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의 죽음에 교차하는 환호와 슬픔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11.28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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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사와 비난이 섞인 카스트로의 반세기 쿠바 지배...세계사적 그의 영향력은 인정해야

긴 수염과 잘 생긴 얼굴, 군복, 그리고 열정적인 연설. 그의 카리스마를 대표하는 몇 가지 단어다. 쿠바를 상징하는 지도자였던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11월25일 사망했다. 그의 나이 올해로 90세다.

 

쿠바하면 떠오르는 것은 뭘까. 누군가는 정열의 살사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야구를 떠올릴 거다. 하지만 그래도 쿠바하면 몇 안 남은 '사회주의'가 우선이다. 사회주의를 관철해 온 쿠바는 최근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다. 8년 전인 2008년에는 카스트로가 '은퇴'하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고 이후 조금씩 경제 개혁을 추진했다. 지난해에는 54년 만에 미국과 '국교정상화'라는 사건을 만들었다. 

 

쿠바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했던 카스트로인 만큼 충격도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별개로 카스트로가 남긴 유산은 쿠바 사회에서 계속 논쟁 거리가 돼야 할 운명이다. 

 


카스트로의 통치 중 자랑으로 내세우는 건 전국 공통의 의료 제도와 교육 등 사회 개혁 부문이다. 비단 국내의 자찬만 있지 않다. 2006년 당시 런던의 '헝그리 시장'으로 유명했던 켄 리빙스턴은 카스트로의 사회 개혁을 칭찬했다 . "반세기 동안 미국에서 경제 제재를 받던 나라가 국민에게 최고의 의료 제도와 훌륭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리빙스턴은 칭송했다. 그리고 이런 제도야말로 '카스트로의 위대함'이라고 평가했다.

 

그런 카스트로의 위대함은 '억압'에서도 절대적으로 발휘됐다. 그는 반세기 가량 쿠바 국민에게 절대 복종을 요구했다. 언론의 자유는 탄압 받았고 카스트로 체제에서 '반사회적'이라고 여겨진 사람들은 투옥됐다. 2008년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약 50년 동안 쿠바 국민들은 자유로운 표현, 결사와 집회의 자유, 정치 · 사회 활동 등 기본적인 인권을 박탈당했다"고 보고했다. 조직적인 제재로 국민들을 통제했는데, 사용한 방법들은 다음과 같다. 지속적인 감시, 가택연금, 여행 제한, 기소, 해고. 카스트로가 투옥한 정치범은 반세기동안 수천명일 거라고 추측되는데, 그 사이 미국으로 건너간 보트피플은 100만명이 넘는다. 

 

흥미로운 건 가족이 평가하는 카스트로다. 막상 그의 가족은 그의 정치적 행동을 비난했다. 1960년대 이미 쿠바를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한 후아니타 카스트로는 "나는 조국에서 일어나고있는 일에 더 이상 무관심할 수가 없습니다. 내 오빠인 피델과 라울은 조국을 바다에 둘러싸인 거대한 감옥으로 바꿔 버렸습니다"라고 말했다. 

 

카스트로의 딸 중 하나인 아리아나 페르난데스 역시 쿠바를 탈출했고 카스트로 정권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1993년 쿠바에서 탈출한 페르난데스는 아버지가 남길 유산으로 "파괴된 국가와 가혹한 경험을 한 망명자들"이라고 말했다. 여동생과 딸은 막상 오빠이자 아버지인 카스트로를 반대하는 반독재 운동에 나섰다. 그의 장례식 역시 참가하지 않을 거라는 보도가 나왔다,

 

국제 무대에서 카스트로는 존재감을 인정받은 만큼 경멸도 받았다. 630회 이상 암살 시도가 있었다는 건 존재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죽이려고 했다는 건 경멸의 증거였다. 적도 많았지만 지지자들의 열렬함도 풍족했다.

 

그런 적과 지지자들의 사이에서 카스트로가 빛을 발했던 시기는 역시 냉전 시대였다. '비동맹운동'의 지도자로 두 번이나 선출된 그는 혁명에 대한 열정을 강조하며 많은 개도국들의 지지를 받았다. 냉전 시대로 동서가 갈렸을 때 그 어느 블록에도 속하지 않거나, 혹은 이런 구도에 대항하려고 만들어진 비동맹 운동에서 수장으로 선출된 건데, 특히 반제국주의와 반식민지의 흐름 속에서 그의 말 한마디는 무게감 있게 다뤄졌다. 

 

그의 영향력은 21세기에도 계속됐다. 예를 들어 남미에 좌파벨트가 건설됐을 2006년, 쿠바에서는 100여개 개도국이 참가한 비동맹운동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때 차베스를 중심으로 '반미 개도국 담합론'이 강조됐는데, AFP는 이를 두고 "'카스트로의 축'의 입김이 거세다"고 표현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듯 슬프다"는 쿠바 수도 아바나와 달리 카스트로 사망 소식을 전한 신문을 들고 기뻐하는 쿠바 망명인들로 가득한 미국의 플로리다. 이 상반된 장면이 카스트로의 극과 극의 평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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