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간첩’ ② “국정원 수사에서 한 자백은 강압에 못 이겨 한 거짓말이었다”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11.2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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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거짓말탐지기 회피약물 간첩’ 혐의 이혜련씨

‘나는 북한 보위사령부가 보낸 간첩입니다.’

수상한 자백, 그리고 3년의 수감생활. 탈북한 뒤 간첩혐의로 옥살이를 한 이혜련(41)씨의 얘기다. 북한 양강도 혜산시에 살던 이씨는 2013년 2월 한국에 왔다. 입국 뒤 국가정보원의 정부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곳에서 이씨는 자신을 ‘북한 보위사령부가 직파한 간첩’이라고 ‘자백’했다. 적어도 국정원의 설명은 그렇다.

 

국정원과 검찰은 이 자백을 기초로 그가 2012년 6월께 보위부 공작원이 됐고, 한국으로 위장 잠입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씨의 자백은 주변인의 진술과 다르거나 상식과 동떨어진 부분이 있었다. 

 

​우선 자백내용에는 한국 수사당국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탐지기 회피약물’을 썼다는 부분이 들어 있었다. 이런 약물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료계는 의문을 표한다. 이씨가 보위부에서 받았다는 지령도 한국의 실상과 차이가 있다. 북한 보위부장은 ‘국정원이 알몸수색을 하지 않으니 거짓말 탐지기 회피약물을 속옷에 숨겨가고, 최아무개(이씨의 옛 연인이자 반북활동가)의 동향을 파악하라’는 지령을 내린 걸로 돼 있다. 하지만 지령과 달리 국정원은 탈북한 이들의 알몸수색을 하고 있다. 지령에 이씨가 국내 정보를 파악해 전달하기로 돼 있는 '전달책'의 정체도 의문스럽다. '전달책'의 딸이 "우리 어머니는 공작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고, 그 시기에 수감돼 있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씨와 함께 탈북한 사람은 “이씨가 한국에 오기 싫어해서 억지로 데리고 왔다”고 말한다. 간첩으로 ‘침투’할 사람이 누군가에게 떠밀려서 탈북했다는 얘기다. 

 

ⓒ 시사저널 고성준


수상한 자백과 ‘보위부 직파 여간첩’

 

이런 자백을 바탕으로 이씨에게 ‘간첩혐의’가 적용됐다. 이씨는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그런데도 이씨는 항소심(2심)까지 자신의 자백 내용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다 2014년 상고심을 준비하면서 이 자백이 허위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1·2심에서 이씨가 자백한 내용이 발목을 잡았다. 2014년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확정 받았다.(만들어진 간첩1화, "나의 간첩 혐의는 국정원이 조작했다 참조) 그는 올해 7월 출소했다. 시사저널은 11월 23일 서울 서초동에서 그를 만났다.

 

이씨는 시사저널과 인터뷰에서 “자백내용은 대부분 거짓이다”라면서 “국정원이 강압적인 수사를 했고, 말을 바꾸면 징역 7년을 간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내 자백 내용을 바꾸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어떻게 지냈고, 어떻게 한국에 왔나.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예술 선전대 활동을 했었다. 재산이 조금 있었다. 그렇게 살았는데 한국에 오고 싶지는 않았다. 온다는 생각조차 안 했다. 당시 연인이던 김씨가 가자고 했다.

 

 

북한에서 떠날 때 한국에 오기 싫었나.

 

가족도 챙겨야 했다. 엄마가 위암을 앓고 있었다. 자식 할 도리를 해놓고 오면 그나마 괜찮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한국에 온 것은)당시 연인 김씨가 나를 속인 거다. (2012년)11월 말에 가자고 했고 지인(브로커)이 우리를 무사히 데려간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생각해본다고 했다. 그런데 말한 바로 다음날 나를 데려간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못 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김씨가 끌고 갔다. 매를 맞았다. 안 오겠다는 사람이 매 맞으며 온 것이다. 그런데 간첩일 수가 있나.

 

 

2013년 초 합신센터 국정원 직원에게 간첩이라 의심받은 이유는 뭔가.

 

수사관하고 이야기할 때 옛 연인인 최아무개씨(탈북한 뒤 반북활동가로 활동) 때문에 보위부에 불려간 적이 있다고 말한 뒤부터다. 그 다음부터 이상한 시선이 왔다. 이상한 질문을 계속 했다. 나는 말을 안 했다. 수사관하고 소리를 높이며 싸움까지 했다. 그랬더니 나를 독방에 가둬두고 조사도 안 하더라. 남들은 1주일 만에 나가는데 내 조사만 길어졌다. 5~6개월 감금돼 있으면서 밖에 못나와 봤다. 남들은 다 운동하고, 커피 마시게 하는데 나는 못하게 했다.

 

 

옛 연인 때문에 보위사령부 관계자를 만난 과정을 설명해 달라.

 

국정원 직원이 최씨를 어떻게 아는가 물어서 전후사연 얘기를 해줬다. 어느 날 시 보위부에서 집에 찾아와서 조사 받으러 가자고 했다. 내가 최씨와 연인이었으니 보위부 쪽에서 ‘한국에 간 최씨가 북한 군인 누구와 공모를 했나’고 물었던 거다. 말하자면 참고인으로 나를 조사했던 거였다. 당시 최씨 자체가 북한에 없었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해 몰라서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탈북한 사람이라 잘 아는 척 해봤자 내가 좋은 게 없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로 보위부 사람들이 집에 왔는데 그때는 숨어서 조사 받으러 가지 않았다.

 

 

합신센터의 국정원 직원이 어떻게 조사했나.

 

아침 10시에 우선 부른다. 점심 밥 먹고 재차 부른다. 남들은 유순하게 하는 조사를 나는 빡세게 하는 것이다. 저녁밥 먹고 또 불러 댔다. 밤 10시가 되면 합신센터 청사 불이 꺼지는데, 그때까지 조사하는 거다. 어떨 때는 조사실의 문을 열고 복도 불빛으로 조사 받았다.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좋은 말도 세 번 하면 짜증난다. 세 번을 고사하고 몇 백번 하니까. 한번은 5일 동안 가족 관계, 인간관계에 대해 정확히 적어내라고 했다. 보통 다른 사람이 나랑 몇 살 차이인지 정도만 기억하고 그 사람의 출생연도와 이력을 갑자기 기억할 수 없질 않나. 이걸 계속 물어봐서 5일 동안 기억해서 외우고 정확하게 써서 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1주일 동안 써서 냈더니 그 종이를 내 앞에서 찢어버리는 거다. 공포스러웠고 자살하고 싶었다. 강압적으로 기억하라 하니까.

 

 

거짓말 탐지기 회피약물 이야기는 어쩌다 나온 건가.

 

세상에 그게 참 말도 안 된다. 약물 소리는 왜 나왔냐면 거짓말탐지기 검사 조사를 한다길래 내가 빨리 해달라고 했다. 내 결백을 증명해달라고. 처음 조사에서 내 말이 진실이라고 나왔는데 내 전담 수사관이 나에게 ‘내 말을 기계가 거짓이라고 판명했다’고 속인 거다. 그래서 화가 나서 항의하는 과정에서 내가 거짓말탐지기 피하는 약을 먹었다 배꼽에 밴드를 붙였다 어쩌겠느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국정원서 강압적으로 조사했다”

 

조사기록에 지령을 보낸 박아무개 보위부장이 지령을 내리고 이씨가 한국에서 제3의 공작원 ‘꼽새’와 접선할 계획이었다고 돼 있다. 이들에 대해 수사관에게 말한 적 있나.
 

꼽새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내 담당 국정원 여성 조사관이 나에게 북한에 대해서 계속 물었다. 북한에서 ‘대호명(대신 부르는 가명)같은 거 어찌 쓰나요?’ 해서 내가 ‘꼽새 같은 거 쓰겠죠’ 해서 꼽새란 말이 나왔다. 박아무개 보위부장 이름도 나는 몰랐다. 알 수가 있나. 그 여직원이 몇 군단 소속 누구라는 거 알려주고, 그 다음부터 기억하라고 했다. 나는 잊고 있었는데 그 보위부장 이름 기억 못한다고 ‘돌대가리’라는 식으로 나에게 말했다.

 

 

이런 내용들이 허위라면 어쩌다 다 조서에 들어간 건가. 

 

오전에는 강압적으로 조사를 하다가도 오후에는 또 농질(농담)을 주고 받는다. 웃으며 말이 오고갔다. 그런데 마지막에 내가 어떻게 농질 한 게 조사받아서 된 걸로 다 돼 있더라. ‘보위부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하면 ‘이럴 걸요’ 하고 대답하면, 내가 실제로 경험이 있기에 답했다는 식이다.

 

ⓒ 시사저널 고성준


“자백내용 대부분 거짓말…국정원서 말 바꾸면 징역간다고 협박”

 

조서 작성된 내용 보고 반발하지 않았나. 진술을 검찰에 가서도 바꾸지 않은 이유 뭔가.

 

조서 내용에 대해 말을 바꾸면 징역 7년을 간다고 했다. 내가 왜 징역 7년을 가냐고 했더니 말을 안 바꾸고 조서내용을 인정하면 생활환경이 좋은 하나원에서 살 수 있다고 했다. 또 서울에 거주지를 마련해주고 용돈도 준다고 했다. 합신센터 말고 다른 국정원 직원들이 나를 재조사할 때도 그 합신센터 직원이 같이 있었다. 그래서 말을 바꾸지 않았다. 검찰에서도 ‘징역 7년 간다’는 말이 뇌리에 박혀서 말을 못 바꿨다. 1심에서 징역 3년이 나왔고, 그때도 말을 바꾸면 징역 7년이니 그래도 3년이 낫다고 생각해서 인정했던 것이다.

 

 

합신센터를 나올 때까지도 속은 지 몰랐다는 얘긴가.

 

국정원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하나원 가는 줄 알았다. 합신센터를 나간다는 생각에 합신센터 수사관이 편지 한 장 써달라고 해서 써주기도 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냄새가 이상했다. 국정원 수사관이 말해준 하나원이 아닌 것 같았다. 물어보니 구치소라고 했다. 이후 재판이 진행됐다. 징역형을 선고 받았고 울었다. 2심 끝나고 변호사님들이 찾아와서 사실대로 얘기를 했다.

 

 

국정원 측에서 출소 이후 또 찾아온 적 있나.

 

출소 이후 국정원 국장이라는 사람이 직원들 4~5명쯤 같이 와서 만나자고 했다. 변호사님이 만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사람들이 집 앞이라고 해서 만났다. 만나서 ‘꼽새’ 이야기를 물었다. 나는 ‘꼽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최근에 내가 결혼한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남편의 과거, 계좌 이런 부분들을 살펴봤다는 식이었다. 굉장히 화가 났고 불쾌했다. 내가 영화 ‘자백(국정원 간첩조작을 다른 영화)’을 봤다고 하고, 나도 나중에 이런 데에 출연해야겠다고 하니 비웃었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는 입장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억울한 3년을 두고 내가 사과를 받아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를 거다. 처음 와서 이 나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독방에 가둬놓고 있고. 사람들 만날 수 없고 공포스러웠다. 기분이 엄청 좋다가도 징역살 때 생각하면 목소리가 올라간다. 국정원 사람들이 증오스럽다.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 끝까지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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