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의 드라마는 엣지가 살아 있다
  •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04 10:11
  • 호수 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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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석 감독이 말하는 ‘新드라마 왕국’ tvN의 연전연승 비결

tvN 드라마의 성장세가 무섭다. 《미생》부터 《시그널》 《또 오해영》 그리고 《디어 마이 프렌즈》까지 연전연승이다. 사실 tvN 드라마 시대의 전조(前兆)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성공을 거두고, 2014년 말 《미생》이 지상파 드라마를 넘는 화제성을 이끌면서 서서히 시작되었다. 지난해 방영된 《오 나의 귀신님》은 7.3%의 높은 시청률을 나타냈고, 소현경 작가가 쓴 《두 번째 스무살》 역시 7.2%의 높은 시청률로 종영했다. 그리고 올 초부터 tvN은 작정한 듯 좋은 작품들을 대거 쏟아냈다. 새롭게 월·화 밤 11시대를 드라마 편성시간으로 세운 tvN은 《치즈 인 더 트랩》(7.1%)으로 그 가능성을 확인했고, 이어 방영된 《또 오해영》은 무려 9.9%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엄청난 화제 속에 종영했다.

 

© tvN


신원호 PD가 만든 tvN 드라마의 발판

 

심지어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의 완성도로 tvN 드라마의 색깔을 확실히 세운 금·토 시간대는 한마디로 대박의 연속이었다. 《시그널》이 본격 장르물로서는 이례적으로 12.5%의 시청률과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어 방영된 《기억》은 3.8%의 다소 아쉬운 시청률을 냈지만, 그래도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무려 8명의 어르신들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작품으로 8.0%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어 현재 방영되고 있는 《굿와이프》는 3.9%의 시청률에 역시 ‘웰메이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tvN 드라마가 주목되는 건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지상파 드라마와 비교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는 점이다. 소현경·김은희·노희경 같은 베테랑 작가들이 참여하고, 김원석 감독이나 신원호 PD 같은 출중한 연출자와 드라마 출연이 많지 않던 조진웅·김혜수·고현정·전도연 같은 출연자들의 연기력이 합쳐지니 드라마가 좋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영화 촬영 스태프의 투입은 드라마의 질을 대폭 높여 놓았다. 

 

최근 tvN 드라마의 연전연승 비결을 묻는 필자에게 《시그널》의 김원석 감독은 대뜸 “신원호 PD 덕분”이란다. 내막을 들어보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원호 PD는 tvN으로 오면서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시도할 수 있는 한 번의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응답하라 1997》이었다는 것. 사실 예능PD가 예능을 만드는 방식으로 드라마를 찍는다는 건 누가 봐도 무모한 일이었다. 만일 ‘단 한 번의 기회’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던 시도였다는 것.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의외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후속작인 《응답하라 1994》와 《응답하라 1988》은 갈수록 더 좋은 결과를 얻어냈다. 

 

tvN 드라마는 이로써 어떤 가능성을 보게 된 셈이었다. 물론 사전에 철두철미한 기획을 하지만, 일단 작업에 들어가면 감독과 작가에게 애초의 의도를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을 실어준다는 것. 이런 방식으로 이후 김원석 감독은 《미생》은 물론이고 《시그널》 같은 새로운 시도들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다고 했다. 

 

김원석 감독은 “결국 드라마는 좋은 인력들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했다. 연출의 몫이라는 건 좋은 배우와 촬영팀과 작가를 모으는 일이 전부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건 ‘협업’의 힘이었다. 드라마는 이제 더 이상 한두 사람의 천재가 이끌어가기에는, 지금 대중들의 취향이 너무나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시그널》을 연출한 김원석 감독


단점을 보완하기보다는 장점을 강화해

 

“최근 성공하는 작가들을 보면 대부분 소통에 있어서 대단히 출중하신 분들입니다. 《시그널》을 함께 작업했던 김은희 작가가 대표적이죠. 타인의 이야기를 꼼꼼히 잘 들어서 그걸 반영해 내는 작가입니다. 《태양의 후예》의 김은숙 작가의 경우에는 여러 보조작가들과 작업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막내 작가에게도 어떤 걸 결정할 때는 동등하게 한 표를 준다고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라도 여러 명의 의견이 다를 때는 포기한다는 거죠.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도 마찬가집니다.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과의 협업과 소통에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는 작가들이죠.”

 

확실히 한 사람의 작가가 쓰고, 연출자가 그걸 받아 연출하는 분업형 방식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김원석 감독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PD 마인드를 가진 작가, 작가 마인드를 가진 PD가 점점 더 필요해지는 시기입니다.”

 

어떤 작품이든, 어떤 작가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시그널》이라는 완성도 높은 작품도 또 그걸 쓴 김은희 작가도 단점은 있었다고 김원석 감독은 말했다. “《시그널》의 아킬레스건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무전기 설정이었어요. 그게 판타지라도 그럴듯한 개연성을 제시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고민했는데, 결국은 개연성 없이 그냥 뻔뻔하게 밀어붙이자고 했어요.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는 무전기의 판타지가 아니라 정의(正義)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요. 그래서 하려는 이야기에 더 집중했더니 나중에 무전기 판타지 부분은 시청자분들이 알아서 개연성을 채워 주시더라고요.” 즉, 단점을 보완하기보다는 장점을 극대화한 데서 오히려 문제의 해결책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은희 작가의 경우에 김원석 감독이 주문한 단 한 가지는 인물들을 ‘따뜻하게 그리자’는 것이었다. 스릴러 장르물을 오래 하다 보니 어느새 인물을 보는 시각이 차가워져 있는 김은희 작가에게 던진 이 한마디는 《시그널》을 따뜻한 스릴러 장르물이 될 수 있게 해 주었다. “본래부터 따뜻한 작가라는 건 알고 있었거든요. 그러니 그걸 바로 받아들여 그렇게 쓰시더라고요.”

 

김원석 감독은 드라마의 각을 살리는 것이 그 무엇보다 tvN 드라마의 특징이며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단점을 보완하면 둥글둥글한 드라마가 나와요. 하지만 단점을 놔두고 장점을 강화하면 엣지가 살아 있는 드라마가 나오죠. 그게 tvN 드라마의 성공을 가져왔다고 봅니다.” 지상파 드라마들이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각을 죽이고 있었던 반면, tvN 드라마는 그걸 세움으로써 개성적이며 애초의 의도가 살아 있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가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tvN 드라마의 연전연승의 숨은 비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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