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산업은행, SLS조선 구조조정 과정서 1000억원대 횡령”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6.10.12 14:2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국철 前 회장, 재판 과정서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 공개…“자신들 잇속을 챙기고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

SLS조선 워크아웃 과정이 부당하게 진행됐다고 주장한 이국철 전 SLS그룹 회장이 이를 증명할 새로운 증거를 내놨다. 시사저널은 10월3일자 기사([단독] “산업은행, 조선·해운 구조조정 문서 위조했다”)를 통해 이 전 회장이 SLS조선의 워크아웃이 부당했다고 주장한 내용을 보도했다.

 

이번에 이 전 회장이 내놓은 새로운 증거는 SLS조선의 워크아웃을 전후해 산업은행이 약 1000억원대의 회사 자금을 빼돌렸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전 회장은 “산업은행이 계약서의 날짜를 워크아웃 이전으로 바꿔치기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회사의 경영정상화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전 회장은 2011년 정·관계 인사에 대한 로비 의혹을 폭로하면서 그 배경으로 지난 2009년 SLS조선에 대한 채권단의 워크아웃 개시 결정이 비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수사를 맡았던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3차장(현 우병우 특별수사팀장) 수사팀은 워크아웃이 정상적이었다고 판단했다. 금융감독원 역시 “SLS그룹의 워크아웃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전 회장은 10월10일 서울 모처에서 시사저널과 만나 재판 과정에서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 일부를 건넸다. 그는 이 자료를 두고 “산업은행이 불법적으로 SLS조선을 무너뜨렸다는 증거 중 일부”라고 말했다. 이 자료에는 산업은행이 SLS조선 워크아웃 당시 SLS조선에 1000억원대의 손해를 일부러 입혔다는 정황이 담겨 있다. 산업은행은 2011년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뇌물수수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에 이 자료를 제출했다.

 

ⓒ 시사저널 포토

산업은행이 검찰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SLS조선은 전신인 신아조선 시절인 2005년 네덜란드의 스톨트사와 총 4척의 선박건조계약을 체결했다. 가격은 한 척당 5748만 달러였으며, 선수금은 한 척당 2299만2000 달러가 들어왔다. 산업은행은 선박 네 척에 대해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발급했다. RG란 조선사가 선박을 계약한 기일까지 건조하지 못하거나 중도 파산하는 경우, 선주(船主)에게 받은 선수금을 채권금융사가 대신 갚겠다고 보증하는 것을 말한다. RG가 발급되면 조선사는 선수금을 받고 선박을 건조한다.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선박 건조가 지연되던 중, 2009년 9월 SLS그룹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은 ‘SLS조선(주) 현황’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워크아웃 이전에 제작된 이 보고서는 산업은행 성장기업본부에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 측은 보고서에서 “당행의 제시조건대로 이행되지 않거나 원활하게 추진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여 당행이 (선박을) 직접 매각하는 방법도 검토”라고 적시했다. 또 해당 선박 4척의 리세일 조성선가로 기존 가격보다 낮아진 4000만 달러를 제시했다. 이 전 회장은 “​주채권은행도 아닌 산업은행이 워크아웃 이전에 각본을 짜 놓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산업은행은 담보로 취득한 네 척의 선박을 두고 스톨트사와 ‘리세일(Re-sale)’ 계약을 체결했다. 리세일이란 건조 중인 선박을 발주자가 아니라 조선소가 내다파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은행 측은 2011년 10월 검찰에 제출한 자료에서 “건조 중인 선박들에 대해 산업은행이 양도담보를 취득”했으며 “2009년 10월30일에 스톨트사와 리세일 매매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산업은행 측은 또 “인도대금은 회사로 입금되어 회사의 운영자금으로 사용됐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실제 수사팀에 제출된 계약서 원문에 적힌 날짜는 2009년 12월30일이었다. 산업은행이 밝힌 계약 체결 날짜보다 두 달 후이며, 워크아웃이 시작된 직후다. 또 산업은행 측은 스톨트사와 계약을 맺으면서 “선주가 조선소에게 이미 지급한 2299만2000 달러의 선박 당 선수금은 해당 선박이 인도됨에 따라 각 선박의 매매대금으로 공제된다”는 내용을 넣었다. 이 때문에 실제 입금된 돈은 척당 1700만8000 달러에 불과했다. 산업은행이 공제받은 금액은 당시 환율을 적용했을 때 한화로 약 1033억원에 달한다. 이 회장은 “산업은행이 ‘워크아웃 이전’임을 강조하기 위해 서류 날짜를 위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전 회장 측은 산업은행이 ‘횡령’을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회장은  “워크아웃에 들어갈 경우 회사의 모든 자산은 금융채권단협의회에 속하게 된다. 산업은행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기 위해 교묘하게 ‘공제’ 형식을 취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잇속을 챙기고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산업은행에서 파견한 경영관리단이 SLS조선의 사무를 처리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자기들 입맛대로 일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회장은 산업은행이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채권에 대해서도 조정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000억원가량의 채권액이 감소했음에도 채권금융기관협의회의 의결권이 전혀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2009년 12월24일 산업은행의 의결권은 13.91%였으며, 이듬해인 2010년 1월15일에는 13.3%로 나왔다. 채권액은 2957억원에서 2485억원으로 400억원가량 감소했으나 1000억원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 전 회장은 이 부분을 문제 삼아 2014년 검찰에 산업은행을 고발했지만 검찰은 “해당 금액이 소멸하더라도 산업은행의 채권액이 제일 많으며, 다른 은행 등이 의결권 재조정을 요청한 것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산업은행이 채권액 소멸을 제대로 신고했다면 무역보험공사와 합쳐 채권액 비율이 70%에도 미치지 못해 워크아웃을 주도적으로 진행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기업구조조정촉진법 22조는 총신용공여액 중 4분의 3 이상의 신용공여액을 보유한 채권금융기관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은 산업은행의 계약 과정을 두고 “정권 입맛대로 워크아웃을 진행한 산업은행과 봐주기 식 수사를 진행한 검찰, 그리고 금감원이 모두 공범”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상 ‘짜여진 각본’이라는 주장이다.

 

산업은행 측은 이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산업은행이 계약서 날짜까지 바꿔가며 얻는 이득이 없다”며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해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당시 해당 업무를 맡은 실무자들이 현직에 없는 경우가 많아 사실관계 파악에 시간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진복 국회 정무위원장은 10월10일 국정감사에서 산업은행의 SLS워크아웃 관련 문서 위조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밝혀 달라”고 산업은행 측에 요청해 10월13일 국정감사에서 해당 사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