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40년 개인사, “최순실, ‘박근혜의 그림자’ 역할”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6.10.24 13:02
  • 호수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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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제1회 새마음 제전’에 첫 ‘공식’ 동행

“이제야 진짜 핵심이 나타난 것 같다.” 최근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박근혜 정권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최서원으로 개명)를 두고 한 일간지 기자가 한 말이다.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중에서도 핵심 인사로 꼽힌다. 2014년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된 박관천 전 경정은 최씨를 현 정권의 권력 서열 1위로 꼽았으며, 누군가는 최씨를 ‘박 대통령의 오장육부’라고도 표현했다. 

 

박근혜 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베일에 가려진 ‘비선 권력’에 대한 의혹에 시달렸다. 정권 초기에는 ‘십상시’라 불리는 박 대통령 측근 보좌진의 전횡(專橫)에 대한 문제가 지적됐다. 2014년 말에는 박 대통령이 1998년 보궐선거로 정계에 입문할 때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씨가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특히 정씨와 관련된 의혹은 이를 다룬 청와대 내부 문서가 나오면서 정국을 뒤흔들었다. 정씨의 부인이었던 최순실씨는 한때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활동한 고(故) 최태민 목사의 딸로 더 유명했을 뿐, 정권과 관련된 부분에선 남편인 정씨에 대한 주목도가 더 높았다. 하지만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의혹으로 인해 최씨가 진정한 비선 실세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박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 뉴스타파 캡처


朴-崔,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 총재와 회장 

 

최태민 목사의 5녀인 최순실씨는 1956년생으로, 1952년생인 박근혜 대통령보다 네 살 아래다. 박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씨와는 1995년 결혼해 2014년 이혼했으며, 1996년 딸 정유라씨를 낳았다. 정윤회씨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박 대통령의 보좌관을 맡기도 했다. 

 

최씨와 박 대통령의 인연은 최씨의 아버지인 최 목사로부터 시작됐다. 최 목사가 박근혜 대통령과 급격히 가까워지면서 딸인 최씨도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이후로 최씨는 박 대통령의 행적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최씨와 박 대통령의 동행이 공식적으로 처음 확인된 것은 1979년 6월10일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 제전’이다. 당시 단국대학교 대학원생이었던 최씨는 이 행사를 주최한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이 단체의 총재였다. 최태민 목사는 이 단체 본부장으로서 총괄했다. 박 대통령과 최씨는 당시 행사에 함께 참여했으며, 최씨는 박 대통령 바로 옆에서 행사 내내 함께했다. 당시 경향신문을 통해 최씨가 새마음 제전에서 개회선언을 했다는 내용도 알려졌다. 

 

최씨가 박 대통령과 관련된 일에 다시 등장하게 되는 때는 1990년 일어난 소위 ‘육영재단 사태’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되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박 대통령은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칩거의 시간을 보내며 육영재단의 일에만 몰두하게 된다. 최씨는 당시 박 대통령의 옆을 지키며 육영재단 일도 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1990년 육영재단 직원들과 육영수 여사 숭모회 회원들이 재단 운영에 불만을 품고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진정을 넣는 일이 발생한다. 경향신문 1990년 11월17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 사태의 원인은 최씨였다. 경향신문은 ‘현재는 폐간된 《어깨동무》 《꿈나라》 등 어린이 잡지 편집에 딸 순실씨가 간여하는 등 육영(育英)이 목적인 어린이 회관을 수익 사업체로 전환시키려 한 데서 비롯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최씨가 육영재단에서 발간한 어린이잡지 《어깨동무》의 잡지 편집에 개입하고,《어깨동무》의 수익 일부를 챙겼다는 의혹이 일었다. 결국 이 사태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은 육영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후 1997년 박근혜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하면서 최씨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최씨 본인이 아닌 남편 정윤회씨를 통해서였다. 정씨는 당시 박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현재 박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청와대 비서관을 발탁한 이가 정씨다. 정씨는 공식적으로는 2004년까지만 박 대통령을 보좌했지만, 최근까지도 ‘비선 권력’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최순실, 박 대통령의 옷과 장신구 공급”

 

2006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이 지방유세를 하던 중 칼로 얼굴을 베이는 테러를 당했을 때 최씨가 박 대통령의 병간호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간호를 하기 위해 병원을 오가는 최씨를 목격한 이들은 한목소리로 “최씨가 박 대통령을 극진히 간호하더라”고 전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박근혜 캠프를 사실상 지휘한 사람이 최씨의 남편인 정씨였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또 2012년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원회 내부에서도 정씨 측 인사들이 내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외부 인사들과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였다는 얘기도 있었다. 

 

2012년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면서 최씨의 존재감은 더 두드러졌다. 2014년 11월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을 계기로 최씨의 행적이 일부 알려졌다. 박 대통령 집권 1년 차였던 2013년, 최씨의 딸인 정유라씨가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다가 탈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로부터 얼마 후 박 대통령은 체육계에 대한 광범위한 감사를 지시했다. 그 결과 승마협회와 최씨 양측에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자 박 대통령은 “이 사람이 아직도 있느냐”며 질책했고, 결국 보고서를 올린 문체부 체육국장과 체육정책국장이 갑자기 경질됐다. 또 최씨가 비공식적으로 청와대에 수시로 드나들며 박 대통령을 만났고 대통령의 옷과 장신구도 직접 전달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특히 장신구는 서울 청담동에 있는 주얼리숍 B매장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는 최근 B매장을 방문했다. 건물 2층에 자리한 이 매장은 유명 연예인과 유력 인사들이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은 한 점당 수백만원에 달했다. 매장에는 미리 약속이 잡힌 손님만 입장할 수 있었다. 여러 개의 진열대에 목걸이와 귀고리 등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최순실씨와의 관계를 묻자 매장 관계자는 “우리는 최씨와 아무 관계도 없다”며 황급히 매장 문을 닫았다. ‘대통령이 이 매장 제품을 착용하는 것이 맞느냐’는 물음에도 “그렇지 않다”며 부인했다.

 

결국 올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사태로 최씨가 국정에 깊숙하게 개입돼 있다는 의혹이 강하게 일게 됐다. 최씨는 CF감독인 차은택씨를 비롯해 측근들을 재단에 포진시키고 국정에 개입했으며, 딸이 다니는 이화여대에 압력을 행사하고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언론을 통해 최씨의 행적이 드러나면서 이 같은 의혹은 점점 신빙성을 얻는 상황이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최씨는 그동안 전면에 나서지만 않았을 뿐, 사실상 박 대통령의 ‘그림자’ 역할을 한 것 같다. 항간에는 별의별 소문이 다 돌고 있는데, 이런 소문이 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알려주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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