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가 한 무대에서 함께 호흡
  • 박소영 공연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29 15:23
  • 호수 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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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포네 트릴로지》와 《사이레니아》의 인기 행진. 지금 대학로는 ‘이색 관극’ 열풍 중

죽은 아내의 복수를 준비하는 한 남자가 있다. 한때 경찰이었던 이 남자는 시카고의 한 호텔방에서 먹고 자며, 복수의 날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어느 날, 아내를 죽게 한 A의 딸이 복수를 돕겠다며 이 남자를 찾아온다. 아내와 그녀는 친구였다. 그녀를 불신하던 주인공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녀를 믿게 되고, 그녀를 이용해 A를 호텔방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을 도왔던 그녀가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또 다른 장본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체를 들킨 여자는 주인공을 죽이려 하고, 주인공은 그제야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다.

 

《카포네 트릴로지》 이석준(올드맨 역), 윤나무(영맨 역), 김지현 (레이디 역)


 

 

연극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고 있다고 착각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총 세 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연극으로, 위 내용은 세 편(로키·루시퍼·빈디치) 가운데, ‘빈디치’ 편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세 편은 각각 10년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이어지는데, 공간적 배경은 시카고의 호텔방으로 모두 같다. 각각이 완결성을 띠는 독립적인 이야기라, 한 편을 봐도 두 편을 봐도 무방하지만, 세 편을 모두 보면 플러스알파가 보인다.

 

《카포네 트릴로지》의 가장 큰 장점은 ‘템포’다. 절제된 대사와 빠른 이야기 전개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예리한 연출은 음악과 조명을 사용해 장면 전환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조명이 켜지면 시점은 현재에서 과거로 되돌아가고, 음악이 나오면 가정이 현실이 되는 식이다. 대부분의 연극이 명멸하는 조명으로 막과 막을 구분하지만, 《카포네 트릴로지》는 조명과 음악의 변화만으로 단절 없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음악이 끊기면 대사가 나오고, 대사가 멈추면 음악이 이어지는 것이 오케스트라가 합을 맞추듯 자연스럽다.

 

관객이 100여 명만 들어갈 수 있는 소극장 무대도 매력적이다. 호텔방 인테리어를 그대로 옮겨 놓은 이 공간에서, 관객은 자신이 방 안에 숨어든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몰입한다. 채 50cm도 되지 않는 배우와 관객의 물리적 거리는 공연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고, 연극을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물론 이 모든 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뒷받침되기에 빛을 발한다.

 

폭주하는 주인공 윤나무에 비해, 여주인공 김지현의 연기는 아쉽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며 극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해야 할 후반부에서 오히려 맥이 빠지는 이유다. 악당을 맡은 이석준은 역시나 노련하지만, 힘을 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연극 《사이레니아》도 스토리 전개가 비슷하다. 관객들은 10평 남짓한 공간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객석에 놓여 있는 우비를 주워 입고 나면 조명이 꺼지고, 멀리서 폭풍우 소리가 들린다. 연극을 관람하러 간 관객은 꼼짝없이 1987년 영국의 ‘블랙 록’ 등대에 갇힌 신세가 된다. 좁은 등대 안이 배경인 이 독특한 작품은 그야말로 ‘체험형 연극’이다. 오죽하면 폐소공포증이 있는 관객은 조용히 손을 들어달라는 안내방송까지 나올 정도다.

 

1987년 10월, 영국 블랙 록 등대의 등대지기 아이작 다이어에게 위기가 닥친다. 폭풍우가 심하게 몰아쳐 밖으로 나갈 수도, 어딘가로 이동할 수도 없게 된 것. 이대로 있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아이작을 덮치고, 때마침 어딘가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노랫소리를 따라간 곳에는 의식을 잃은 여인이 쓰러진 채 방치돼 있다. 아이작의 구조로 몸을 피한 여인은 간신히 의식을 되찾는다. 아이작은 오래전 헤어졌던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그녀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지만, 그녀로 인해 헤어진 연인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된다. 폭풍우는 점점 거세지고, 등대 안으로 바닷물이 밀려들면서 두 사람은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이후 둘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다.

 

 

《사이레니아》 이형훈(아이작 역), 김보정(모보렌 역)


 

 

등대 안 무대에서 배우와 관객이 같이해

 

공연이 시작하고 10여 분 동안, 아이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등대 안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구조를 요청하고, 라디오를 켰다가 끄고, 성냥으로 불을 붙이려다가 실패하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이 지속되는 동안 관객은 자연스레 아이작에 동화된다. 관객으로 하여금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의식’이 10분간 지속되는 셈이다. 배우는 단 두 명뿐이지만, 무대는 비어 보이지 않는다. 배우들이 등대 바깥으로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할 때마다, 등대 안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관객은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여주인공 김보정의 연기력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남자 주인공을 맡은 이형훈의 연기는 차분함과 광분 사이를 줄타기하며 관객을 몰아붙이지만, 상대적으로 여주인공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사이레니아》는 매회 인기를 얻고 있다. 소극장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예매를 꾸준히 기록 중이다. 보기만 하는 연극에서 벗어나, 스토리를 재조합하고 배우와 함께 무대에서 호흡하는 이색 관극이 향후 대학로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공연은 관객 단 6명만 받습니다”

 

공연과 전시의 경계, 그 어딘가에 《엘레지》가 있다. 《엘레지》는 몰입극과 현대미술을 넘나드는 작업으로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는 룬달&세이틀(Lundahl & Seitl)의 첫 내한공연이다. 회당 단 6명의 관객만 관극할 수 있는 오감 체험극이다. 

공연은 인간이 아주 약한 자극만으로도 가상의 시공간에 빠져들 수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에서 시작됐다. 관객은 영상과 음향을 통해 감각을 극대화하고, 상상을 통해 개별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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