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니 토드》와 《위키드》로 무더위 잡는다
  • 박소영 공연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11 13:33
  • 호수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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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꼭 봐야 할 단 두 편의 뮤지컬

올여름 봐야 할 뮤지컬을 두 편만 추천하라면 《스위니 토드》와 《위키드》를 권하고 싶다. 뮤지컬계 간판스타 조승우-옥주현이 만난 《스위니 토드》와 여여(女女) 케미를 자랑하는 《위키드》가 핫하게 붙었기 때문이다. 

 

《스위니 토드》는 브로드웨이 스타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작품이다. 손드하임은 공연계의 아카데미상인 토니상을 8차례나 거머쥔, 미국 뮤지컬계 거장이다. 선율 못지않게 드라마를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캐릭터에 맞게 음악을 만들고, 작사와 작곡을 동시에 하는 것 역시 손드하임만의 특색이다. 그의 작품은 대개 높은 완성도로 이름을 떨쳤지만, 동시에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받는다. 《스위니 토드》는 그 점에서 손드하임의 기존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 그만큼 쉽고 간명하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러빗 부인 역을 맡은 옥주현과 스위니 토드 역을 맡은 조승우


블랙코미디의 진수 《스위니 토드》

 

19세기 런던, 이발사 벤자민 바커에게는 사랑하는 아내 루시와 딸 조안나가 있다. 행복한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벤자민에게 위기가 닥친다. 루시를 탐한 판사 터핀이 누명을 씌워 벤자민을 추방한 것. 감옥살이를 하던 벤자민은 15년 뒤 이름을 스위니 토드로 바꾸고 마침내 런던으로 돌아온다. 토드는 파이 가게 주인 러빗 부인에 의해 조안나가 터핀의 수양딸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복수심에 불타는 토드는 다시 이발관을 열고, 터핀을 이발관으로 끌어들여 죽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토드의 복수심은 터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이발소에 발을 들인 사람은, 그게 누구라도, 살아 나가지 못한다. 

 

《스위니 토드》는 이제는 뮤지컬계 간판스타가 된 조승우와 가창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옥주현의 만남으로 일찍이 화제를 모았다. 이 둘이 주거니 받거니 대거리를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이 작품의 백미(白眉)다. 토드가 이발소에서 사람을 죽여 시체를 아래층으로 내려보내면 러빗 부인이 갈고 부숴 파이에 넣을 ‘고기’로 만드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은 모두 위트로 버무려져 있다. 러빗 부인이 “의사(를 죽여 만든) 고기를 먹어보라”고 외치면 토드는 “병 걸릴 것 같다”며 받아친다. 

 

물론 블랙코미디가 다는 아니다. 《스위니 토드》는 조승우 스스로도 연기하기 힘든 작품이라고 말할 만큼 ‘비장미’가 있는 작품이다. 19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한 단계 진화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분명 혼란스러운 사회였다. 자신의 가족조차 지키지 못하는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슬픔과 분노가 《스위니 토드》에 녹아 있는 이유다. 감정선의 극과 극을 오가려니, 주연배우가 힘든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스위니 토드》의 넘버는 결코 대중적인 멜로디로 이뤄져 있지 않다. 대사를 하는 건지 노래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모호하고 기괴한 넘버도 있다. 하지만 오프닝 넘버이자, 극 전체를 관통하는 넘버인 ‘더 발라드 오브 스위니토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마도 《스위니 토드》를 관람하고 공연장을 나서는 길엔 ‘그 스위니 토드, 이발사 탈을 쓴 악마’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스위니 토드》는 오는 10월3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한다. 토드 역에는 조승우 외에도 양준모가, 러빗 부인 역에는 옥주현 외에도 전미도가 더블 캐스팅됐다.  

 

뮤지컬계에서 가장 가창력이 뛰어난 여배우를 두 명 꼽으라면 아마도 차지연과 정선아일 것이다. 뮤지컬 《위키드》는 그 둘이 나란히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 여배우 투톱이 극을 이끌어가는 몇 안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위키드》는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비튼 작품이다. 초록마녀 ‘엘파바’와 금발마녀 ‘글린다’ 사이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사악한 초록마녀로 알려진 엘파바는 기실 똑똑하고 정의로운 마녀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사악하다는 오해를 받은 것이고, 착한 금발마녀 글린다는 알고 보면 허영심이 가득한 공주병 환자라는 식이다. 가벼워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줄거리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하는 철학적인 물음마저 던지게 한다.  

 

원작의 선악 구도를 180도 뒤집은 《위키드》는 단편적 지식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된다는 가르침을 준다. 사람들의 탐욕으로 동물들이 언어를 잃어버리는 대목에서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한 경계도 읽을 수 있다. 원작 동화엔 나오지 않는 깡통 인간, 겁쟁이 사자 탄생 비화는 덤이다. 

 

《위키드》의 5할은 넘버다. 노래를 웬만큼 해서는 소화할 수 없는 난도 높은 곡들이 이어지는데, 그중 대표 넘버는 단연 ‘디파잉 그래비티’다. ‘중력’으로 대변되는 구세력에 대항해 자유롭게 날겠다는 엘파바의 결심이 느껴지는 곡이다. 가창력으로 톱을 달리는 차지연의 ‘디파잉 그래비티’는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힘과 치유력, 가슴 찡한 감동이 있다. 

 

글린다의 대표 넘버인 ‘파퓰러’도 빼놓을 수 없다. 글린다가 엘파바의 외모를 치장해 주며 부르는 노래인데, 글린다의 통통 튀는 매력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정선아의 ‘파퓰러’를 들은 일부 뮤지컬 마니아들은 그녀가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며 극찬하기도 했다. 

 

뮤지컬 《위키드》의 초록마녀 엘파바 역을 맡은 차지연(왼쪽)과 금발마녀 글린다 역을 맡은 정선아


극강의 여여(女女) 케미 《위키드》 

 

《위키드》의 나머지 5할은 무대와 의상이다. 《위키드》의 무대는 무려 54번 바뀌는데, 이는 약 15초마다 한 번씩 장면이 전환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동원되는 의상만도 350여 벌에 달한다. 가격으로 치면 40억 원가량인데, 가장 눈길을 끄는 옷은 글린다의 버블 드레스다. 아홉 가지 원단을 섞어 만든 이 드레스는 그 화려함만큼이나 무게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플라스틱 틀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정선아가 20kg에 육박하는 이 드레스를 입고 요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위키드》의 보는 재미에는 분장도 한몫한다. 피부가 초록색인 엘파바로 분하기 위해서 주인공 배우는 무려 45분간 분장대 앞을 지켜야 한다.

 

지난 3월 수익 10억 달러를 돌파한 《위키드》는 8월28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엘파바 역에는 차지연 외에도 박혜나가, 글린다 역에는 정선아 외에도 아이비가 캐스팅돼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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