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갈등 ‘휴화산’ 다시 불 뿜다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19 11:04
  • 호수 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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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CNN, 잇따른 총격 사건에 “사실상 내전(civil war) 상태”

7월12일(현지 시각), 한때 라이벌이었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이 함께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Air Force One)’에 탑승하는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백인 대통령과 흑인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이들 두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얼마 전에 흑인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5명의 경찰관을 추모하는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경찰관이 공권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총격으로 여러 흑인들이 잇달아 피살되고 이에 더해 매복한 흑인에 의해 5명의 경찰관이 저격 살해되는 등 미국의 흑백 갈등 문제가 최악으로 치닫자 흑백 화합을 강조하기 위해 오바마와 부시가 서로 손을 잡은 것이다.

 

 

미국 내 ‘흑백 갈등’이 격화할 조짐이다. 7월11일(현지 시각) 시카고에서 시위자들이 경찰의 흑인 과잉진압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상 최악 흑백 충돌 ‘붉은 여름’ 우려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의 가장 깊은 단층선이 더 벌어졌다”며 “미국 내 분열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확실히 최근에 더 악화돼 왔다”고 말했다. 그만큼 최근 발생하는 흑백 갈등의 폭발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도를 더하고 있다. 흑백 갈등이라는 휴화산이 다시 불을 내뿜기 시작한 것이다. 흑인들의 시위를 관리하던 경찰관이 매복한 흑인에 의해 5명이나 동시에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흑인들의 시위는 진정되기는커녕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수많은 흑인들이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는 구호를 외치면서 거리로 나서자, 잠시 잦아드는 듯했던 시위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 이 휴화산의 폭발로 인해 자칫 미국이 인종 분열로 다시 쪼개질 수 있다는 절박감이 흑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오바마와 부시를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다. 


이 보기 드문 광경이 말해주듯이, 미국에서 흑백 갈등의 뿌리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채 조금만 건드리면 폭발할 가연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오바마 대통령을 배출하고도 이 갈등의 뿌리는 전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근래에만 2014년 8월 미주리주(州) 퍼거슨에서 비무장 흑인 청년이 백인 경찰의 총격에 사망해 폭동 사태를 불러왔으며, 지난해 4월에는 경찰이 흑인 청년을 체포해 이송하는 과정에서 구타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해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폭동이 발생하는 등 미 전역에서 폭동으로 이어지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미 CNN방송이 최근 발생한 흑백 갈등에 관해 ‘사실상 내전(civil war) 상태’라고 표현할 만큼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경찰관 5명이 동시에 저격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현지 경찰들의 강경 진압 분위기가 높아지면서 언제 또 다른 일촉즉발의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부는 “경찰의 과도한 진압과 흑인의 인권운동으로 흑백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0년대나 70년대에도 볼 수 없던 장면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에선 계속 사태가 커지다가는 1919년 시카고에서 발생해 미 전역 25개 도시로 번져 흑인 23명과 백인 15명이 사망하고 537명이 부상을 당했던 사상 최악의 흑백 충돌 사건인 이른바 ‘붉은 여름(red summer)’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최근 다시 급속하게 불거지는 미국의 흑백 충돌 문제는 흑인 노예 해방 문제를 놓고 남북전쟁을 벌였던 미국에 아직도 흑백 갈등의 뿌리가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구나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로 대표되는 흑인 인권운동 과정에서 흑인들의 참정권 확보 등 수많은 개선을 이뤘지만, 흑백 갈등은 잠시 휴지기에 들어간 것일 뿐 언제 폭발할지 모를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뇌관이 된 모습이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켰지만, 흑백 갈등이 개선되기는커녕 더 악화하고 있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더구나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윤리적 논란은 뒤로한 채 이러한 갈등을 더욱 여과 없이 전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남자친구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져가는 장면을 함께 탑승한 여자친구가 그대로 동영상으로 생중계하거나, 검문당하는 흑인이 두 팔을 들었음에도 경찰이 총을 발사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본 흑인들의 분노가 더욱 폭발하는 계기가 된 것도 1960년대와는 또 다른 현상이다. 


더구나 최근 발생하는 흑인들의 시위 사태에 관해 그동안 공개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백인 보수층들도 경찰관 5명이 총격을 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백인 경찰은 무조건 나쁘다는 선입견이 문제”라며 흑인 시위대를 향해 공개적으로 반론을 펴고 있다. 자칫 ‘흑인 대 경찰’이 아닌, 흑인과 백인이 정면충돌하는 인종 간 갈등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갈등의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물 경우, 그동안 잠재됐던 휴화산이 일거에 폭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7월12일(현지 시각) 총격으로 사망한 댈러스 경찰관 5명의 추모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흑인 지지받는 힐러리 유리’ 관측


이러한 상황은 당장 올 11월에 실시될 미국 대선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흑인 계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유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남발하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보다 분노한 흑인들의 표가 더욱 클린턴에게 쏠릴 것이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발생한 경찰관 피살 사건이 오히려 백인 보수층을 자극해 트럼프에게 유리할지도 모른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그는 흑백 갈등이라는 마그마를 품고 있는 휴화산 위에서 미국 대통령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다시 불거지고 있는 흑백 갈등과 충돌에 관해 미국 뉴욕에서 30년째 생활하고 있다는 한 교민은 “사실 돌이켜보면, 그나마 흑인 인권이 실질적으로 향상된 것도 불과 반세기가 채 되지 않는다”며 “흑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삶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자신의 파이를 다 나눠주고 있다는 불만이 저변에 깔린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어쩌면 흑백 갈등은 갈수록 더 활화산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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