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폴크스바겐 파국 자초하나
  • 박성의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28 15:03
  • 호수 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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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집단소송 원고 1만 명 넘을 수도… 배상·리콜 계획 등한시한 채 ‘배짱 영업’ 계속

‘국민 수입차’ 폴크스바겐이 사면초가에 놓였다. 폴크스바겐이 내놓은 리콜안은 환경부로부터 ‘엉터리 리콜 계획’이라는 힐난을 들으며 세 차례나 퇴짜 맞았다. 검찰은 폴크스바겐 본사 임원 소환 계획까지 내놨다. 여기에 수입된 70여 개 차종이 허위 인증 논란에 휘말리며 국내시장 퇴출 위기까지 몰렸다. 상황이 이런데도 폴크스바겐의 국내 ‘배짱 영업’은 계속되고 있다. 할인 프로모션과 시승 행사에만 열을 올린 채 국내 소비자에 대한 배상은 거부하고 있어 폴크스바겐 국내 집단소송 원고가 최대 1만 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연 없는 이름은 없다. 1937년 독일 태생의 폴크스바겐(Volkswagen)은 ‘Volk(국민)+s(합성어 결합요소)+wagen(차)’의 합성어다. 이름대로 폴크스바겐은 서민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신념이 담긴 회사다. 한국에 들어온 건 2005년이다. 플래그십 모델인 ‘페이톤’을 비롯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구안’, 중형 세단 ‘파사트’, 해치백 ‘골프’ 등 다양한 판매 라인업을 갖췄다. 특히 경유차(디젤) 라인업의 TDI 모델이 인기를 끌며 수입차업계 디젤 판매 1위에 올랐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잘나가던 폴크스바겐이 멈춰 섰다. 디젤차량 배기가스를 고의적으로 조작한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진 탓이다.

 

 

7월14일 서울 시내 한 폴크스바겐 전시장 앞에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환경부는 폴크스바겐 70여 개 모델이 허위·조작된 서류를 통해 인증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판매정지와 인증취소 등 각종 행정처분을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과징금 규모, 최대 880억원에 달할 전망

 

지난해 10월은 폴크스바겐엔 악몽이었다. 9월 빚어진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 여파가 10월 국내 판매량을 끌어내렸다. 지난해 10월 폴크스바겐 차량은 국내에서 947대가 팔려 나가며, 2014년 같은 기간 판매량(1759대)보다 46.2% 급감했다. 폴크스바겐은 11월 대대적인 할인 프로모션을 꺼내 들었다. 티구안·골프 등 주력 모델에 60개월 무이자 할부 혜택을 적용했다. SUV 투아렉 3.0 TDI R-Line을 현금 구매할 경우, 최대 1772만원 추가 할인 혜택까지 부여했다. 효과는 탁월했다. 11월 한 달간 4517대가 팔려 나가며 전월 대비 377%, 지난해 같은 기간 판매량(2727대)보다 65.6% 급성장했다. 폴크스바겐 11월 전 세계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2.2%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국내에서의 이례적인 선방(善防)이었다.

 

올해는 카카오택시와 손을 잡고 이미지 쇄신에 나서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7월5일부터 자사 차량을 카카오택시로 무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 강남과 수원·성남·안양·고양·인천 등 6개 수도권 지역에서 고객이 카카오택시를 호출하면, 무작위로 가까운 전시장에 있던 파사트·골프 등 25대의 폴크스바겐 차량이 택시 대신 호출지로 간다. 원하는 고객에 한해서는 호출된 차량을 직접 운전할 수 있도록 했다. 카카오택시 내부에는 폴크스바겐 신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아이패드가 장착됐다. 폴크스바겐은 이 같은 프로모션을 통해 차량 구매를 유도하고 자사 차량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도 지워 내겠다는 복안이다.

 

폴크스바겐이 프로모션을 통해 판매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경영 상황은 녹록지 않다. 폴크스바겐은 지난 1월과 3월 환경부에 리콜 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조작 사실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달아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지난 6월2일 폴크스바겐은 세 번째로 제출한 리콜 계획서에도 임의설정을 시인한다는 문구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환경부는 폴크스바겐에 리콜 계획을 보완하는 수준이 아닌 원점서 재검토하라는 초강수를 뒀다. 설상가상 폴크스바겐이 자사 차량을 국내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시험성적 등을 조작했다는 혐의가 불거졌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2007년부터 올해 6월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아우디와 폴크스바겐 32개 차종 79개 모델에 대해 인증취소를 통보했다.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시험성적서 조작 혐의로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 인증담당 임원 윤아무개 이사를 구속했다. 검찰은 이어 폴크스바겐 한국법인의 변호인을 통해 독일 본사 임직원 7명에게 출석요청서를 보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 총괄대표를 지낸 트레버 힐(54)과 차량 엔진 개발자 및 기술자 등이 출석요청서에 포함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폴크스바겐이 저감장치를 조작한 디젤 차량을 친환경 차량이라 거짓 홍보했다며, 허위·과장 광고 혐의로 폴크스바겐코리아 전·현직 임원 10명을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다. 혐의 인정 시 과징금 규모는 표시광고법 위반에 대한 과징금 상한선인 매출의 2%, 최대 88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가격 내리면 사고 보는 소비자 관행도 문제 ”

 

폴크스바겐이 정부와 검찰로부터 철퇴를 얻어맞으면서도 판매에만 열을 올리는 사이, 국내 소비자들의 반감은 눈덩이처럼 커져 갔다. 폴크스바겐이 미국에서는 18조원 규모의 소비자 배상 계획을 발표한 반면, 국내 소비자에 대한 현금배상 계획 등은 없다고 발표한 탓이다. 이에 올해 들어 잠시 주춤했던 ‘폴크스바겐 줄소송’에 참여할 뜻을 밝히는 국내 소비자들이 다시 늘고 있다. 폴크스바겐이 퇴출될 수 있다고 하자 중고차 값 폭락 및 애프터서비스(A/S) 부재 등을 염려한 소비자들이 소송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7월21일 폴크스바겐 국내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바른에 따르면, 환경부 인증 취소 방침 발표 이후 하루 평균 소송 문의 건수가 40건에 달하고 있다. 바른 측은 추가 소송 의뢰자가 2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7월 말 중 20차 소송을 서울중앙지검에 제기할 예정이다. 7월21일 현재 원고 수는 4542명이다.

 

폴크스바겐 소송이 장기화할 경우, 원고가 최대 1만 명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환경부가 올해 인증 취소를 예고한 차량은 총 7만9000여 대다. 지난해 11월 이미 인증이 취소된 폴크스바겐 디젤차 12만5515대를 합하면 국내에서 판매된 아우디·폴크스바겐 인증 취소 차량은 20만4000여 대에 이른다. 산술적으로 이들 차량 구매자 10명 중 1명만 소송을 제기해도 원고는 2만 명을 넘어간다.

 

전문가들은 폴크스바겐 사태를 계기로 국내 법규 및 소송환경이 친(親)소비자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리콜만으로 문제를 덮으려는 기업 행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더불어 소비자 인식 제고가 동반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필요하다면 미국식 징벌적 보상제를 일부 도입하는 등 소비자 중심의 제도적 기반을 닦아야 한다”며 “무이자 할부 등 가격 하락이 발생하면 물밀듯이 구입하고 보는 소비자 관행도 문제다. 단순히 비용만 따지지 말고 환경적 부분이 부메랑이 돼 후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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