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의 생생토크] 허재, “삼부자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보내는 것 처음”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02 13:20
  • 호수 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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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대통령’ 허재 국가대표팀 감독 인터뷰… 두 아들 허웅·허훈도 대표팀에서 활약 중

허재(51)란 이름 앞에는 매번 ‘농구대통령’이란 수식어가 뒤따른다. 선수 때는 물론 지도자 시절에도 ‘농구대통령’은 그 이름에 자석처럼 붙어 다녔다. 용산중·용산고를 거쳐 중앙대를 졸업한 허재 감독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국 농구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였다. 프로에서는 울산 모비스, 부산 기아, 원주 TG 삼보에서 뛰었고,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었다. 2005년 전주 KCC 감독 부임 이후 2008~09 시즌과 2010~11 시즌 두 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2009년과 2011년에는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이끌었다.

 

승승장구했던 허재 감독도 팀 성적 부진 앞에선 무릎을 꿇었다. 2015년 2월9일 허 감독은 자진 사퇴 형식으로 팀을 떠났다. 사퇴하는 과정도 평소 허재 감독다웠다. 구단의 어떤 만류와 설득에도 마음을 돌리지 않고 시즌 9경기를 남겨 두고 ‘쿨’하게 물러났다. 그렇게 1년5개월을 ‘백수’로 지낸 그가 최근 대표팀 감독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난 7월20일, 진천선수촌에서 선수들과 동고동락 중인 허재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는 선수촌 인근의 한 고깃집에서 진행됐다.

 


(선수촌이 있는)진천에서 허 감독을 보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코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대표팀 사령탑은 전혀 계획에 없었던 카드였다.

 

 

그런데 대한농구협회에서 공모한 대표팀 전임감독직에 직접 지원했다. 이유가 있었나.

 

너무 오랫동안 현장을 벗어나 있으면 농구 감각이 무뎌질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솔직히 프로팀에서 불러주지도 않았다(웃음). 무엇보다 우승팀 감독이 대표팀을 맡던 데서 벗어나 협회가 국제대회 성적과 세대교체를 위해 전임감독제를 도입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2008년 김남기 감독 이후 8년 만에 이 제도가 부활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협회에서 믿고 맡긴다면 한번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임감독제에 허재 감독이 지원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몇몇 지도자들이 지원을 포기했다는 얘기가 들렸다.

 

금시초문이다. 설마 내가 뭐라고. 이번에 같이 지원했던 이상범 전 KGC 인삼공사 감독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오랜만에 선수촌 생활을 하고 있는데 소감이 어떤가.

 

힘들다(웃음). 선수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 선수들도 나한테 적응하느라 애를 쓸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선수들을 보면 볼수록 ‘요즘 애들’이란 생각이 든다. 선수들의 상황과 심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생긴다.

 

 

어떤 부분 말인가.

 

기본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대표팀에서 기본기를 가르칠 순 없지 않나. 그런데 지금 그 기본기 때문에 나 자신과 씨름을 하는 중이다. 선수들이 화려한 플레이를 좋아하다 보니 불필요한 드리블을 하거나 불필요한 모션을 취한다. 기본기가 떨어지는 선수들이 스킬트레이닝에 심취해 있는 걸 보면 화가 날 정도이다.

 

 

스킬트레이닝이라. 주로 드리블과 관련된 훈련으로 요즘 각 프로팀마다 외국인 코치를 초빙해 스킬트레이닝을 따로 받고 있을 정도라고 들었다.

 

물론 스킬트레이닝이 좋지 않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프로 선수라면 당연히 기술을 더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다. 기본기가 완성된 이후 스킬트레이닝을 받으면 그 효과가 크게 상승한다. 기본기 없이 스킬트레이닝을 받을 경우 전혀 써먹지 못한다. 기술은 화려해졌는데 기본기를 갖추지 못한 선수가 의외로 많다. 그 점이 놀라웠다.

 

 

2009년과 2011년 대표팀을 이끌 때와 지금의 차이점이라면 무엇인가. 

 

그때는 김주성·양동근·오세근 등 힘 있고, 신장 좋고, 탄탄한 선수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고참이나 주축 선수들이 빠진 상태에서 젊은 선수들로만 대표팀을 구성했다. 이전보다 패기도 넘치고 활발한 분위기가 어우러져야 하는데 지금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못 미친다.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점진적인 세대교체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존스컵대회에는 양동근 등 그동안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을 뽑지 않았다. 세대교체의 신호로 해석해도 되겠나.

 

그건 좀 다른 문제다. 양동근은 오는 9월 이란에서 열리는 FIBA아시아챌린지대회를 앞두고 합류할 예정이다. 지금 재활치료 중이고, 몸을 만드는 과정인데 굳이 대만 존스컵부터 뛰게 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나중에 합류해도 충분히 제몫을 해낼 베테랑이다. 조성민은 이번 대표팀에 뽑았지만 발목이 좋지 않다고 해서 팀으로 돌려보냈다. 그 선수 또한 몸 상태가 좋아지면 이후 다시 발탁할 수도 있다. 이번 대만 존스컵은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했고, 그들이 국제무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어떤 기량을 발휘하는지 체크할 것이다.

 

 

지금 대표팀에는 허 감독의 두 아들인 허웅(23·동부)과 허훈(21·연세대)이 뛰고 있다. 한국농구 역사상 최초로 삼부자가 대표팀에서 동거하는 셈이다. 두 아들과 함께 지내는 소감이 어떤가.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대하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선수들을 혼낼 때 웅이가 대표로 가장 많이 잔소리를 듣고 있다. 주위에서 그 또한 차별이라고 해서 최근엔 자제하는 편이다. 원래 훈이는 1차 대표팀 선발 명단에 없었다. 인삼공사의 박찬희가 부상으로 나가면서 그 대안으로 훈이를 뽑은 것이다. 솔직히 부담이 컸다. 협회의 경기력 향상위원회와 상의 후 선수들을 선발했지만 그래도 두 아들이 한꺼번에 대표팀에 승선한 부분은 말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포워드인 웅이보다 포인트가드인 훈이가 대표팀에 더 필요한 선수였다. 그런 점에서 추가로 박찬희 대신 훈이를 뽑은 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믿는다.

 

허재 대표팀 감독의 아들 허웅(왼쪽)과 허훈도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두 아들의 훈련 모습과 일상생활 등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건 처음일 것이다.

 

그렇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내가 농구하느라 바빴고, 아이들이 성장해서 농구선수로 뛰고 있을 때는 팀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이렇게 삼부자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처음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몰랐던 단점들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특히 첫째 아들 웅이가 문제가 많더라.

 

 

어떤 문제가 눈에 띄었나.

 

몸 관리 면에서 웅이가 훈이보단 부족한 부분이 많다. 다른 선수들은 비타민·영양제 등을 따로 챙겨 먹는다. 식사할 때도 훈이는 고기와 야채 등을 골고루 먹는 반면에 웅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만 파고든다. 보다 못해 하루는 웅이를 따로 불러서 혼을 냈다. 가뜩이나 체력이 약하다고 지적받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음식을 소화하면 몸에 도움이 안 된다고 얘기했다. 군대 갔다 오는 시간을 고려하면 웅이가 농구 코트에 설 수 있는 시간이 7~8년밖에 안 된다. 지금 바짝 농구가 더 늘어야 하는데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기량을 갖고 있어도 발휘할 수 없다. 선수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만 먹으면 되겠나. 힘을 키우기 위해 먹기 싫은 음식도 먹어야 하는 거다.

 

 

이전부터 농구판에선 ‘한국에 있는 뱀의 절반은 허재 감독이 먹었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됐었다. 현역 때 보양식으로 뱀탕을 많이 먹은 것처럼 두 아들도 보양식에 신경 쓰기를 바라는 얘기 같다.

 

아들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한테도 하고 싶은 말이다. 선수촌 식당에 가 보면 준비된 음식들 중 맨 앞에 김치가 놓여 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김치를 지나친다. 즉 김치를 그릇에 담지 않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만 챙겨서 먹는다. 선수라면 김치도 먹고 고기도 먹고 나물도 먹고 채소도 함께 챙겨 먹어야 한다. 뱀탕이든 뭐든 몸에 좋은 거라면 비위가 약해도 먹는 게 좋다. ‘요즘 애들’은 그런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허훈은 어떤가. 형 웅이에 비해서.

 

훈이는 웅이랑 다르다. 패기도 있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굉장하다. 아무리 어려운 상대 선수라 해도 저돌적으로 달려든다. 플레이를 보면 두려움이 없는 것 같다. 영리한 면이 돋보이는 선수다.

 

 

너무 두 아들을 차별하는 거 아닌가.

 

아버지가 아닌 감독으로 보는 시선이다. 대표팀에서 가장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는 선수가 이승현이다. 승현이는 항상 앞장서서 ‘파이팅’을 외친다. 체력 관리도 제일 열심이다. 훈련하면서 ‘힘들다’ ‘아프다’는 얘길 안 한다. 묵묵히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안다. 승현이는 앞으로 한국농구를 이끌어갈 대들보가 될 수 있다. 대표팀 선수들은 일반 프로팀 선수랑 다르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데 희생과 노력, 그리고 열정이 기본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1년5개월 전, 시즌 9경기를 남겨 놓고 갑자기 전주 KCC 감독직에서 물러났었다.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구단도, 선수들도, 또 기자들도 당황했었다. 어떤 배경이 있어나?

 

당시 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선수들을 구성해서 재도약을 꿈꿨지만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없었다. 성적을 내지 못한 감독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게 싫었다. 구단과 선수들에 대한 미안함이 계속됐고, 결국엔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10년 동안 편하게 감독 생활을 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다 못해 시기할 정도였다. 그래서 농구인들 중에는 나를 KCC ‘종신감독’이라며 비꼬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에 영원한 게 어디 있겠나. 감독이 성적 못 내면 잘리거나 사퇴하는 게 맞다. 지금도 그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현장을 떠난 이후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반성도 하고, 언젠가 다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재기할 수 있도록 공부하면서 지냈다.

 

허재 국가대표팀 감독이 7월20일 진천 선수촌 근처 식당에서 선수들의 기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주 KCC 감독을 맡으면서 여러 차례 선수들을 트레이드했었다. 그중 이상민과 서장훈을 트레이드했을 때 정말 난리가 났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당시 일을 회상할 수 있지만 실제 분위기가 꽤 험악하지 않았나.

 

2007년 전력 보강을 위해 대형 FA 선수들을 영입했다. 삼성의 서장훈과 SK 임재현이 그 대상이었다. 그런데 3명의 보호선수를 지명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컸다. 삼성에서는 임재현을 원했지만, 방금 데려온 선수를 다시 내놓는다는 건 인간적으로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서장훈이 이상민과 한 팀에서 뛰고 싶어 KCC를 택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고민 끝에 이상민을 보호선수 제외 명단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야 얘기하지만, 삼성이 이상민을 안 뽑을 줄 알았다. 현금 보상 등 다른 카드가 제시될 줄 알았는데 안준호 감독이 바로 데려가더라. 그때 팬들한테 욕먹은 걸 생각하면…. 그리고 2008~09 시즌 도중 또 한 차례 트레이드 후폭풍을 겪었다. 서장훈과 김태환을 인천 전자랜드에 넘기고, 강병현·조우현·정선규를 영입한 것이다. 2008 신인 드래프트에서 하승진을 지명했는데, 서장훈과 포지션이 겹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두 선수 모두 40분을 다 뛰고 싶어 할 정도로 출전 욕심이 많았다. 두 선수를 다 뛰게 하면 게임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장훈이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그해 우승하게 되면서 수많은 잡음들이 일시에 가라앉았다. 만약 그때 우승 못했더라면 감독 생활 오래 못했을 것이다.

 

 

허재 감독이 보는 선수 허재는 어떤 선수였나.

 

미워하고 싶지만 미워할 수 없는 선수? 혼내고 싶어도 혼낼 수 없는 놈? 술을 좋아해서 야단을 치고 싶지만, 코트에서 근성과 승부를 낼 줄 아는 녀석이 아닐까 싶다. 감독 말을 지독히 안 듣는 나쁜 놈이기도 하다(웃음).

 

 

만약 그런 선수가 감독 허재 밑으로 들어왔다면.

 

감독 말을 안 들어도 자기 관리만 제대로 한다면 터치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선수 유형이 훈련 나왔는데 전날 술 마신 내색하는 거다. 그건 프로선수로서 자격이 없는 행동이다. 농구 잘하는 선수가 ‘스타병’ 들어 건방지다면 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농구 못하면서 ‘스타병’ 든 선수는 절대 못 봐준다. 실력이 부족해도 악으로, 깡으로 달려드는 선수는 끝까지 데리고 가지만, 실력이 있으면서 근성 없는 선수는 아웃이다.

 

2003년 4월11일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열린 원주 TG-대구 동양 경기에서 허재 당시 TG 선수가 슛을 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허 감독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선수 시절,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이 어느 정도였다고 생각해?”


“나? 반반이지. 사람들은 내가 술 먹고 놀러 다니기 좋아해서 노력 같은 건 안 했을 거라고 말하는데 사실 노력 엄청 많이 했거든. 정봉섭(전 중앙대 감독) 선생이 노력 안 하는 선수한테는 가차 없이 매를 들었어. 맞기 싫어서라도 열심히 훈련했지.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건 인정! 대신 혹독한 개인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줘야 해.”


그래서 질문 하나 더 추가했다. 


“‘제2의 허재’가 나올 수 있을까?”


“나 같은 선수가 나오면 안 되지. 나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나와야지. 한국농구가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 그래야 NBA에 진출하는 한국 선수도 나올 것이고.”


고기를 곁들이며 마신 소주병이 자꾸 쌓이고 있었다.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허 감독과 함께 진천 시내의 치킨집으로 자리를 옮겨 ‘입가심’용 맥주를 들이켰다. 허 감독을 알아본 사람들이 사인을 요청해 왔다. 어느 정도 사인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허 감독 하는 말. “나, 오늘 11시까지 선수촌 들어가야 해. 시간 넘기면 벌금이야(웃음).”

 

현재 대표팀을 이끌고 대만에서 열리는 윌리엄존스컵에 출전하고 있는 허재 감독. 7월28일 현재 대표팀은 3승2패를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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