것보다 더 스트레스를 주는 건 매번 그런 카톡에 응대해야 하는 것이다. 당장 어떤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게 아니고 급한 것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알겠습니다’나 ‘네’라고 읽음을 확인해줘야 한다. 그러다보니 퇴근 후에도 업무 부담을 안고 가는 기분이 든다. 진짜로 싫다.“ 

 

 

컨설팅업체 대표 C씨(56)
“예전에는 회사 메신저를 사용했는데 이제는 거의 카톡으로 업무 지시를 한다. 사실 나라도 상사가 시도 때도 없이 업무지시를 하면 싫을 것 같아서 가급적이면 안 하려고 노력하는데 성격상 생각나는 건 바로 말하는 편이라... 카톡으로 그렇게 했다고 당장 뭘 어떻게 하라는 건 아니다. 근데 또 직원이 메시지를 아예 안 읽거나 읽고 아무 답이 없으면 신경이 쓰인다. 내가 괜히 보냈나 싶기도 하고. 눈치를 많이 본다. 카톡이 없을 때에 비하면 업무 시간 외에 연락을 더 많이 하게 된 건 사실인 것 같다.” 

 

 

공무원 D씨(32)
“상사들은 자기가 카톡으로 연락하는 걸 싫어할 거라고 생각 못하는 것 같다. 퇴근 후 친구를 만나다가 상사의 카톡을 받으면? 마냥 무시하기 힘들다. 내일은 출근하자마자 이런 일을 해야겠구나 생각도 한다. 스마트폰이 문제라고 본다. 이메일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주말에도 이메일을 보내와 확인 하나만 하라고 카톡이 오기도 한다. 오죽하면 3G폰으로 바꿀까 생각 중이다. 

 

중소기업 회사원 E씨(30)
“바뀐 상급자가 주말에 카톡 회의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 당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주말에 시간을 정해 놓고 회의를 하기 때문에 그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서 다시 업무용 단톡방이 활성화됐다. '회의' 형태였기 때문에 그 때는 다른 걸 할 수 없다. 답장을 미처 못하거나 늦으면 전화가 오거나 뒷말이 나왔다. 그럴 경우 부장급 간부가 단톡방에 공지로 특정인을 겨냥해서 비난하기도 했다. 한번은 간부가 '단체카톡방에 단체대상 공지한 부분에 대해 답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성문을 강요한 적도 있었다. 정작 당사자는 단체공지라 생각했기에 기억조차 나지 않는 문제였다.” 

 

공무원 F씨(38)
“카톡 엄청 많다. 제일 바쁠 때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아침에 눈 떠서 씻기도 전에 국장 메시지가 와 있다. 밤에도 비상이라면서 업무 카톡이 와 있다. 그 때 말하는 지시라는 게 뭘 찾아봐라, 보고서를 써라 이런 건데도 낮밤 없이 보낸다. 카톡의 문제가 뭐냐면 스크린을 거치지 않는다. 옛날에는 장관한테 지시를 받으면 국장이 한 번 소화를 한 다음에 실무자들에게 내려오는데 지금은 속기록처럼 받아서 그대로 떨어진다. 장관→국장, 국장→실무자 이야기의 수준이 달라야 되는데 지금은 장관→실무자로 바로 오는 셈이다. 업무 지시에 강약 조절이 안 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