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아, “상처 가득한 첫 올림픽, 아프지만 이겨내야죠”
  • 김흥순 아시아경제 문화스포츠부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24 11:25
  • 호수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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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프로배구 정규리그 1라운드 MVP 박정아 선수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끝난 지 석 달. 여자 프로배구 IBK기업은행의 박정아(24)에게 3개월은 큰 고통이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이었다”고 했다. 이 기간 자신과 혹독하게 싸웠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훈련과 경기에 몰입했다. 배구 때문에 받은 큰 상처를 배구로 치유하기는 쉽지 않았다.

 

박정아는 여자 배구 국가대표로 리우올림픽에 나갔다. 자신의 첫 올림픽. 설렘과 부담을 동시에 안고 출전한 무대는 악몽으로 끝났다. 대표팀이 8강에서 탈락하자 경기력이 부진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비난이 쏠렸다. 경기가 끝나자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에 그의 이름이 상단을 맴돌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원색적인 비난도 쇄도했다. 김연경(28·페네르바체)이라는 대형 공격수를 중심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메달권에 진입하리라 기대했던 팬들의 허탈감, 이것이 박정아를 겨냥한 분노로 바뀐 것이다.

 

그는 SNS 계정을 비공개로 바꾸고 외부와 단절했다. 감수성 예민한 스물넷 숙녀가 감당하기 어려운 후폭풍. 충격도 컸다. “금방 털어내려고 했는데 지금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못해서 비난하는 건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지만 ‘내가 망쳤다’는 자책감에 특히 괴로웠다.” 상처는 완전히 낫지 않았다. 올림픽을 떠올리면 여전히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그래도 한국배구연맹(KOVO)컵 대회와 10월15일 개막한 V리그를 통해 조금씩 비상하고 있다.

 

박정아는 정규리그 1라운드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KOVO컵에서도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MVP에 올랐다. 단발머리로 이미지를 바꾸고 경기력을 회복한 그를 11월16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기업은행 훈련장에서 만났다. 이곳에서 그는 더 큰 도전을 준비 중이다. 올 시즌이 끝나면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 나간다. 상처를 감추지 않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디게나마 애쓰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박정아(왼쪽 두 번째)가 11월11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흥국생명과의 원정경기에서 득점한 뒤 동료 선수들과 기뻐하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KOVO)

팬들이 단발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많이 하던데요.

 

“큰 의미는 없었는데 주위에서 ‘배구 열심히 하려고 머리카락을 잘랐느냐’고 묻더라고요. 더 기르라는 분들도 많았는데 막상 자르니까 주변에서 잘 어울린다고 얘기하시니 흐뭇하죠.”

 

 

새 훈련장으로 옮긴 지 1년이 넘었네요. 환경이 개선되면서 경기력에 도움이 되나요.

 

“전에는 야간 훈련을 하고 싶어도 이동하기 쉽지 않고 제약이 많았어요. 이곳에서는 체력단련이나 보강훈련 등을 언제든지 할 수 있어서 좋아요. 너무 외딴곳이라 즐길 거리가 마땅치 않아요. 아파트에서 옹기종기 모여 지낼 때는 가까운데 마트나 영화관도 있고, 그때도 나름 즐거웠어요.”

 

 

훈련이 없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오래 걷거나 많이 움직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쇼핑에도 크게 흥미가 없고요. 소설책을 즐겨 보거나 유행하는 드라마를 한꺼번에 몰아서 봐요. 숙소 인근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동료들과 카페에도 가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쌀국수를 정말 좋아하는데 동탄에 단골집이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가는데 좋아하는 메뉴를 빼놓지 않고 잔뜩 시켜 먹어요.”

 

 

올림픽에 대한 상처는 많이 털어냈나요.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이라고 할까, 제 자신한테 속상해서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금방 털어내고 싶었지만 지금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아요.”

 

 

팬들의 비난 때문에 속상했던 건가요.

 

“제가 너무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죠. 경기를 다 망친 것 같고. 욕하는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어요. 굳이 SNS까지 찾아와서 심한 말을 하시는 분들도 많아 속상했지만 제 탓이 크다고 받아들였죠.”

 

 

힘든 순간을 혼자서 이겨냈던 건가요.

 

“누구도 제 앞에서 올림픽과 관련한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사실 혼자 극복하도록 모른 척해 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 올림픽이 끝나고 일주일 동안 고향(부산)에 갔는데 어릴 적 친구들이 매일 다독여주더라고요. 그게 위안이었죠.”

 

 

5년 동안 프로에서 많은 경험을 했는데, 올림픽이라는 무대는 확연히 다르던가요.

 

“올림픽에서 대결한 선수들은 힘이나 높이가 국내에서 상대한 경쟁자들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첫 경기 때는 손이 굳을 정도로 부담도 되고, 실력차라는 걸 절감했죠. 관중 수도 국내 경기와는 비교할 수 없었고요. 브라질이 배구 인기가 많아서인지 열광하는 모습에 훨씬 긴장했던 것 같아요.”

 

 

아픈 경험이지만 올림픽을 통해 얻은 점은 없나요.

 

“더 많이 배웠다는 점? 실력도 되돌아보면서 마음가짐이 성장했다고 할까요. 가급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이보다 최악은 이제 없을 거야’라고. 몸 관리를 잘해도 경기장에서 너무 안 풀리는 날이 있어요. 전에는 안 되는 부분만 계속 생각했는데 지금은 바뀌었어요. ‘분명 돌파구가 있을 거야’ 하면서 끊임없이 저한테 주문을 해요.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원래 제가 경기한 영상을 꼭 챙겨 보는데 올림픽은 아직까지 못 보겠더라고요. 언젠가는 볼 용기가 생기겠죠. 그때 천천히 문제점을 되돌아보고 싶어요.”

 

 

다음 시즌이면 FA 자격을 얻는데 자극이 되나요.

 

“아직은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아요. 가치를 인정받으면 좋겠지만 잘 모르겠어요. 올해 연봉도 이 정도로 많이 오를지 몰랐어요(그는 지난해보다 1억원 오른 2억2000만원에 계약했다. 여자부 연봉 순위 3위다). 무조건 다른 팀에 가고 싶다거나 그런 마음도 아니고요. 당장은 지금 상황에 충실해야죠.”

 

 

올 시즌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요.

 

“그동안은 ‘개인적인 욕심보다 팀 성적이 중요하다’고 늘 얘기했어요. 그 마음과 크게 다르진 않은데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제가 정말 잘해서 팀이 우승하는 걸로. 못했다는 자책은 그만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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