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오피스 시장 활황 그 이면의 불편한 진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6.10.06 10:09
  • 호수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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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들은 대형빌딩 ‘울며 내놓고’, 연기금·해외자본 ‘웃으며 쓸어 담아’

국내 부동산시장의 또 다른 축인 오피스 시장이 뜨겁다. 일반 주택시장과 비교할 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같다. 경기침체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채권투자 수익률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오피스 임대업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일부 물건의 경우,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수준에서 거래되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자산관리 회사인 ‘젠스타’ 자료에 따르면, 올 초부터 8월말까지 거래가 완료된 프라임(Prime)급 빌딩은 28개였다. 3월에 거래된 물건 수만 8개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연면적 2만3140㎡(7000평) 이상인 프라임급 빌딩이 한 달 사이 8개가 새 주인을 찾기란 흔치 않은 일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지금 추세라면 하반기 대거 거래가 이뤄지는 전례를 감안해 볼 때 지난해 수준(53개)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찾아온 2008년 이후 가장 많은 거래 건수를 기록한 해였다. 올 1분기 서울지역 오피스 공급량은 2310동이며, 규모로는 3838만㎡(1161만 평), 총자산 가치는 183조8000억원으로 이 중 강남권이 전체 면적의 34.2%인 1312만3000㎡(397만 평), 도심권이 25.0%로 958만6000㎡(290만 평), 여의도권은 13.2%로 505만7000㎡(153만 평)였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옛 삼성생명 본사 사옥과 여의도 IFC몰 건물, 명동 KEB하나은행(옛 외환은행) 본점 건물(왼쪽부터)


금융위기 이후 올해 최다 거래 기록할 듯

 

기관투자가들의 매수세는 매달 꾸준하다. 1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삼성SDS 소유의 역삼 멀티캠퍼스가 1260억원에 삼성SRA자산운용으로 넘어간 데 이어, 4월에는 코람코자산운용이 서울 강남역에 붙어 있는 나라빌딩을 2084억원에 인수했다. 이지스자산운용도 지난 8월 서울 순화동 SK순화빌딩을 도이치뱅크 계열사인 ‘리프’로부터 1304억원에 사들였다.

 

최근 보험사 소유 빌딩이 대거 나오고 있는 것도 기관투자가들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특히 삼성생명의 경우, 2월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동교동빌딩을 592억원에 베스타스사모부동산신탁에 매각한 데 이어, 3월에는 ‘이건희빌딩’으로 불렸던 종로타워를 이지스자산운용에, 6월에는 서울 방이동에 있는 송파빌딩을 592억원에 새마을금고복지회에 팔았다. 또 지난 8월에는 서울 태평로 옛 본점 건물을 5715억원에 부영에 매각하는 등 적극적이다. 삼성화재도 3월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합정동 사옥을 매각한 데 이어, 5월에는 역삼빌딩을 시장에 내다팔았다. 여기에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본사 사옥도 매각 절차를 밟고 있으며, 현재 삼성생명 본사를 매입한 부영이 유력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라이프생명보험도 지난 3월 현대캐피탈 홍대사옥을 570억원에 코람코자산운용에 매각했다. 미래에셋생명은 서울 삼성동 강남사옥을 820억원을 받고 바이오기업 메디톡스에 넘겼다. 특히 미래에셋생명의 강남사옥은 인근에 현대자동차그룹 주도로 글로벌비즈니스센터가 개발되고 있는 등 여러 개발 호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보다 싸게 팔렸다는 분석이다.

 

주요 보험사들이 대거 보유 부동산을 처분하고 나선 것은 오는 2020년 도입될 예정인 국제회계표준(IFRS4) 2단계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게 일반적인 판단이다. 재무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자산을 매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IFRS4 2단계에서 보험사의 부채는 보험계약 당시의 원가가 아니라 회계 작성 시기가 기준이 된다. 이대로라면 상품판매로 인한 손실이 반영되면서 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우량 부동산을 대거 처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4년 말 회계기준을 근거로 볼 때 추가자본이 1조원 이상 필요한 생명보험사는 5곳에 이르며, 시장 전체로 확대할 경우 추가로 40조원을 조달해야 한다. 삼성·한화·교보 등 대형 생보사들은 올 상반기 지방 소재 중소형 사옥을 대거 처분했으며, 하반기에도 물건 매각을 통해 현금보유고를 대폭 늘린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美·中 기관 투자금도 국내 빌딩 매입 나서

 

이러한 움직임은 은행권도 비슷하다.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 등 국내 4대 대형은행 모두 보유 부동산 매각에 적극적이다. KEB하나은행의 경우, 서울 명동에 위치한 옛 외환은행 본점과 별관 모두를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현재 인수 작업을 책임질 주관사를 선정 중이다. 마케팅 등 본사 인력은 새로 짓고 있는 서울 을지로 옛 하나은행 본점에서 근무하게 되며, IT(정보기술) 등 지원부서는 인천 청라국제업무단지에 들어서는 하나금융타운으로 이전한다. 

 

현금 동원력을 높이기 위해 사옥을 처분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진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여성 의류 제조업체 대현의 서울 강남대로변 대현블루타워(1월 매각)와 영동대로변에 위치한 참존 대치 사옥(4월), 영동대교 남단에 위치한 하이트진로 사옥(7월)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 사옥은 셀앤드리스백(Sell & Lease back·매각 후 매도자가 그대로 세 들어 있으면서 임차료를 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이 을지로 본사 사옥을 처분하고 나선 것도 같은 이유다.

 

반면 현재 재계순위 13위(민간기업 기준)인 부영그룹은 삼성생명·삼성화재 본사를 인수한 데 이어, 인천 송도에 위치한 옛 대우자동차판매 소유 땅, 경기도 안성의 모 골프장, 강원·제주의 리조트를 매입하고, 서울 뚝섬에 지상 49층 규모의 5성급 호텔을 지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형 주택업체 관계자는 “임대주택으로 현금동원력이 높아진 부영이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굵직굵직한 부동산 개발 사업에 손을 대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매각가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젠스타에 따르면, 올 서울 지역 프라임 오피스 거래가는 3.3㎡당 1400만~20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0만원가량 올랐다. 지역별로는 광화문 등 도심권(CBD)이 3.3㎡당 2200만~2400만원, 강남권(GBD)은 1800만~2200만원, 여의도권(YBD)은 1400만~1600만원 선이다. 한 오피스 중개회사 관계자는 “최근 거래되는 오피스빌딩은 연일 기존 매매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면서 “중소형과 대형 빌딩 간 양극화는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기관투자가들의 진출도 활발하다. 특히 ‘차이나머니’의 관심이 높다. 중국 안방보험은 계열사인 동양생명을 통해 올 초 서울 역삼동 캐피탈타워(옛 한솔빌딩) 인수전을 비롯해 삼성생명·삼성화재 본사 사옥 인수전에 적극 나섰다.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몰 투자에 나서 고배를 마신 중국 국부펀드 중국투자공사(CIC)는 우량 물건만 나오면 언제든지 다시 인수전에 뛰어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참고로 지난 2014년 중국 대형은행 중 하나인 중국건설은행은 서울 명동 동양생명 사옥을 510억원에 사들였다. 이 밖에 또 다른 대형은행인 중국은행도 현재 서울 도심권 중형급 빌딩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

 

국내 오피스 시장에서 전통적인 큰손으로 활동해 온 미국계 자금도 우리나라를 아시아 내 대표적인 안전 투자처로 판단,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브룩필드가 3조원 규모의 초대형 거래인 여의도 IFC몰을 매입했고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블랙스톤이 서울 역삼동 캐피탈타워를 인수했다. 이 중 6월 진행된 IFC몰 인수전에는 브룩필드, 블랙스톤, 그리고 중국투자공사(CIC)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미국계 자산운용사 인베스코 등이 3파전을 벌일 정도로 치열했다. 인베스코는 지난 2월 서울 동교동 삼성생명 사옥을 인수하기도 했다.

 

 

입주량 증가로 공실률 상승 우려 커져

 

이들 해외 기관투자가들은 3년·5년·8년 등 투자시기에 따라 투자전략이 다르다. 가령 3년 이내 단기 투자는 건물을 매입하고 임차인을 교체한 후 건물 가치를 재산정하는 이른바 ‘리모델링 방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13년 서울역 옛 GS건설 사옥(현 메트로타워)에 투자한 미국계 사모펀드 안젤로고든은 3년 만에 임차인을 새롭게 구성, 현재 재매각을 위한 주관사 선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반면 서울 순화동 SK순화빌딩은 도이치뱅크 계열 부동산 전문 운용사 리프가 지난 2009년 삼성생명으로부터 922억원에 사들여 지난 8월 이지스자산운용에 1304억원에 팔았다. 보유기간(8년) 동안 약 382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셈이다. 한국희 새빌스코리아 상무는 “운영 노하우가 풍부한 외국계 투자사는 공실률이 50% 이상인 위험도가 높은 물건을 싸게 사, 입주자를 채워 국내 기관투자가에게 되파는 전략을 펴고 있다”면서 “반대로 국내 기관들은 위험도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다 보니 임대가 안정된 물건을 비싸게 사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여의도 등 일부 지역의 경우,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가격 거품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여의도는 지난 1~2년간 국제금융센터·전경련회관 등 대형 오피스 빌딩이 대거 지어졌다. 옛 통일주차장 부지에 들어설 파크원도 조만간 공사가 재개되고, MBC 사옥 개발도 본격화되면 공실 해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또 강남권도 연말 잠실 제2롯데월드가 본격화될 경우 공실 대란까지 우려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제2롯데월드는 지상 14~38층은 오피스, 108~114층엔 프라이빗 오피스가 들어서며, 지상 42~71층은 호텔 및 레지던스로 사용될 계획이다.

 

한 오피스 중개업계 관계자는 “지난 7월 GS그룹이 삼성동 코엑스 부근에 지은 파르나스타워가 올해 공급된 강남권 오피스 물량의 약 20%에 해당하는 상황에서 잠실 제2롯데월드까지 지어지면 서울 오피스 시장은 당분간 침체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서울 오피스 시장은 자금이 몰리면서 매매시장은 뜨겁지만, 중·단기 투자관점에서 볼 때 입주(완공)물량 증가로 지금의 거래가가 가격거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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