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단식 투쟁, ‘허약한 리더십’ 강해질까
  • 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03 15:29
  • 호수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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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대표’ 지적받은 이정현 대표의 단식 정치는 ‘다목적 포석’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9월26일 집권당 대표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를 요구하며 국회 대표집무실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가 10월2일 단식을 풀었다. 그 사이 여당 의원들도 국정감사를 보이콧하며 ‘릴레이 1인 시위’에 돌입했다. 과거 소수 야당이 거대 여당에 맞서기 위해 사용했던 방어수단인 ‘장외 투쟁’을 집권여당이 차용한 모양새였다.

 

이 대표의 단식은 여당 의원들조차 예상치 못한 ‘초강수 카드’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다목적 포석이 깔린 ‘승부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가 거물 정치인들의 단식 투쟁을 벤치마킹해 허약한 리더십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곡기를 끊는 단식은 과거 민주화 투쟁의 두 거목(巨木)인 ‘양김(兩金)’이 정치적 고비마다 목숨을 걸고 선택했던 투쟁 방식이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정치적 목적을 관철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여론의 관심을 모아 비상상황을 타개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셈이다. 단식 투쟁의 원조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3년 23일에 걸쳐 전두환 정권에 맞서 단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민당 총재 시절이던 1990년 정치사찰 중단, 지방자치제 전면 시행 등을 요구하며 13일 동안 단식했다. 

 

이정현 대표 체제는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의 압도적인 지원으로 탄생했다. 이 대표는 그만큼 빚을 진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청와대 홍보수석과 정무수석을 지낸 그는 자신의 정치 경력을 쌓아준 박 대통령에게 큰 은혜를 입은 터다. 이렇다 보니 이 대표는 청와대와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원초적 한계’를 안고 있다. 그래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순실씨의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개입 의혹, 각종 의혹에 휩싸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 음주운전 사고를 은폐한 이철성 경찰청장 문제 등에 대해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바람처럼 보이지도 않고 어떤 역할도 못하는 무기력하고 존재감 없는 ‘식물 대표’라는 낙인이 자연스럽게 찍혔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9월30일 국회 대표실에서 닷새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이 대표, 정국 현안 회피한다” 당내 불만

 

정국 현안을 회피하는 이 대표에 대한 불만이 당내에서 점차 고조되는 기류다. 정국 현안에 대한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한 채 민생을 챙긴다는 명분으로 밖으로만 돌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비박 의원은 “이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지시를 받아 수행하는 수동적 참모 역할만 해 왔고 다른 사람들과 협의하는 팀워크 정치를 한 경험이 없다”면서 “이 대표의 이 같은 정치 이력은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집권여당 대표로서는 맞지 않다. 한마디로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격”이라고 힐난했다. 다른 의원은 “이 대표의 언행과 행보를 보면 마치 청와대 특보를 보는 것 같다”면서 “저렇게 허약한 리더십으로 내년 대선을 어떻게 이끌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고 우려했다. 야당에선 새누리당이 청와대 부속실 정당으로 전락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 대표에게서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여당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당 안팎에서 리더십 문제로 시달린 이 대표로선 타개책이 필요했다. 반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이 대표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안 통과를 계기로 삼았다. 그는 정세균 의장 사퇴를 내걸고 무기한 단식 농성이란 초강수를 뒀다. 이 대표는 “저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사람이다. 그냥 어영부영하려고 했다면 시작도 안 했다”면서 “정 의장이 물러나든지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라는 결기를 보였다. 최소한 정 의장의 사과를 받아내고 국감에 복귀함으로써 당내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고 자신의 리더십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읽혔다.

 

그의 단식은 국감 보이콧과 맞물려 ‘최순실 게이트’ 확산을 막으려는 전략이란 시각이 많다. 미르·K스포츠재단과 우병우 수석 문제 등 청와대가 민감하게 여기는 정치 현안에 대한 추궁을 피하기 위해 단식을 하고 국감을 파행시키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의 심기를 의식한 ‘정치 파업’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여권 관계자는 “우 수석과 최순실씨,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등에 대한 야당의 공세에 힘을 빼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강경 대응은 내년 대선 ‘전초전’ 성격도 띠고 있다. 소수 여당이 거대 야당의 기선을 제압해 여소야대 구도를 흔들어 여당에 유리한 정치지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다수 야당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박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 여소야대 정국 속에 박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운영에 제동을 걸려는 야당 공세에 밀릴 경우 대선 국면에서 주도권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9월28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 언론사 행사에 참석한 정세균 국회의장이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최순실 게이트’ 확산 저지 전략”

 

지지층 결집 효과를 노린 측면도 있다. 정치권 갈등 극대화로 국민의 정치 혐오를 부추겨 여야 지지층을 가르겠다는 포석이다. 여야의 대치전선이 가팔라지면 여권 지지 세력이 결집하는 결과를 초래해 소수 여당의 정치적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 대표의 단식은 역풍을 맞았다. 자신의 정치적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고 국회 기능을 마비시킨 여당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이 대표의 뜬금없는 단식에 대해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꺼내든 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한 비박 의원은 “박 대통령이 김 장관에 대한 해임을 반대해 해임 사태가 결론이 났다”면서 “그럼에도 이 대표가 굳이 정 의장에 항의하고 싶으면 찾아가서 따지면 될 일이었는데 느닷없이 정 의장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을 선택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큰 소를 잡는 칼을 꺼내 휘두르니, 닭도 안 잡히고, 스텝만 꼬인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장관 해임안 처리 과정에서 국회법에 어긋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정 의장에게 따지면 될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9월28일 국감 복귀를 전격 선언했지만 당 지도부와 강경파들이 반대해 국감 정상화가 무산됐다. 8·7 전당대회에서 당헌·당규까지 고쳐 당 대표 권한이 강화됐지만 강경파들은 이날 이 대표의 결정을 한순간에 뒤집었다. 결국 이 대표는 스스로의 위신을 추락시키고 리더십에 큰 상처만 남겼다. 당내에선 이 대표의 독단적 결정이 화를 불렀다고 질타했다.

 

여당의 자중지란에 대한 비판 여론도 들끓고 있다. 안보·경제 위기를 빌미로 야당에 국정 협조를 요구해 온 새누리당이 대화나 타협을 통한 해법 모색을 내팽개친 채 극한 대결만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당 관계자는 “이 대표의 돌발 행동으로 여당의 스텝이 확 꼬인 것 같다”면서 “이제 물밑 교섭을 통해 적당한 선에서 복귀하려는 명분도 사라졌다. 정치력을 발휘해 상황을 수습하지 못하는 이 대표의 무능에 크게 실망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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