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판도라의 상자 최순실 헬게이트
  •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2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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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숨겨 온 불편한 진실…우리는 최순실 정부 아래 살고 있다

2014년 3월 시사저널은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회장이 정윤회씨에 의해 미행당하고 있다는 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한 바 있다. 그 이후 세계일보에 의해 공개된 ‘정윤회와 십상시’ 문건 유출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뒤에 정윤회가 실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인해 시사저널 보도와 함께 정국에 큰 파장을 미쳤다. 당시 보도는 비선 실세 등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청와대의 강경 대응과 문건의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이 ‘실제 권력 1위는 정윤회가 아닌 최순실’이라는 훗날 성지순례가 된 어록만 남긴 채 흐지부지 종결됐다. 2년 전 박관천 경정이 검찰 조사에서 ‘최순실이 우리나라 권력 1위’라고 밝히자 ‘박관천이 드디어 미쳤구나’라는 실소와 냉소를 보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시계를 훨씬 더 거꾸로 돌려보자. 2007년 당선된 MB(이명박 대통령)는 역대 대선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국민의 지지를 받았지만 임기 말에는 가장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이후 2012년 치열한 접전 끝에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승리하자 MB쪽 인사들과 진보 정치인들 일부는 ‘박근혜 정부 임기 때 MB가 더 낫다는 평가가 분명히 나올 것이다’라는 얘기를 끊임없이 강조했다. 모두가 말도 안 되는 억지라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얘기다. 2007년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 MB와 박근혜 당시 후보가 이전투구하며 격렬하게 대립했을 때 MB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최태민 일가가 국정을 농단할 것’이라는 얘기를 지속적으로 했다. 당시 국민들에게 최태민․최순실․정윤회라는 이름은 너무나 생소했지만 결과적으로 MB캠프의 네거티브 공세는 국민들에게 9년이 지난 현재 사실로 인정받고 있다.

 

2014년 정윤회가 김기춘 비서실장을 찍어 눌러 청와대에서 쫓아내기 위해 이른바 십상시들과 회의를 했다는 내용이 세계일보를 통해 보도되었을 때 놀랍게도 당시 청와대 절대 권력으로 인정받았던 중앙정보부, 검찰 출신 김기춘 비서실장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항간에는 ‘정윤회의 파워는 정말 상상 이상이구나’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윤회 역시도 바지(사장)에 불과했다는 기사와 정윤회 아버지의 최순실에 관한 증언이 연이어 쏟아지는 걸 보면 30년 간 우정을 나눈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 사이는 실제 대다수 국민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깊은 교분, 아니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사이로 고착화된 느낌이다.

 

국민들도 비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통령의 개인적 친분 관계를 인정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머리를 조아린 수많은 가신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곧바로 자신을 향해 안면 몰수했던 경험을 수없이 회고한 바 있다. 권력의 풍향에 누구보다 민감한 정치인들이 차갑게 등을 돌린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건 사람 간의 신뢰와 신의였다. 자신의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최순실이 30년간 묵묵히 내조했다면 누구라도 두터운 친분과 우정을 나눴을 수 있다. 그 정도는 국민들도 대통령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정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국정, 즉 공적인 영역에 깊숙이 침투할 때 국민들은 분노한다.

 

ⓒ 뉴스타파 화면캡쳐

공직자와 정치인의 윤리의식과 도덕성은 일반인보다 높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지난 10년 내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국회에서 강조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도 상대 후보와 자신을 비교하며 지속적으로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운 부분 역시 ‘원칙과 신뢰’에 있었다. 야당 대표 시절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헌 요청을 원칙 없는 발언이라고 거절한 적이 있으며 대통령이 된 이후 청와대에 자신의 동생인 박지만 회장조차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할 정도로 엄격하게 친인척 관리를 해왔다. 그런데 그토록 강조한 대통령의 원칙과 신뢰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최순실 비호를 위해 말 한마디 않던 개헌을 단번에 터뜨리는 걸 보면 대통령은 오직 정윤회와 최순실을 향한 애정과 신뢰가 영원불변 하다는 원칙만 고수하는 듯 하다.

 

대통령이 이렇다 보니 최순실과 그녀의 딸 정유라의 안하무인 행보는 눈꼴사나워 못 볼 지경이다. 고교 및 대학에 가서 행패를 부리며 최순실은 딸의 부끄러운 성적과 출결 상황을 덮는가 하면 정유라는 ‘금수저도 능력’이라며 자신이 대한민국 최고 금수저라는 걸 만천하에 공개하며 20살 나이에 막강한 영향력을 곳곳에 행사했다. 아버지 정윤회를 대통령 보좌관이라고 소개할 정도였으니 실제 정윤회․최순실․정유라로 이어지는 최악의 트로이카가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떡 주무르듯 주물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는 삼성조차 최순실 모녀를 전폭적으로 지원한 걸 보면 최순실은 비선도 아닌 듯 하다. 역대 정권의 비선 실세는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권력을 활용한 데 비해 최순실과 정유라는 ‘대한민국 권력 1위는 오직 우리’라는 걸 여기저기 드러내놓고 강조해왔다.

 

최순실의 권력 앞에 국내 최고의 여대라는 이화여대가 바싹 엎드렸고 국내 최고 기업이라는 삼성과 상당수 대기업들이 그녀의 권좌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시절 유세문부터 당선 후 신년 발표, 외교안보와 인사 문서 등 청와대에서도 핵심 인물 이외에는 접근할 수 없는 공적 문서를 그녀는 마음껏 자신의 빨간펜으로 난도질했다. 이 정도면 국내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최순실은 자기 자신을 대통령으로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국정 개입이 아니라 스스로 국정을 진두지휘했으니 말이다. 이 와중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자신도 연설문을 작성할 때 여러 경로를 통해 주변 지인의 의견을 듣는다고 강조하며 대통령을 엄호했다가 국민의 엄청난 비판과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그 역시도 누구의 말처럼 혼이 비정상인지 모르겠다.

 

지금도 최순실과 정유라, 그리고 정윤회는 도처에 몸을 숨기고 자신들을 쫓는 언론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중 핵심인 최순실과 정유라는 독일에서 종적을 감추고 부동산을 급매물로 내놓는 등 믿기지 않는 행보를 보이며 순식간에 행적을 바꾸고 있다. 두 모녀가 이 정도의 행위를 할 정도면 분명히 뒤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강력히 조종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상당수 언론사가 에이스 기자들을 독일로 파견시켜 최순실을 쫓고 있는데 비해 검찰은 언론보다 훨씬 늦게 두 모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나섰다. 3년 전 이재현 CJ 회장을 구속할 때 보여준 신속하고 치밀한 조사 능력은 어디로 갔는가. 그리고 올해 롯데그룹 전체를 통째로 날려버리려던 그 호기로움은 왜 최순실 앞에만 가면 자꾸 무력해지는지 묻고 싶다.

 

정윤회와 최순실에 대해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은 끝내 ‘최순실의 국정 개입’에 대해 일정 부분 사실임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질의응답 없는 일방적 통보로 끝난 소극적인 대국민 사과였다. 이 사과문 역시 최순실의 검토를 받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 동안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역사를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과 같은 비문도 대통령 연설문에 종종 등장했던 걸 보면 최순실의 국정 통치는 상상 그 이상이었던 것 같다. 풍문에는 최순실과 정윤회, 그리고 정유라에 관해 더 많은 얘기가 떠돌고 있다. 자격 없는 자에게 돌아가는 영광에 대한 분노가 우리 시대 가장 보편적인 정서라고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강조한 적이 있는데,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를 향해 던진 메시지라고 느껴질 정도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의 연설문 개입 등을 통해 사실상 최순실이 국정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점을 스스로 실토했다. 도덕성을 완전히 배제한 정치는 얼마 못가 스스로 환멸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대통령의 메시지에서 도덕적 의의가 결여돼 있으면 이는 결과적으로 정부의 정당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계기로 작용된다. 대통령은 30년간 숨겨온 자신의 비선이 실제 자신의 머리 위에 군림한다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단순한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최순실 헬게이트’라고 불릴만한 수준이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윤리적․도덕적 기반을 잃은 정치인이야말로 국가와 국민의 공공선과 시민의식에 해악을 끼치는 가장 무서운 적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으니 이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을 지는 것도 대통령의 몫이다. 국민들은 지금 그녀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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