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탄핵 정국’ 호헌파-개헌파 갈린다
  • 김현 뉴스1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05 14:33
  • 호수 14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탄핵 데드라인’ 12월9일 이후 ‘개헌 정국’ 도래할지 주목

11월29일 “임기단축 등을 포함해 퇴진 문제를 국회에 맡기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담화를 계기로 정치권에 또다시 개헌론이 꿈틀대고 있다. 특히 “법 절차에 따라 물러나겠다”는 박 대통령의 언급은 자진 하야를 제외하고 박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할 수 있는 ‘법적 절차’가 개헌밖에 없다는 점에서 개헌론을 재점화시키는 도화선이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퇴진 담화 이후 탄핵이냐, 국회의 결정에 따른 조기퇴진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상황에서 ‘탄핵 데드라인’인 12월9일 이후 ‘개헌 정국’이 도래할지 주목된다.

 

다만, 정치권에선 개헌이 각 대권 주자 및 세력 간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민감한 이슈이니만큼 논의가 쉽게 진전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실제 차기 대권을 향한 경쟁구도가 뚜렷한 야권에선 대권 주자들이 “탄핵소추안 가결 전(前) 개헌은 시기상조”라는 데엔 대체로 한목소리를 내면서도 탄핵 정국 이후 전개될 개헌론을 놓고선 각자의 셈법에 따라 분명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현 시점에서의 개헌론은 이른바 제3지대론과 연계될 여지가 높아 대선구도 자체가 요동칠 수 있다는 점에서 각 주자 간 인식의 간극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개헌파로 분류되는 국민의당의 한 초선의원은 “‘포스트 탄핵 정국’에선 개헌파와 호헌파로 자연스럽게 나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초선의원의 말처럼 현재 대권 주자들의 개헌에 대한 태도만 보면 호헌파와 개헌파로 갈라지는 흐름이다. 대체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에 있는 주자들은 호헌파, 하위권에 있는 주자들은 개헌파에 가까운 경향이다.

 

문재인 前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이재명 성남시장 © 연합뉴스

문재인 “개헌 꿈 깨” 부정적 입장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야권 대권 주자들 가운데 현 시점의 개헌론에 대해 가장 부정적이다. 문 전 대표는 ‘탄핵 정국’에서 개헌론이 제기되자, 개헌 필요성은 인정하되 “탄핵을 추진하는 대열에 혼선을 주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 “헌법에 무슨 죄가 있느냐” “개헌 꿈 깨” 등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며 일축했다. 당내 친문(親문재인) 인사들은 개헌론자들을 향해 “불난 집에 군밤 구워먹겠다는 세력이다. 개헌 논의 꿈꾸는 세력은 다 물리쳐야 한다”(추미애 민주당 대표)고 날을 세우며 문 전 대표의 입장에 힘을 실어줬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11월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 전 대표가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선 분명히 인식하고 있지만, 지금의 탄핵 정국에서 나오는 개헌론은 순수하지 못한 정치적 의도들이 담겨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문 전 대표는) ‘다음 대선후보들이 공약으로 정부 초기에 개헌을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 안팎에선 개헌론에 소극적인 문 전 대표의 태도에 대해 현재 각종 대권 주자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만큼 대선구도가 흔들릴 돌발변수를 차단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적지 않다. 특히 개헌론이 정계개편의 고리로 작용, 새누리당 비박(非박근혜)·비주류와 야권의 비문(非문재인) 그룹이 합쳐지는 ‘제3지대’가 탄력을 받아 ‘문재인 대 반(反)문재인’ 구도가 형성되는 것은 문 전 대표로선 꺼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탄핵 정국에서 새누리당 비주류를 끌어들이기 위해선 ‘개헌 카드’를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하는데, 문 전 대표 측이 반대하니 막혀 있는 상황”이라며 “문 전 대표 주변 참모들은 개헌론이 자칫 제3지대를 두텁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것 같다”고 전했다.

 

탄핵 정국에서 지지율 급등세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도 현재의 개헌론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다. 거침없는 발언으로 눈길을 끌고 있는 이 시장도 개헌론이 제3지대론과 맞닿아 있다는 데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이 시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 기득권 카르텔을 강화하는 내각 개헌제를 매개로 정치기득권자들이 제3지대 창당을 시도 중”이라며 “야권 일부는 국민이 불 끄느라 정신없는 틈에 방화범과 손을 잡고 곳간을 차지할 생각에 여념이 없다”고 비판했다. 여기엔 현 시점에서 개헌론을 주도하고 있는 개헌파 대부분이 기득권에 가까운 인사들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읽힌다. 이 시장은 최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는 현재 나라를 이렇게 만든 기득권 집단들, 특히 여당이 상당부분 살아남아 권력을 분점하는 거다”며 “다음 정부로 넘기는 게 맞다”고 말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역시 개헌론에 신중한 입장이다. 안 전 대표는 탄핵 정국 속에서 개헌론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지금은 탄핵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선을 긋고 있다. 다만, 안 전 대표는 향후 대선 국면에서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 흐름이 강해질 경우 입장을 선회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안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안 전 대표는 개헌을 하게 되면 전폭적인 개헌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현 시기의 개헌에 대해선 신중한 것”이라며 “다만, 지금 국민들의 요구에는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게 가장 크기 때문에 개헌을 한 번에 다 하기보단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는 쪽으로 설득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손학규 前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왼쪽)과 김부겸 의원 © 연합뉴스

이재명 “다음 정부로 넘기는 게 맞다”

 

선두권 주자들과 달리 야권의 군소 주자들은 개헌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개헌을 통해 판을 흔들어야 자신들의 입지가 강화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도 배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가장 대표적인 개헌론자는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이다. 손 고문은 민주당 등 야권을 향해 새로운 총리 선임에 적극적으로 나서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고, 박 대통령 탄핵 후엔 주도적으로 개헌에 임해 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 고문은 현재 1등 주자인 문 전 대표가 개헌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데 대해 “야권의 패권을 쥔 정치세력은 개헌에 대해 정략이라 매도하고 있다. 탄핵이 중요한데 물을 흐린다고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탄핵 프로세스에 걸리는 기간에 개헌을 포함해 충분히 7공화국을 열 수 있다. 오히려 지금 이대로 가자는 자들이야말로 권력에 눈이 먼 정략집단”이라고 성토했다.

 

‘탄핵안 의결 후 개헌 논의’를 주장하고 있는 김부겸 민주당 의원도 개헌파로 분류된다. 김 의원은 문 전 대표를 겨냥해 “(개헌은) 특정인이 된다 만다고 할 문제는 아니다. 국민적인 요구가 있으면 그에 응해야 되는 것이 정치권의 임무”라며 “지금 현재 국민들의 요구는 대통령 한 사람의 거취 문제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호남 대권주자론’을 앞세워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천정배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도 같은 그룹이다.

 

다만, 광역단체장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현재 개헌에 있어선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현재 국면 속에서 (개헌에 대한) 합의가 될 수 있으면 최고로 좋다고 본다. 이런 기회에 헌법의 개정도 함께 이뤄지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게 과연 쉬울까 하는 생각이 한편으로도 있다. (개헌이 안 되면) 다음 정부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후보들이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개헌 비전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대선을 치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지사도 “개헌 논의가 현재 국면에 끼어들게 되면 질서 있는 정리보다는 더 많은 혼란만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도 “적어도 국민은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 개헌 문제는 향후에 모든 정치 지도자가 어떻게 좋은 헌법을 가질지에 대해 합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