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기획사들, ‘블루오션’ 인디씬 개척 뛰어들어
  • 이경준 대중음악 평론가· 음악웹진 ‘이명’ 편집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24 14:17
  • 호수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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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 모델 창출’ 우선인 기업 정서와 ‘독립적인 창작’이 먼저인 인디뮤지션의 충돌 우려도

 

6월1일, 로엔엔터테인먼트(로엔)가 만든 인디레이블 ‘문화인’이 첫발을 내디뎠다. 로엔은 국내 최대 음악 사이트 멜론을 인수한 대형 기획사다. 이미 우효, ‘신현희와 김루트’ 등 인디씬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춘 아티스트들과 계약을 체결한 문화인은 “인디음악 활성화를 통해 음악시장의 균형 있는 발전을 주도하겠다”는 당찬 포부까지 밝힌 상태다. 

 

 

SM·YG 이어 로엔 거대 자본, 홍대로 향해

 

로엔과 같은 대규모 자본의 인디씬 진출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SM엔터테인먼트가 설립한 인디레이블 ‘발전소’가 문을 열었고, 지난해엔 YG엔터테인먼트가 ‘하이그라운드’라는 이름으로 사업에 뛰어든 바 있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의 자본이 홍대로 향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곳은 타블로가 소속된 기획사 및 레이블 하이그라운드다. 지난해 3월 간판을 올린 하이그라운드는 혁오·검정치마·코드쿤스트·인크레더블·밀릭 등 록밴드부터 힙합 뮤지션까지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뮤지션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하며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멜론을 보유한 로엔이 그에 뒤지는 행보를 보일 리 없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물론 계기는 존재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십센치 등 인디뮤직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 먹힐 수 있다’는 게 증명된 후다. TV·라디오·콘서트는 이들의 음악을 전파해준 매체가 됐다. 결정타는 혁오가 날렸다. MBC 《무한도전》은 이들의 네임밸류를 비약적으로 상승시켜준 계기였다. 아니, 누가 뭐라고 해도 지난해는 혁오의 해였다. 비단 음악만이 아니라 패션·말투·제스처·뮤직비디오 등 멤버들을 둘러싼 모든 것이 화제 속에 소비되지 않았나. CD는 품절사태를 일으켰고, 그사이 밴드는 대형 페스티벌을 누비고 다닐 만큼 강한 ‘티켓 파워’를 가진 팀으로 성장했다. 

 

‘혁오 신드롬’은 하나의 모멘텀이 되었다. 영민한 흥행사들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자본은 더욱 거세게 홍대를 빨아들였다. 이미 ‘레드오션’이 된 아이돌 시장보다 상대적으로 개척하기 쉽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느 정도 음악적으로 완성된 인디뮤지션들을 키우는 것이 효율성 측면에서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자본이 어딘가로 이동할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대규모 자본의 장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가정이 몇 개 필요하다. 대형 엔터테인먼트사가 좋은 기자재, 멋진 연습실, 압도적인 섭외 능력 등을 바탕으로 인디뮤지션들을 지원해줄 수 있다면. 이에 힘입은 뮤지션들이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해 본인의 영예를 드높일 수 있다면. 기획사가 음악적 방향에 대한 구속이나 간섭을 하지 않는다면. 하지만 이것이 수월하지 않은 미션임을 관계자들은 안다. ‘수익모델 창출’이 우선인 기업의 정서와 ‘독립적인 창작’이 먼저인 인디뮤지션의 태도가 충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본디 이런저런 가정이 많이 붙을수록 현실과는 멀어지는 법이니까. 

 

이쯤에서 ‘인디(indie)음악’이라는 말의 어원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문자 그대로 ‘인디펜던트(independent)’한,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음악’이라는 의미다. 그 발생부터, 뿌리부터 거대 자본과는 궤를 달리하는 음악이다. 확고한 음악관과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씬을 일궈냈으며, 네트워크를 이루었다. 1996년 한국 인디 음악의 탄생을 천명한 ‘스트리트 펑크 쇼’부터 저 흐름은 자생적이었고 자발적이었다. 그 안에선 지금도 펑크·헤비메탈·모던록·포크·재즈·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이 배출되고 있고, 나름의 팬층이 형성되고 있다. 따라서 일부의 시각처럼, 이곳은 결코 메이저로 뜨지 못한 이들이 집단적으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소굴이 아니다. 주류와 ‘다른 공간’이지, ‘그 아래에 있는 공간(언더)’이 결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인디를 아직 탐사되지 않은 자원의 보고(寶庫)쯤으로 간주하는 메이저 엔터테인먼트사와 현재의 홍대 씬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발상이 그다지 미덥지 않다. 

 

 

기존 인디 생태계 한층 가혹하게 만들 것

 

창작에 대한 제약 못지않게 우려되는 건 현재 존재하고 있는 중소 규모 인디레이블들의 생존 가능성이다. 그들이 시장에 진입하기 전부터 오랫동안 씬에 애착을 가지고 꿋꿋하게 버텨오던 레이블들이 있었다. 카페나 술집에서 격의 없이 만나는 이들은 ‘남이 잘되는 게 내가 잘되는 것’이라는 마인드로 상대에게 연료를 공급해주고 있다. 아티스트에 관한 조언을 주고받기도 하고, 중요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넘친다. 적어도 필자가 알고 있는 인디씬은 그런 영역이다. 자, 거대 자본이 유입된 후에도 이런 훈훈함이 유지될 수 있을까. 자신하긴 힘들다. ‘아직 벌어진 일이 아닌 것에 걱정하지 말라’는 금언(金言)도 있지만, 전례를 살펴봤을 때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의 씬 진입은 생태계를 한층 가혹하게 만들 확률이 높다고 판단된다. 

 

특히 이번 로엔의 인디씬 진출이 우려되는 것은 그들이 시장점유율 60%에 달하는 멜론을 운영하는 회사라는 점 때문이다. 멜론의 차트가 곧 음악 씬을 좌우할 수 있을 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로엔의 행보는 내부의 새 파이를 키우려는 데 포커스가 맞춰진 것처럼 보인다. 기업이 수익을 내겠다는 걸 비난만 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포석이 눈에 뻔히 보인다는 게 문제다. 온라인 음원 1위 업체, 음원유통사, 음반제작사, 인디레이블. 이 단어들이 합쳐졌을 때, 어떤 위력을 지닌 존재가 출현하게 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이는 오른손엔 국왕의 칼, 왼손엔 주교의 목장(牧杖)을 든 무소불위의 권력체 ‘리바이어던’의 재림은 아닐까. 부디 필자의 오판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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