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의 음식인류학] 단맛으로 스트레스 날리던 때는 지났다
  •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07 15:15
  • 호수 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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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지나친 당분 섭취, 오히려 스트레스 늘어날 수도

 


 

“직장이나 가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단 음식에 끌리는 것이 당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새로운 연구는 당신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줄 것이다.” 이 문장이 확 눈에 들어오면서 그 연구가 뭘까 궁금해진다면, 당신도 보편적인 이치에 의해 움직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자연인이다. 그 이치란, 인간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미각을 느끼는 구조가 조정되면서 단맛이 나는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문장은, 뉴스위크 등 저명한 저널들을 출판하는 미국 IBT 미디어의 의학저널 ‘메디컬데일리’에 실렸던 2014년 6월 기사의 인트로(intro·도입부)로, 당시 막 보고되었던 ‘모넬 화학적 감각 센터’의 연구결과를 소개하려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경제 정착에 설탕이 대표적 역할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장과 췌장의 미각 수용체 판도가 달라져서, 당류의 대사에 관계하는 글루코코르티코이드(GC)라는 호르몬의 수용체가 늘어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뢰(味蕾)에 영향을 주어서 단맛이 나는 음식을 더 맛있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단맛을 내는 성분이 수용체에 충분히 결합되면 유전자 표현형과 단백질 결합이 달라져 우리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안정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됩니다.” 모넬 센터 보고서의 대표 저자 락웰 파커 박사의 설명이다. 전문적인 용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뭔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단맛에 끌리는 것은 정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몸 구조 자체의 이치에 맞게 움직이는 반응인 것 같다는 정도는 충분히 짐작하게 해준다. 

 

왜 우리 몸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단맛을 요구하며, 단맛이 충분히 주어지면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일까. 1980년대의 진화인류학자들은 그 이유를 유명한 ‘투쟁도피설’과 관련지어 설명해왔다. 인간으로서 우리 몸의 유전자 정보가 축적돼온 원시시대 동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뭔가 자기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과 맞닥뜨리는 것을 의미했다. 맹수와 마주친다든지, 산불이 난다든지. 어떤 경우든 근육의 힘을 극한으로 이용, 싸우거나 도망쳐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혈관 속에서 빨리 에너지원으로 전환되는 당류를 섭취할 필요가 있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당류를 충분히 섭취해두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헤쳐 나갈 채비를 든든히 해두는 것이므로 마음이 진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표적 음식인류학자 중 하나인 시드니 민츠(Sidney Mintz)의 견해에 의하면, 그렇다 하더라도 현대인은 지나치게 많은 당분을 섭취한다는 것이다. 그는 명저 《스위트니스 앤 파워》(원제 Sweetness and Power, 국내에서는 《설탕과 권력》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됨)에서 현대인인 우리가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훨씬 더 많은 당분을 일상적으로 섭취하면서 살게 된 역사적 과정을 지구적 차원의 정치경제학적 맥락에서 명쾌하게 설명해낸다.

 

현대인은 과거에 비해 많은 동물성 단백질을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동시에 곡물은 거의 섭취하지 않는 편이며, 한편 설탕·과당 등의 정제된 고농도 당류를 엄청나게 섭취하는 식생활을 하고 있다. 민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곡물과 같은) 복합 탄수화물은 식사의 중심부에서 밀려나기 시작하고, 식사는 대부분 고기와 여러 종류의 지방, 그리고 설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고대의 수렵·어업·농경 사회와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에스키모족·틀링깃족 또는 마사이족이 영양학적으로 유별난 식사법을 갖고 있다지만, 미국·아르헨티나·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도 그런 점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의 결론을 간단히 말하자면, 근대기에 들어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지구적 규모의 자본주의 경제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대표적인 역할을 한 아이템이 설탕이라는 것이다. 남미의 대농장에서 아프리카 노예의 노동력으로 생산해낸 설탕을 유럽·아시아 등의 소비지에 파는 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당분을 과잉섭취하게 만드는 소비문화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민츠의 분석과, 아울러 앞에 나온 스트레스와 단맛의 관계에 대한 생리학적 설명들을 종합해보면, 현대인이 과다하게 당분을 섭취하게 된 까닭이 경제학적으로 납득이 간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에서 생산 및 소비가 결정된다는 이론! 대농장에서 생산되는 설탕을 최대한 공급하려는 근대유럽 자본가의 이해관계와, 복잡해져가는 현대생활의 점점 더 심해지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쉽게 정서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값싼 당류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가 맞아떨어졌다고 봐야 할까.

 

 

불필요한 당분 섭취, 영향 불균형 초래

 

문제는 당류의 섭취가 더 이상 솔루션이 아니라는 데 있다. 현대의 스트레스 상황은 원시시대와는 다르다. 혈관 속에서 빨리 에너지로 전환될 혈당의 농도가 충분히 높다 하더라도, 그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은 나를 쫓아오는 곰, 시시각각으로 퍼져나가는 산불이 문제가 아니다. 오늘 안으로 반드시 내야 하는 기안서, 시도 때도 없이 내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한 소리 하고 가시는 우리 부장님의 존재가 스트레스의 근원이다. 이는 당분을 충분히 보충했다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하게 당을 섭취해서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비만이 된다면, 스트레스 요인만 더해지는 셈이 된다.

 

오늘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가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서 갑자기 달콤한 아이스크림 파르페가 먹고 싶어진 당신. 그렇다면 현대적 상황에서 원시적 해법을 구하고 있는 셈이다. 그보다는 옥상에라도 올라가서 심호흡을 하거나, 아님 회사 인근 거리를 좀 걸으면서 장(腸)에 충분히 혈액순환이 되게 해주면, 장에서 창의성 뇌(腦)호르몬인 세로토닌의 전구물질이 만들어져 뇌로 보내지게 되므로, 멋지게 기안서를 마무리할 아이디어가 떠오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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