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과 교수 매뉴얼
  •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14 19:10
  • 호수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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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근 교수라는 직업의 자긍심에 상처를 받은 것 같아 불편하기 짝이 없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 때문이다. 이제는 학생들이 면담하러 오면서 들고 오는 1000원짜리 음료수도 받으면 안 된다. 학생이 내민 캔 음료를 받고 냉장고에서 다른 음료수를 꺼내주면서 내가 준 것이 더 비싼 것이라는 아재개그로 분위기를 풀어가던 나의 면담전략에도 차질을 생겼다. 앞으로는 누군가가 강의 시작 전에 교탁 위에 올려놓은 음료수도 손대면 안 될 것 같다. 수많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금품으로 간주될 수 있는 음료수를 감히 마실 용기가 없다. 연구실을 노크하는 학생 손에 들린 커피 한 잔이 정(情)이 아니라 금품을 수수함으로써 부정청탁을 받을 것이라는 법적 해석이 ‘나의 인격이 1000원도 못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불쾌하다.

 

동료교수는 학생들에게 밥을 사주는 것도 위법이라고 한다. 학기 말에 학생들이 강의평가를 하기 때문에 학생에게 밥을 사주는 것은 금품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10여 년 동안 학교 앞 식당에서 학생들과 같이했던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 강의평가를 구걸하는 행위로 인식되는 것 같아서 이 또한 불쾌하다.

 

ⓒ 시사저널 임준선

시험시간에 아파서 병원에 간 학생들에게 병원진단서를 증빙서류로 받고 추가시험을 치르게 해줬는데,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혹여 그런 조치가 직무를 공정하고 청렴하게 수행한다는 서약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유학이나 취업에 필요한 추천서를 받으러 오면서 제자가 고맙다고 와인 한 병을 들고 오면 거리낌 없이 받았었다. 선생의 수고에 대한 학생의 감사표시라고 생각했고 그러한 감사의 표시는 학생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또한 법에 어긋나는 행동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추천서를 써주기 전에 받으면 문제가 되지만 추천서 작성 후에 받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미 추천서 작성은 끝났기 때문에 선물로 인해 공평무사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해석은 지극히 자의적일 뿐이다. 학교로부터 청탁금지법에 따라 서약서에 서명해 제출해야 한다는 공문을 받았다. 내용에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공직문화 조성에 앞장선다’는 항목이 있다. 평상시 앞장서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공직문화 조성이라는 엄청난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앞장을 서야 하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으며 앞장설 자신도 없다. 법을 위반하면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서약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법을 위반하면 처벌받는 것은 당연한데.

 

앞에서 언급한 넋두리는 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까닭에 생긴 공연한 설레발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법에 해당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위축돼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 이 법의 모호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음료수를 들고 찾아오는 학생에게 정색하고 위법행위임을 고지하지 않을 것이다. 조부가 돌아가셔서 제때 시험을 보지 못한 학생에게는 재시험의 기회를 주는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학기 말에는 수강생들과 소주 한잔을 할 것이다. 그것이 교수로서 내가 제자들을 대하는 최선이므로….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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