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재단은 권력에 기댄 문화재단으로 볼 수밖에 없다”
  • 고재석 시사저널e. 기자 (jayko@sisajournal-e.com)
  • 승인 2016.09.26 14:22
  • 호수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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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 한류의 낯 뜨거운 민낯 미르재단, ‘신한류’ 명분으로 대기업 돈 끌어모아

“한류 확산시키겠다고 기업들 돈 끌어모으면서 막상 조직 내부에 한류 전문가는 없다.” 재단법인 미르가 출범할 때부터 조직 구성이나 기금 모금 방식에 대해 문화산업계 인사들은 의구심을 가졌다. 미르재단은 신한류(新韓流)를 내세워 재단을 설립하고 대기업으로부터 출연금 486억원을 거둬들였다. 시작이 석연치 않아서인지 결국 미르재단은 탈이 났다. 미르재단 의혹은 K스포츠재단과 함께 박근혜 정부의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할 조짐이다. 문화산업 관계자들은 미르재단이 관제 한류의 낯 뜨거운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말한다. 민관합동창조경제추진단도 연결고리로 지목되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는 5공화국 시절의 ‘일해재단’ 판박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권력자 의지 없이 900억 모금할 수 있겠나”

 

논란의 단초는 재단 설립을 위한 모금과 허가 과정이다. 정치권에서 의혹을 처음 제기한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평균 법인 설립허가 절차가 20일 정도 걸린다. 그런데 미르재단은 같은 날이나 다음 날 허가가 나왔다. 기획재정부가 지정기부금단체로 승인하면 후원금에 한해 소득공제가 가능하다. 이것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대기업 임직원 이름 가져다 쓰다가 다시 바꾸는 등 임의대로 설립자나 임원도 바꿨다”고 지적했다. 오 의원은 “권력자의 의지가 아니고서는 대기업으로부터 900억원을 모금할 수 있겠나.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 개입은 없었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미르와 K스포츠재단 출연금 중 620억원이 일종의 비자금 같은 돈이 돼 버렸다”고 덧붙였다. 

 

미르재단이 내세운 재단 설립 명분은 ‘신한류’다. 지난해 10월27일 미르재단 측은 “한류는 한국 기업과 제품의 해외 진출이나 이미지 제고에 기여하고 있고, 그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한국 대표 기업들이 참여해 문화와 산업의 해외 동반 진출을 활성화하고,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기조다.

 

하지만 출연 기업 중에는 문화산업과 뚜렷한 연관 관계가 없는 업체들이 대다수다. 미르재단이 모은 금액은 486억원에 이른다. 재단에 돈을 댄 기업들 면면은 화려하다. 삼성전자·삼성화재·삼성생명·삼성물산 등 삼성 계열사는 미르재단에 125억원, K스포츠재단에 79억원을 냈다. SK하이닉스도 68억원을 미르재단에 출연했다.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기아자동차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도 미르재단에 85억원을 내놨다. 정작 ‘문화기업’을 표방한 CJ E&M은 8억원을 출연했다. 한류와 그나마 관계가 있는 화장품업체 아모레퍼시픽은 2억원을 냈다.

 

이에 대해 한류사업 관계자는 “처음 생길 때부터 어떻게 돈을 저렇게 끌어오는지 현장에서 말이 많았다. 돈이 너무 많아서 현장에서는 저기로 옮겨가자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하기도 했다. 처음엔 한류 관련 재단에서 일한 사람들이 자문한 것으로 안다. 결국 설립 당시 현안과 관련된 전문가가 참여하지 않았다. 문화산업과 콘텐츠 쪽에서 경험을 쌓은 이들이 없다 보니 운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고 꼬집었다.

 

한류와 문화산업은 이 정부의 국정기조에 잘 들어맞는 ‘도구’다. 한 콘텐츠산업 전공 학자는 “문화융성이나 창조경제가 화두가 되면서 한류가 돈이 되니까 지원 사업도 많아지고, 여기에 신청하는 사람들도 사업의 본질보다는 어떻게 하면 지원받을 수 있을까만 고민하는 게 현실”이라며 “한류가 민간이 아닌 국가 중심으로 형성돼 버린 지금의 세태를 반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준영 문화연대 사무처장도 “설립허가 절차나 사업이 미비한데도 대기업이 모금에 참여했다. 권력에 기댄 문화재단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표면적으로는 한류와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내세웠지만 재단을 통해 수혜를 받는 특정인들을 위해 권력이 앞장서서 기업 돈을 걷은 것 아니냐. 한류나 문화산업을 그야말로 수단과 도구로만 보는 관점”이라고 비판했다.

 

9월23일 강남구 학동로에 위치한 재단법인 미르의 전경 © 시사저널 박정훈


 

민관합동창조경제추진단, 연결고리 주목

 

이번 사건의 연결고리에서도 이 같은 세태는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9월2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금을 주도한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를 총괄하는 민관합동창조경제추진단 공동단장이고, 미르 재단에 깊이 개입한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은 현 정부에서 1급 고위직 공무원인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을 역임한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또 “미르재단 신임 이사 강명신은 CJ가 창조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만든 문화창조융합센터장”이라고 성토했다. 실제 문화창조융합센터 홈페이지에는 유관기관 중 하나로 민관합동창조경제추진단이 나와 있다. ‘민’과 ‘관’이 함께한다고 홍보하지만 ‘관’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차은택 전 본부장은 유명 CF감독 출신이다. 일부 언론은 김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장을 미르재단 이사장에 추천한 인사도 차 전 본부장이라고 보도했다. 김 전 이사장은 자신을 추천한 측은 전경련이라며 이 보도를 부인했다. 그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돌연 이사장직에서 사퇴했다. 차 전 본부장과 김 전 이사장은 학교라는 끈으로 연결돼 있다. 차 전 본부장은 현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예술학 DFA 과정(박사과정)에 있다. 기자가 접촉한 이 대학원의 한 재학생에 따르면, 차 전 본부장은 미르재단 설립시기와 겹치는 2015년 2학기에도 대학원 전공필수 강의를 수강했다.

 

야권은 차 전 본부장과 김 전 이사장 모두 증인 명단에 포함시켰다. 오영훈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미르·K스포츠 관련 증인으로 17명을 제안했다”며 “새누리당은 한 명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오 의원은 기자에게 “문체부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하고, 그 내용에 따라 청문회까지 갈 것인지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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