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문화의 새 바람 ‘SNS 반상회’가 뜬다
  • 이성진 인턴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25 14:17
  • 호수 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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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남동·망원동 등 동네 기반 SNS 통해 이웃 소통 활발

 

“별다른 이견이 없으시면 올 크리스마스 아그들 선물은 노트로 하겠습니다. 더 할 말 없지요?”


“이제 집에 좀 갑시다. 봉황당 자는 거 안 보이오? 먼 놈의 반상회를 3시간씩이나 한다요.”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반상회 장면이다. 한 달에 한 번 주민들이 모여 갖가지 안건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반상회. 이제는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아파트 주민대표회의는 있어도 반상회를 하는 동네는 드물다. 바쁜 일상 속, 옆집 사람의 얼굴 한 번 보기도 쉽지 않다. 그만큼 사회가 각박해진 지 오래다.


하지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이웃사촌 문화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한 지역 소통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웃 간의 소통에 목말랐던 이들이 SNS를 통해 교류를 하면서 정을 나누고 있다. 일상 이야기뿐 아니라 물건 나눔, 동네 현안에 대한 논의 등 과거 반상회를 SNS가 대체하는 모습이다.

 

 


SNS에서 커가는 동네·이웃 사랑

 


서울 망원동과 연남동, 그리고 서촌 등에서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SNS 모임을 통해 소통하는 이웃사촌들이 늘고 있다. 우종현씨(34)가 개설한 페이스북 그룹 ‘연남동부루스’는 현재 95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10년째 거주 중인 우씨는 지인들과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커뮤니티를 개설했다가 지금의 연남동부루스를 만들었다. 연남동을 찾는 젊은이들이 늘면서 그룹은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이는 연남동만의 일이 아니다. 전우영씨 등이 개설한 ‘망원동 좋아요’는 멤버 수가 1만2560여 명에 이른다. 망원동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서촌’ 그룹은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교수가 개설해 현재 1870여 명의 멤버가 교류하고 있다. 이들 모두 동네에 대한 애정과 소박한 일상생활을 공유하고 있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게시물은 다양하다. 근처 맛집 정보는 물론 동네에서 진행되는 각종 축제·공연 일정을 공유한다. 오래돼 안 쓰는 물건도 그냥 버리지 않는다. 그룹 게시판에 올려 이웃과 나누거나 판매한다. 급하게 필요한 물건도 그룹을 통해 빌린다. 안아무개씨는 곡 녹음을 위한 노트북 충전기를 그룹 이웃으로부터 2시간 만에 빌렸다. 길 잃은 반려동물의 주인을 찾아주기도 한다. 연남동부루스 개설자 우씨는 “잃어버린 반려동물을 찾아주며 함께 인증샷도 남기고, 그 후로 만남을 지속하는 분들도 계신다”고 말했다.


SNS 모임은 동네 현안을 논의하는 회의장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 조성된 연남동 숲길은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지만 1년 만에 쓰레기와 소음으로 몸살을 앓게 됐다. ‘연남동부루스’ 내에서는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줄을 이었다. 당시 ‘쓰레기 투기’는 그룹 내 관심 주제로 떠올랐다. 구성원들은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그룹에 계속해서 개진했다. 그룹 관계자는 “그룹 내 논의가 강제적 해결책을 마련하진 못하지만, 동네 주민들이 쓰레기 투기를 심각한 문제로 자각하고 이를 함께 고민하는 데 의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촌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올라 기존 거주자들이 내몰리는 현상)이 심각한 지역 중 한 곳이다. 구성원들은 이와 관련한 기사를 담벼락에 공유하거나 점차 훼손되는 옛 모습에 대한 아쉬움, 높아진 임대료에 대한 씁쓸함을 푸념한다. 2012년 서촌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그룹을 개설한 로버트 파우저 교수는 “동네의 변화를 기록한 사진이 그룹에 자주 올라온다”고 밝혔다. 그는 “서촌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변화’이기에 훗날 그룹에 올라온 사진들이 귀중한 역사 자료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장균씨(37)는 한때 ‘망원동 좋아요’ 그룹의 유명 인사였다. 우연히 동네 SNS 모임을 알게 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올린 그의 번개(즉흥적인 모임) 제안은 많은 이웃을 불러 모았다. 많게는 일주일에 세 번씩 식사나 술 모임을 가졌다. 그는 과거에 인사도 않던 이웃과 지금은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그룹 ‘서촌’ 내 오프라인 모임도 늘고 있다. 서촌 주민 설재우씨(36)는 곧 개봉을 앞둔 영화들의 전작 《니모를 찾아서》 《나우유씨미 1편》 등을 감상하는 동네 영화상영회를 열었다. 설씨는 “지역 주민들과의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소통하는 주된 이유는 ‘외로움’


이들이 그룹에 자신들의 일상을 올리며 끊임없이 소통하는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다. 7년간의 독일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망원동으로 돌아온 나씨는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페이스북 그룹에 동네 모임을 제안한 이유도 혼자 사는 적적함 때문이었다. 얼마 전 강남에서 망원동으로 이사와 ‘Coner386’ 카페를 운영하는 박형진씨(37)도 마찬가지다. 박씨는 SNS를 통해 만난 몇몇 이웃들과 채팅방을 만들어 주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회원 수가 늘어나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한 지역 커뮤니티 관리자 전아무개씨는 “그룹 규모가 커짐에 따라 홍보를 목적으로 가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그룹이 노출되는 것을 꺼렸다. 최근 그룹들의 게시물을 살펴보면 각종 레슨 회원모집, 음식점 및 카페 홍보 글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김동원 한국외대 교수는 “지역공동체 플랫폼이 항상 아름답지는 못하다”며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과 자본이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속가능한 온라인 지역 플랫폼이 되기 위해서는 오프라인에서의 움직임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일방향적인 콘텐츠 나열은 커뮤니티를 망치며 제안과 질문의 콘텐츠 생산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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