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을 본다
  •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11 16:40
  • 호수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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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 임준선

 

정국의 혼란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계속되는 뉴스속보에 가슴이 철렁하고 내일이면 또 무슨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까 걱정이 앞선다. 뜬금없이 내가 이렇게 애국심이 컸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상식적으로 볼 때’라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고 황당한 시나리오가 그럴듯하게 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이 거대한 음모 속에서 돌아가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나 하는 허탈감이 다가온다.

 

엊그제 수업 중 한 학생이 손을 들고 “교수님, 우리가 배운 이론들로 이번 사태를 설명할 수 있나요?”라고 질문해 나를 당황케 했다. 평상시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은 가치가 없다고 강조한 나를 곤경에 빠뜨린 것이다. 30년 넘게 정치 과정을 공부한 입장에서 자괴감 때문에 더 큰 분노가 끓어올랐다. 

 

요즘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풍자 중 하나를 소개한다. 분열적인 사회에서 처음으로 진보와 보수 모두가 같은 목소리를 내게 만들었으니 최순실씨에게 국민대통합위원회에서 공로상을 주어야 한다는 냉소적 이야기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갈등의 대상이 어려움을 겪으면 쾌감을 느껴야 하는데 지금은 개탄의 수준을 넘어섰다.

 

‘이건 국가도 아니다’라는 말이 작금의 한국 정치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의 희망을 본다. 더 이상 나빠지기 전에 밝혀졌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원칙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의 역할을 보았기 때문이며, 국민들은 맹목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번 사태의 출발이 정권과 보수언론 세력의 대결에서 종국적으로 언론이 승리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조선일보와 청와대가 부딪쳤고 한동안 숨 고르기를 하던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청와대에 대한 전면전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정치권력과 언론이 긴장관계를 유지하게 된 것은 좋은 현상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선거 때 편가르기에 동원된 국민들과는 다르다. 진보 측에서는 사안마다 국가안보와 사회질서를 내세우는 집단을 ‘꼴통보수’라는 말로 비아냥거렸지만 이번에 보수가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그렇지 않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맹목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보자. 민주주의는 국가경영에 효율적이지 않다. 많은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담아내려면 시간도 걸리고 최종 결론이 어느 집단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잘못된 것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권력 견제와 제한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것이 현재의 사태를 야기한 것이고, 이러한 잘못을 국민이 바로잡아 가고 있다.

 

정치권은 국민들이 이번 사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국가 정상화보다 내년 대선 구도를 염두에 둔다면 큰 비판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정치인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같이 나라를 걱정해야 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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