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테마주’ 투기 열풍 부는 파주 민통선
  • 노경은 시사비즈 기자 (rke@sisabiz.com)
  • 승인 2016.07.22 09:50
  • 호수 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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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 몰려드는 파주 민통선 현지 르포…‘묻지마 투자’ 위험 경고도

“매물 나오면 한 시간 만에 계약하는 일도 허다하다. 애물단지였던 이 땅이 이제는 보물단지가 되고 있다.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이 대선 출마만 공식화하면 2배는 더 뛸 거다. 일단 사뒀다가 나중에 호재 나오면, 그때 던지면(팔면) 차익이 생기니 돈 놓고 돈 먹기다.” 휴전선 인근 민간인통제구역에서 만난 한 부동산 투자자가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지난 7월9일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했다는 뉴스 속보가 쏟아지고 있을 때에도 민통선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이어졌다. 금단의 땅 민통선을 투자처로 인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해발 1000m 이상 고지가 형성된 동쪽 강원도 고성이나 양구보다는 구릉지와 저습지가 분포한 서쪽, 즉 파주시 민통선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파주 문산읍에 거주하는 김대길 공인중개사는 “민통선 토지 매매 문의와 거래가 급증했다”며 “왜 이런 맹지까지도 사겠다고 줄을 서나 싶을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내 통일촌마을


 


“潘 출마설 나온 6월초부터 투자자들 몰려”


민통선은 휴전선 일대의 군사작전과 군사시설 보호 등을 위해 남방한계선을 기준으로 5~20km 선을 그어 민간인 출입을 제한한 지역이다. 서울시 면적의 약 3배에 달한다. 들어가려면 지주 등 몇몇에게만 나오는 출입증을 지참하고 신분확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새벽 6시부터 출입 가능하고, 오후 6시30분까지 나가면 된다. 문산역에서 차로 10여 분만 더 가면 민통선 신분 심사 구역에 도달한다. 간단한 절차를 거친 뒤 진입하니 눈앞에는 개발에 노출되지 않은 논과 밭, 산과 물로 이루어진 탁 트인 자연경관이 펼쳐진다.


건축 행위도 제한된 이 청정지역에 최근 투자가 몰린다고 하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접근이 쉽지 않은 데다 개발로부터 철저히 보호받는 지역이어서 지가도 상당히 낮다. 민통선 가운데 가장 비싸다는 도라산역 인근 파주 장단면 노상리 밭도 3.3㎡당 20만원 내외이고, 임야는 8만~10만원 선에 거래된다. 대부분 1000평 이상의 대형 매물이지만, 소규모 물건은 수백만원으로도 매입이 가능하다. 심지어 인기가 덜한 지역이나 접근이 아예 불가능한 비무장지대(DMZ) 임야의 경우 3.3㎡당 1만원 선인 곳도 있다. 토지이용계획확인서를 보면 지뢰지역이나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토지들이다.


땅 1만 평을 사도 1억원 수준일 정도로 가격 부담이 적으니 기회의 요인으로 판단하고 베팅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날 만난 한 투자자는 “반기문 총장 대선 출마 가능성이 보도된 지난 6월초부터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몰려왔다. 추후 반 총장이 내거는 공약으로 대북정책 기조가 바뀌면 지가가 오를 테니 지금 사는 게 적기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밭·임야·잡종지 등 지목이나 용도에 관계없이 가격만 맞으면 계속 매입하고 있다. 어차피 기다렸다가, 향후 거주나 건축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호재에 편승했다가 도중에 팔아치울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DMZ 땅은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너머에 있는 철조망 저편 땅이다. 들어갈 수 없고, 먼발치에서도 바라볼 수 없다. 거래는 지적도와 등기부등본에만 의존해 이뤄진다. 비무장지대 땅은 공익적 목적에 맞게 활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잘못 손댔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충고가 잇따른다. 그런데도 싼 맛에 구미가 당겨서인지 투기 열풍은 가라앉지 않는다. 또 다른 투자자는 ‘남북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투자에 부담이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원래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 아니겠나. 부담보단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매입한 DMZ는 출입이 불가능해 땅을 보거나 밟지도 못하고 사들이긴 했다”고 밝혔다.

 

 

5월31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경주화백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6차 유엔 NGO(비정부기구) 컨퍼런스’ 개막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일회성 노린 특정세력 의한 한탕주의 성격


투자 열기가 달아오르자 공인중개사무소도 편법을 활용하고 있다. 일단 매물이 나오면 본인(중개사무소)이 계약금을 걸고 매물을 거두어들인 뒤 추후 고객에게 매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고객이 매입을 고민하는 사이에 타 중개소를 통해 거래될 정도로 매물이 빨리 소진되기 때문에 꾀한 고육지책이다.


파주 민통선 인근이 ‘반기문 후광’으로 시장 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으나 기대감만으로 매수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실사용 목적이 아닌 테마주 형식으로 이슈가 되는 지역의 토지를 샀다가 본전도 못 찾고 매도도 안 돼 발이 묶이는 ‘쪽박’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월 동남권 신공항 유치전보다 더 뜨겁게 달아올랐던 묻지마식 토지 투자 광풍도 결국 투자자들에겐 큰 손실만 남기고 수그러들었다. 적당 선에서 먼저 빠져나오지 못하면 오히려 손도 털지 못하고 원금 이하를 맛보는 것이다.


많이 정리된 편이긴 하나 민통선 부지는 아직까지 소유권과 관련한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남아 있다. 1990년대 초반 정부가 추진한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 악용 사례 영향 탓이다. 6·25 전란 이후 등기소가 불타버린 탓에 국가가 국민들에게 재등기를 요구하며 등기를 회복시켰다. 그럼에도 주인 없는 땅이 너무 많아 1990년대 초반 부동산등기특별법을 제정해 소유권을 되찾아주려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소유권을 증명할 만한 서류가 없는 사람의 경우 ‘이 사람의 땅이 맞다’라고 증언해줄 수 있는 증인 세 명만 데려오면 소유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인우보증을 통한 보존등기라고 한다. 당시 인우보증을 악용한 사기꾼들이 소유권을 획득하면서, 뒤늦게 나타난 실소유주와 사기꾼 간의 법적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011년 말에는 민통선 내 임야 132만㎡를 승마장과 스키장으로 개발하면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속여 3만100여 명으로부터 70억여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최대 징역 5년의 선고를 받은 사례도 있다.


결국 최근 불어 닥친 파주 민통선 투자 열풍은 꾸준히 우상향 가능한 시장이라기보단 일회성 재료를 노리고 진입하는 특정 세력에 의한 한탕주의 성격이 짙다. 한 토지거래 전문업체 관계자는 “시장분석도 없이 이슈에 편승해 저지르고 보는 이른바 묻지마 투자는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을 교란시키는 사회악 행위를 근절하고 건전한 부동산 시장 구조와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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