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데자뷰에 떨고 있는 재벌 총수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11.15 09:19
  • 호수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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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압수수색, 삼성 다음 표적으로 어디가 될지 재계 촉각 곤두
11월8일 현 정부 ‘비선 실세’로 거론된 최순실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삼성그룹 심장부인 서울 서초 사옥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 연합뉴스

20년 전, 대한민국의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 나왔다. 김영삼 정부 시절,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 8명을 포함한 기업인 35명이 뇌물 공여 혐의로 기소됐다. 꼭 20년 만에 데자뷰가 일어나는 것일까. 헌정 사상 유례없는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 사태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검찰이 수사의 칼끝을 재계로 틀었다. 검찰은 11월8일 아침 6시40분 기습적으로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을 압수수색했다. 삼성 본사가 압수수색을 당한 것은 2008년 삼성 특검 이후 8년 만이다. 삼성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검찰이 자금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경리부서 직원들의 자리부터 우선적으로 뒤졌다”며 “최순실 모녀에 대한 그룹 차원의 자금 지원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이 최순실씨의 독일 회사인 비덱스포츠(옛 코레스포츠)에 송금한 280만 유로(약 35억원)의 용처를 확인하기 위함이 표면적인 압수수색 이유다. 그동안 삼성은 최씨의 딸 정유라씨를 지속적으로 후원해 온 의혹을 받아왔다. 도종환 민주당 의원은 최근 “스페인의 유명 기수 모르간 바르반콘이 자신의 애마 비타나V를 한국의 ‘삼성팀’에 팔았다. 이 말은 앞으로 유라 정(정유라)이 탈 예정”이라고 폭로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삼성 측은 “승마협회 회장사로 선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말을 구입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쪽(정유라)에서 말을 이용할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와서 말을 쓸 수 있게 한 것이 전부”라고 밝혔다.

 

삼성 측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하고 구설은 끊이지 않았다. 정유라씨는 국제승마연맹 누리집(홈페이지)의 자기 소개란에 소속팀을 ‘삼성’이라고 썼다. 삼성이 회장사인 대한승마협회가 지난해 마사회 허락도 없이 박아무개 전 마사회 감독(국가대표 감독)을 독일로 파견했던 사실도 뒤늦게 드러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삼성 고위 임원 출신 A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 구주전략본부 양아무개 전 사장이 중간에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특히 삼성은 최근 이재용 체제로의 전환을 서둘러 왔다. 10월27일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등기이사에 선임됐다. 2년 넘게 병석에 누워 있는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갤럭시노트7 폭발 사건이 발생했다. 삼성전자는 시중에 깔려 있던 모든 제품을 수거했다. 3분기 삼성전자의 순이익은 전 분기 대비 3조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사태를 수습하기도 전에 또다시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삼성그룹 내부의 긴장감은 더하다.

 

삼성전자 측은 이번에도 “승마협회 회장사로서 비덱스포츠에 말과 선수 관리 등을 맡기고 비용을 지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비덱스포츠는 지난해 7월 설립된 신생 회사다. 지난해 9~10월 삼성이 돈을 송금할 당시에도 사업 이력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삼성은 승마협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회사에 돈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대가성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이재용 등기이사 선임 직후 삼성 심장부 털려

  

검찰도 이 돈이 ‘보험용’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검찰은 11월3일 삼성 미래전략실 김아무개 전무를 소환해 한 차례 조사를 마쳤다. 김 전무는 현재 전경련을 담당하고 있다. 계열사에 근무하다 장충기 사장의 눈에 들어 대관(對官) 업무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무 소환 5일 만에 검찰은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검찰 측은 “지금까지 조사는 돈이 오간 내용을 보는 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초동 주변에서는 “또 다른 뭔가 큰 것이 걸린 것 아니겠느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최근 한화그룹과 2조원 규모의 ‘빅딜’을 성사시켰다.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의 상장에 성공하면서 승계 기반을 마련한 상태”라며 “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마찰을 피하기 위해 비선 실세인 최씨에게 줄을 댔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재계의 관심은 어떤 그룹이 다음 타깃이 될지에 쏠려 있다. 삼성 다음으로 압수수색을 당할 경우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만큼 숨을 죽이며 서초동의 동향을 지켜보고 있다.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회사 측 지시로 사무실 컴퓨터와 서류 정리를 급히 마쳤다”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검찰 압수수색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재계가 미르·K스포츠 재단에 지원한 금액은 800억원에 달한다. 대부분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거나 용처가 수상한 돈이었다.

 

일례로 SK그룹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 111억원을 출연했다. 삼성(204억원)과 현대차(128억원)에 이어 3번째로 많은 규모다. SK그룹은 이후 80억원의 추가 출연을 요청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그룹의 한 관계자는 “유럽 법인을 통해 K스포츠재단 산하 회사인 비덱스포츠를 인수하게 하는 등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고 말했다. SK그룹은 연간 40억원 안팎인 사회공헌기금을 쪼개서 내기로 했다. 운용 가능한 사회공헌기금에서 연간 10억원씩, 3년간 30억원을 지급하겠다고 재단에 역제안을 한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 불법 후원 문제가 터지면서 추가 출연은 ‘없었던 일’로 됐지만, 이미 출연한 110억원의 출처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0월31일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로 국정 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나머지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진이나 두산, GS, 금호아시아나, CJ E&M 등은 지난해 대규모 적자에도 불구하고 10억원 안팎을 출연했다. 자금 출처와 함께 대가성 여부에 대한 검찰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주요 그룹 총수들과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독대 과정에서 대통령의 직접적인 압박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재계 전반에 대한 검찰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검찰 관계자는 “기업마다 의혹이 다르다”며 “필요하다면 총수들도 불러 조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의 경우 70억원을 따로 건넸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돌려받았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K스포츠로부터 투자를 요구받자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세무조사 무마를 요청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들 기업에 대한 대가성 여부에 대한 조사도 예정된 수순이다. 특히 롯데는 최근 신동빈 회장의 검찰수사가 끝나면서 대대적인 지배구조 정비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신 회장이 또다시 검찰에 불려갈 수 있어 내부적으로 대책 마련에 골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비선 실세로 의심받고 있는 최씨 모녀의 측근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면서 뒷말이 나왔다. 현대차그룹은 9월까지 6편의 광고 제작을 ‘플레이그라운드’라는 회사에 맡겼다. 현재 제일기획 출신인 김홍탁씨가 이 회사 대표를 맡고 있지만, 최순실씨의 측근으로 알려진 차은택씨가 실소유주로 의심받고 있다. 현대차그룹 측은 “그룹 광고를 계열 광고기획사인 이노션이 대행하면서 일감 몰아주기라는 비판이 있었다”며 “공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광고 물량이 넘어간 것일 뿐 특혜 제공은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설립된 신생 업체에 일감을 몰아준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광고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CJ그룹의 경우 고양 K-컬처밸리 사업이 발목을 잡았다. 한류테마파크인 K-컬처밸리는 미래부가 주도한 ‘문화창조융합벨트’의 핵심 사업이다. 사업비만 1조4000여억원에 이른다. 차은택씨가 문화창조융합본부장으로 있을 때 사업이 진행됐고, CJ그룹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공교롭게도 우선협상자 선정 직후 이재현 회장이 8·15 특별사면을 받으면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당시 재계에서는 ‘CJ그룹이 정부와 빅딜을 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했다.

 

 

검찰 “필요하다면 7대 그룹 총수 소환”

 

실제로 이재현 회장은 K-컬처밸리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 K-컬처밸리 사업을 점검하기 위해 직접 고양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사업팀이 발칵 뒤집혔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당시 사업팀은 이 회장에게 브리핑할 자료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정작 브리핑 때는 이 회장 대신 이채욱 CJ 부회장이 참석했다”며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이 회장이 방문 일정을 취소한 것 아니겠냐는 얘기가 그룹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10월31일 아프리카픽쳐스와 플레이그라운드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한 상태다. 9월말 중국으로 출국했다 돌아온 광고감독 차은택씨도 최근 공항에서 체포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다. 차씨가 최순실 라인임을 활용해 재계로부터 이권을 챙겼는지, 일감을 받는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 행사가 있었는지 등의 수사 역시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승마협회 회장사였던 한화그룹도 좌불안석이다. 지난해까지 승마협회 회장직은 한화그룹 계열사 CEO(최고경영자)들이 돌아가면서 맡았다. 올해 3월25일 진행된 승마협회 회장 선거에서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신임 회장에 당선되면서 회장사 역시 삼성으로 교체됐다. 이 과정에서 삼성과 한화의 ‘빅딜설’이 거론되고 있다. 두 그룹은 2014년 삼성의 화학·방산 계열사 4곳을 한화에 1조9000억원에 매각하는 빅딜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승마협회장까지 패키지로 ‘딜’이 됐다는 것이 업계 일각의 시각이다. 승마협회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씨의 ‘복심’으로 알려진 박아무개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가 중간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검찰이 최근 승마협회와 마사회까지 압수수색을 한 만큼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현재 수사팀 확대를 저울질 중이다. 부서 전체를 투입하기보다 검사를 추가한다는 게 검찰의 생각이다.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 분석을 마치면 조만간 해당 기업에 대한 수사를 통해 본격적인 ‘퍼즐 맞추기’가 시작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그 시기가 언제인가일 뿐, 검찰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게 재계나 사정기관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연임 앞둔 KT 황창규, 포스코 권오준 회장 ‘동병상련’ 

 

재계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 수사가 임박하면서 황창규 KT 회장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행보도 주목되고 있다. 황 회장은 2014년 1월 취임했다. 당시 KT는 전임 이석채 회장의 방만한 경영으로 경쟁력이 크게 하락한 상태였다. 영업이익은 2011년 1조9737억원에서 2013년 8398억원까지 하락했다. 취임 첫해인 2014년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291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황창규 KT 회장 © 연합뉴스
사실상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KT를 되살리는 임무가 황 회장에게 주어졌다. 그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8304명이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났다. 렌터카업계 1위인 KT금호렌터카를 포함해 싸이더스FNH, KT캐피탈 등 비통신 자회사도 줄줄이 매각했다. 올해 2분기 KT는 이동통신 3사 중에서 유일하게 영업이익이 상승했다. 4년 만에 분기 영업이익 4000억원대를 회복했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내년 3월로 예정된 황 회장의 연임 역시 무난하게 넘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권오준 회장 역시 황 회장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그는 2014년 3월 포스코 회장에 취임했다. 정준양 전 회장이 벌여놓은 M&A(인수·합병)의 후유증을 톡톡히 앓고 있던 시기였다. 무리한 투자로 대규모 부실 계열사가 양산됐다. S&P의 신용등급은 A에서 BBB+로 내려앉았다. 무디스 신용등급은 A2에서 BBB2까지 내려갔다. 투자적격 등급 중에서 하위 두 번째였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 시사저널 이종현

권오준 포스코 회장© 시사저널 이종현

권 회장 역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포스코특수강과 포스화인, 포스타워 등 30개가 넘는 계열사를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전병일 전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대우) 대표가 미얀마 가스전 매각에 반발하며 항명을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올해 초에는 정민우 전 ER실(대외협력실) 팀장이 청와대 앞에서 ‘포스코를 살려 달라’며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권 회장은 조직 통폐합과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에 빠진 회사를 다시 안정화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1년간 포스코 주가는 40% 이상 올랐다.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권 회장의 연임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최순실 게이트가 연임을 노리는 두 사람의 발목을 잡았다. KT는 이 재단에 18억원을 출연했다. KT 내부 규정상 10억원 이상 출연·기부 때는 이사회 결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KT는 이런 절차도 없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거액을 출연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KT 새노조는 10월 황 회장을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차은택씨와의 밀월 의혹도 불거졌다. KT가 올해 2월부터 9월까지 내보낸 영상광고 24건 중 6건을 차씨가 대표로 있는 아프리카픽쳐스가 제작했기 때문이다. 플레이그라운드가 따낸 5건의 광고까지 합하면 전체 KT 광고 집행 건수의 절반에 육박하면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포스코도 미르·K스포츠 재단에 49억원을 출연한 상태다. 특히 포스코의 경우 지난해 광고대행 계열사였던 ‘포레카’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차씨에게 회사를 넘기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일련의 악재가 두 사람의 연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특히 KT와 포스코는 민영화됐지만, 전통적으로 회장 선출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이 많이 작용하는 만큼 향후 추이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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