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폴, 청와대로 갔을 가능성 배제 못해”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11.21 13:17
  • 호수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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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이름으로 향정신성 의약품 처방 확인…대통령 자문의 “프로포폴 처방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민간병원의 주사제를 맞아왔다는 사실이 보건 당국의 조사에서 밝혀진 가운데 그 주사제의 정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세간에는 향정신성 의약품 주사제(프로포폴·미다졸람 등)가 아니냐는 의혹이 팽배하다. 실제로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씨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 향정신성 의약품이 병원 밖으로 유출됐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시사저널의 취재 결과 확인됐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11월11일 국회에서 최순실씨가 대리처방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향정신성 의약품일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돈다”고 말했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도 “어떤 주사제가 처방됐고 반출됐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향정신성 의약품은 과용할 경우 중독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있어 관련법으로 엄격하게 관리한다. 처방한 의사가 병원 내에서 주사해야 한다. 그 주사제가 병원 밖으로 반출되거나 처방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주사할 경우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 한 개인의원 원장은 “향정신성 의약품은 이중 잠금장치를 한 곳에 보관하고 환자에게 사용할 때도 관리대장에 환자 이름, 날짜, 시간, 사용량 등을 기록해야 한다”면서도 “그 주사제가 병원 밖으로 나갔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사됐는지는 기록에 남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건강검진센터에서 간호사가 프로포폴 재고를 점검하고 있다. 최순실씨의 대리처방으로 프로포폴 등 향정신성 의약품이 청와대로 유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연합뉴스

차움의원에서 최순실씨에게 처방된 향정신성 의약품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주사제가 최순실씨에게 주사됐는지, 병원 밖으로 유출됐는지는 향정신성 의약품 관리대장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순실씨에게 처방된 향정신성 의약품이 청와대로 들어갔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차움의원의 대리처방 사례 등을 종합해 볼 때 최순실씨 자매 이름으로 처방된 향정신성 의약품 주사제가 청와대로 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개한 최씨의 진료기록 일부에 있는 ‘대표’ ‘청’ ‘안가’ ‘VIP’ 등 대통령과 청와대를 의미하는 처방 건에는 향정신성 의약품 기록이 없다. 그러나 최순실씨의 이름으로는 향정신성 의약품 3종류가 처방됐다. 복지부는 “대리처방이 의심되는 29개 진료기록에는 향정신성 의약품 처방 내역이 없다”면서도 “최순실씨의 진료기록에 공황장애를 치료하는 향정신성 의약품 처방이 자주 기재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29건의 대리처방 외에 최순실씨 본인에 대한 처방 건에 대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최순실씨의 이름으로 향정신성 의약품 주사제를 몇 차례 처방했고 그 주사제가 병원 밖으로 반출됐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동모 차움의원 원장은 “최순실씨를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 병원은 의료법상 개인 진료기록을 공개하지 못하게 돼 있다”며 “이는 국민의 알 권리보다 앞선다고 본다”고 말했다.

 

 

“665회 병원 방문, 402회 처방은 비정상”

 

최순실·최순득씨 자매는 2010년부터 2016년 6월까지 차움의원을 모두 665차례 드나들면서 402회에 걸쳐 처방받았다. 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차움의원을 507회 방문했고 293차례 처방을 받았다. 최씨의 언니 최순득씨는 같은 병원을 158회 방문해 109차례 처방을 받았다. 3~4일에 한 차례씩 병원에 들렀고 일주일에 1차례 처방을 받은 셈이다. 처방 횟수가 비정상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처방 횟수가 너무 많다”며 “처방한 주사제가 대통령에게 갔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최순실씨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한 처방도 포함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차움의원은 2013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향정신성 의약품 8개 제품을 98차례 공급받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전체 98차례 공급 횟수 중 프로포폴 44회(5826병), 미다졸람 45회(2만460병) 등 89회가 프로포폴과 미다졸람이다. 주로 수면내시경을 위한 수면 유도에 쓰이는 전문의약품이다. 의존성이 강해 과다 투여하면 중독될 수 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처방하는 양보다 2~3배 많게 처방된 사례가 2012~13년 총 21회라는 사실이 복지부 조사에서 밝혀졌다. 복지부는 “2~3배 많은 약물이 처방됐다는 것은 비타민 주사 세트(주사약, 주사기, 알코올 솜)를 처방 당일 2~3세트 맞았거나 최씨가 이를 챙겨 갔다는 의미가 모두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의약품이 최순실씨의 이름으로 처방돼 외부로 반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차움의원 관계자는 “프로포폴과 미다졸람은 일반인 건강검진 때 내시경검사를 위해 공급받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정부, 성형외과 처방 주사제 성분 미공개

 

직접 박 대통령에게 주사제를 처방하고 접종한 김상만 녹십자아이메드 원장(전 차움의원 처방 의사)은 11월17일 시사저널에 “향정신성 의약품이나 호르몬은 전혀 없었다”면서 “(처방한 의약품은) 비타민 주사와 태반주사(라이넥)”라고 해명했다. 피로 회복, 노화 방지 등의 목적으로 영양제를 주사했을 뿐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하지는 않았다는 주장이다. 김 원장은 차움의원에서 근무하다 2014년 2월 녹십자아이메드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순실씨를 통해 2013년 8월부터 대통령 자문의로 활동 중이다. 차움의원 재직 당시 그는 최순실·최순득 자매의 이름으로 처방한 주사제를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에게 주사했다.

 

그는 그동안 각종 주사제를 청와대가 구입했고 자신은 주사 행위만 했으므로 대리처방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복지부 조사에서 대리처방 사실이 드러났다. 복지부는 11월16일 김 원장에 대해 75일간 의사 자격정지 처분을 내리고 강남구 보건소에 김 원장을 형사고발할 것을 요청했다. 최순실씨가 차움의원에서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은 점, 비정상적인 처방 횟수, 처방받은 비타민 주사와 태반주사가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에게 사용된 점 등으로 볼 때 향정신성 의약품도 청와대로 유입됐을 수 있다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불법 의료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영재의원(성형외과)과 차움의원(오른쪽 사진) © 시사저널 박정훈

차움의원뿐만 아니라 김영재의원(성형외과)이 처방한 주사제 성분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최순실·정유라 모녀가 다녔던 서울 강남의 이 병원은 성형시술을 하면서 향정신성 의약품을 사용하지만 강남구 보건소와 복지부는 이 병원에서 최순실씨에게 처방된 주사제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성형외과는 2013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프로포폴 주사제 4000개를 공급받았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의약품 관리 종합 정보센터’에 등록된 프로포폴 공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지속해서 줄어들어 2015년 5월 500개이던 프로포폴 주사제가 올해 상반기에만 2배인 1000개로 증가했다. 최순실씨는 2013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이 성형외과에서 ‘최보정’이라는 이름으로 136회 진료를 받았다. 실명이 아닌 가명으로 진료를 받은 이유와 이 병원에서 처방된 주사제 등에 대한 의혹이 커지자 복지부는 김영재의원의 김영재 원장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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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도 모르는 대통령에 대한 의료행위 

대통령의 건강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어서 경호실 소속 의무실장이 청와대에 상주하며 건강을 체크한다. 또 외부 의사를 차관급 예우의 대통령 주치의로 임명하고 비상근으로 2주일에 한 차례씩 대통령의 건강을 살핀다. 주치의 혼자 대통령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진료 과목별로 30여 명 규모의 자문의단(諮問醫團)을 구성하고 필요시 주치의가 자문의단 회의를 소집한다. 김상만 녹십자아이메드 원장은 차움의원 재직 당시인 2103년 8월 대통령 자문의가 됐다.

그러나 청와대 의무실장이나 대통령 주치의는 김 원장을 대통령 자문의로 선정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2013년 4월부터 2014년 7월까지 대통령 주치의를 지냈던 이병석 세브란스병원장은 2013년 7월께 자문의들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김 원장을 처음 만났다고 했다. 김원호 전 청와대 의무실장(현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도 “김 원장과 일면식도 없었고 의무기록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원장은 대통령 자문의 자격으로 청와대를 드나들며 대통령에게 비타민 주사와 태반주사 등을 주사했다. 김 원장은 한 언론을 통해 “한 달에 한 번 정도, 부를 때만 (청와대에) 들어갔다. 청와대 의무실장, 대통령 주치의, 간호장교가 배석한 상태에서 진료를 봤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아플 경우 웬만한 진료는 의무실에서 처리하지만, 수술이나 입원이 필요하면 청와대 앞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간다. 박정희 정부 시절 기무사 내에 만든 이 병원은 국군의무사령부 산하에 있으며 대통령 일가의 진료를 위한 시설이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총격을 입은 뒤 옮겨진 곳이기도 하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혈액검사 등 대통령의 진료 목적이라면 군 병원을 이용하면 되는데 굳이 민간병원을 이용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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