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나면 생존하는 법...“집에 상비약을 두듯 생존배낭을 둬야 한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9.23 17:35
  • 호수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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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생존전문가 우승엽 도시재난생존연구원 원장

거듭된 지진으로 국민적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생존법’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쇼핑몰에는 ‘생존팩’, ‘생존배낭’, ‘생존 키트’ 등이 인기 상품으로 올라오고 인터넷 사이트에는 집에서 생존배낭을 꾸리는 법, 절전, 절수 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한 정보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선택에 있어서 혼선을 빚게 한다. 어떤 정보를 통해 나만의 생존법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온다. 

 

도시에서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실천적 대응매뉴얼을 알려줄 수 있는 국내 전문가는 많지 않다. 미국, 일본 등 자연재해가 빈번히 발생하는 국가에서는 생존법을 알려주는 전문가들이 많지만 이들의 노하우는 한국의 상황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방방재청, 도시안전 관련 연구소 및 유관기관들이 존재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도시 방재에 대해 이론적․학문적으로 접근한다. 실제 재난이 발생할 때 ‘살아남기 위한’ 생존법을 알려주는 곳은 없다.

 

그런 점에서 우승엽 도시재난생존연구원 원장은 독보적인 존재다. 자칭 타칭 도시생존전문가로 불리는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도시 재난 발생시 ‘생존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정보를 모아왔다. 2010년부터는 한 포털사이트에 ‘생존21’이란 카페를 만들어 카페 회원들과 한국 실정에 맞는 생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9월21일 그와 만나 도시재난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도시재난생존연구원 우승엽 원장이 도시재난 생존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고성준 기자

경주 지진 발생 이후에 ‘재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재난이란 것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것이다. 재난이 발생하지 않을 곳이란 없다. 어디에서나 언제서나 예상치 못하게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재난은 홍수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 뿐만 아니라 전쟁, 대형 참사, 금융위기 같은 것도 포함한다.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분단의 세월을 거치면서 ‘전쟁’이라는 재난 상황에 대해서 둔감해진 것 같다. 때문에 재난은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경주 지진을 겪으며 재난이 생각보다 더 우리 삶에 가까이 있음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경주에서 여진이 이어지면서 지진에 대한 각종 괴담이 돌고 있다.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 사람도 많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일생동안 이렇게 큰 규모의 지진은 거의 처음 겪어봤을 거다. 그러다보니 공황이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뭐든 모를수록 공포감이 커진다. 고위관료, 전문가들은 재난 얘기를 들고 나오면 쉬쉬하고 넘어가려 해왔다. 제가 만난 방재 전문가, 관료들은 대부분 “국민들에게 미리 재난시 대처법을 알려줘 봤자 불안감만 조성할 뿐이니 필요시에만 알려주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예전 한 지자체는 시민 대상 생존 매뉴얼을 만들어놓고도 ‘기관내 배포’만 하고 그쳤다. 국민들의 상황대처능력과 분별력을 믿지 못하고 대중들은 위급할 때 패닉에 빠질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관료주의적인 태도에 매우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이런 태도가 결과적으로 더욱 큰 공포감을 조장하게 됐다고 본다. 재난 발생 가능성에 대해 많이 알고, 이에 대한 대응법을 일상적으로 익히는 것이 오히려 사회적 공포감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실제 재난 상황에서도 유용하다. 

 

재난 생존법을 왜 알아야 하나.


일반적으로 재난 생존법은 위기 발생 후 72시간 동안 ‘버틸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말한다. 구조대가 오기까지의 골든타임을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인거다. 생존법은 재난 발생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생존법을 안다는 것 그 자체가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생존배낭’의 경우 마치 집에 상비약을 두듯 구비해 둘 필요가 있다. 생존배낭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재난 대처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왜 ‘생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나.

 

1990년대 군 제대 후 20대 때 개인적․사회적으로 많은 재난을 경험한 게 영향을 끼쳤다. 당시 IMF,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페리호 침몰 등 국가적 재난 상황들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군대에 있던 1996년 북한 무장공비가 강릉으로 침투한 사건이 있었다. 특수부대 소속이었기 때문에 3주 정도를 산에서 복무했다. 그 전만 해도 전쟁에 대한 내 생각은 영화에서 본 정도였기 때문에 일종의 환상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전쟁과 유사한 상황을 겪으면서 전쟁의 공포를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누구든 한 순간에 죽을 수 있다.’ 결국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군에서 제대한 뒤 1997년부터 생존배낭을 만들기 시작했다. 재난이 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관련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국내에서 재난 관련 정보를 아예 얻을 수 없었다. 있더라도 종교적 종말론과 연결된 것뿐이었다. 그래서 해외 사이트를 뒤지며 직접 국내 상황에 맞는 생존법을 연구하고 개발하기 시작했다.

 

 

개인용 생존배낭에 들어가는 용품들 © 고성준 기자

도시 생존 상황 발생 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진 대처법도 그렇지만 재난발생시 대처법은 반드시 자신의 주거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구조적으로 안전한 건물이라고 생각되면 집에 머물다 지진이 그치면 운동화를 신고 천천히 걸어 대피해야 한다. 빌라처럼 구조적으로 붕괴의 위험이 큰 장소에 있다면, 지진으로 대지가 흔들리는 중이라도 건물 밖으로 빨리 나가야 한다. 뛰어나가라. 

재난 상황에 처했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의지’다. 비상식량이나 깨끗한 식수는 지금 당장 없다하더라도 어떻게든 구할 수 있다. 여기에 간단한 정수(淨水)법, 불 피우기와 같은 생존의 기술을 알고 있다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생존 의지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나는 ‘생존의지’ 하나로 생과 사를 달리한 많은 케이스들을 봤다. 최근 터널이 붕괴되면서 그 안에 고립된 한 남자의 생존기를 그린 영화 《터널》에서도 주인공의 생존의지가 결국 그를 살아남게 한 것 아니었나.

 

영화 《터널》 얘기가 나와서 궁금한 건데, 영화 속에 주인공에게 물이 없으면 소변을 먹으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사실 소변을 먹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평소 안 먹던 것이기 때문에 역겨움으로 구토가 일어날 수 있고 탈수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아마 생수가 절반 정도 남았을 때 소변과 생수를 반반 섞어 마셨을 것 같다. 이렇게 하면 역겨움도 줄이고 물의 양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또 그 영화에서 보면 주인공이 타고 있는 차가 있는데 엔진오일 필터에 휴지를 꽂아 불을 붙일 수가 있다. 불이 있으면 소변이나 워셔액을 증류시킬 수 있다. 마실 물만 있다면 한 달 넘게라도 생존이 가능하다.

 

엔진오일 필터로 불을 만들고 거기에 증류하라… 너무 따라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어려운 얘기로 들리지만 일상적으로 생존법을 익혀왔다면 전혀 어렵지 않다. 당부드리고 싶은 말은 도시재난 생존법을 하나의 취미처럼 가볍게 여겼으면 하는 점이다. 재난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듯이 생존법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어려운 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평소에 하나씩 하나씩, 마치 여름날의 캠핑을 준비하듯 나와 내 가족들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익혀가는 데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가장 좋다.  

사실 생존이란 가장 심각한 주제지만 가장 즐거운 놀이처럼 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재난이란 가능성 앞에 패닉에 빠지지 않고 실제 상황이 닥치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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