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우리의 인식은 낭만주의에 잠식되었다”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08 16:58
  • 호수 14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 시리즈의 알랭 드 보통이 21년 만에 내놓은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이 소설로 돌아왔다. 《키스 앤 텔》 이후 21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원제 The Course of Love)에서 그는 일상의 범주에 들어온 사랑에 대해 통찰한다.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이 그려졌던 전작들과 달리 영원을 약속한 그 후의 이야기다. 

 

“언제 다시 소설을 쓸 거냐고 물으면, 난 항상 ‘사랑에 대해 쓸 것이 충분히 생기면’이라고 대답했다”고 말하는 알랭 드 보통. 21년 만이라니 충분히 성숙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실제 그는 이번에 평범한 커플의 삶을 통해 수십 년에 걸쳐 사랑이 어떻게 지속되고 성공할 수 있을지 살핀 기록물 같은 소설을 내놓는다. 그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사랑의 시작”이라고 말하며, 낭만의 한계와 결혼 제도의 모순을 넘어 성숙한 사랑으로 도약하기 위한 솔직하고 대담한 논의를 펼친다. 

 

알랭 드 보통 지음 은행나무 펴냄 300쪽 1만3500원


‘이 시대의 스탕달’ ‘닥터 러브’라는 별명 얻어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산할 만큼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당해 왔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 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오랜만에 내놓은 소설이지만 그의 글쓰기 스타일은 그의 별명 ‘일상의 철학자’답다.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알랭 드 보통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철학 석사를 받았으며, 하버드대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스물셋에 발표한 첫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시작으로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 앤 텔》에 이르는 일명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 시리즈가 전 세계 2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며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했다. 의도적으로 지극히 평범한 인물과 플롯을 구축, 사랑이라는 인간 보편의 감정을 내밀하게 담아낸 이 독특하고 대담한 소설들로 ‘이 시대의 스탕달’ ‘닥터 러브’라는 별명을 얻은 바 있다.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은 소설과 에세이, 혹은 소설과 전기 형식을 절묘하게 결합한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각인시켰다. 의도적으로 평범하게 구축한 인물과 플롯, 세밀한 심리 묘사, 철학적 제언으로 사랑이라는 인간 보편의 감정을 다룬 알랭 드 보통의 방식은 독자들로부터 큰 공감과 호응을 얻었다. 그 자신 역시 “소설은 인물의 인식과 심리 안팎을 자유로이 오가며 다각도로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랑을 말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식이며, 사랑에 대해 충분히 쓸 것이 생기면 소설을 쓸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오랜만에 ‘사랑’이라는 주제로 돌아와 선보이는 이번 소설에서도 그는 특유의 감각을 펼쳐 보인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의 저자 알랭 드 보통 © 은행나무 제공

진짜 러브스토리는 삶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

 

많은 시행착오 끝에 평생을 함께할 확신이 드는 사람을 만났는데도 어째서 사랑에는 위기가 빈번하고, 더 크게 파멸을 맞기도 하는가? 알랭 드 보통은 그 이유를 사랑에 관한 우리의 인식이 낭만주의에 잠식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사랑의 점진적 소멸이나 퇴색으로 치부되고 말 순간들이 오히려 사랑을 발전시키고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외도 후 치졸한 자기합리화로 치닫는 인물의 의식 흐름을 그대로 좇으며 낭만주의적 결혼관의 맹점을 드러낸다. “우리는 강력히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안정과 모험이라는 두 가지 근본적인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며, 우리의 낭만적인 삶은 슬프고 불완전하게 끝날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제도로서의 결혼이라는 관념을 새롭게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욕망은 너무 변덕스럽고 깨달음은 너무도 늦게 찾아오는 삶에서, 결혼이야말로 일관성을 지켜줄 길잡이라고 말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 모두는 완전히 이해받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딘가 약간은 잘못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서로 어떻게든 미치지 않고 용기 있게 사랑과 결혼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러브스토리라고 말이다. 

 

“대부분의 러브스토리를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자신의 실제 관계는 거의 다 하자가 있고 불만족스럽다. 이혼이 불가피해 보이는 것도 놀랍지 않다. 불화를 일으키기보다는 우리 자신에게 보다 정확한 이야기들을 들려줄 필요가 있다. 시작에만 너무 얽매여 있지 않은 이야기, 완벽한 이해를 약속하지 않는 이야기, 우리의 문제를 정상적인 것으로 되돌려놓고 사랑의 여정에서 거쳐 갈 길이 우울하더라도 희망적임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