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영덕 ‘삼성연수원 프로젝트’ 특혜 인허가 논란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12.07 14:57
  • 호수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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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개인 수목원 부지가 삼성연수원으로 바뀐 배경 주목 삼성·영덕군 “필요한 절차 모두 거쳤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4시간30분을 달리면 경상북도 영덕군의 고래불해수욕장이 나온다. 고려 말 이색 선생이 시를 읊다가 고래가 물을 뿜는 것을 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산길을 타고 다시 30분 정도를 달리자 ‘영덕 삼성연수원 프로젝트’ 공사 현장(아래 사진)이 나왔다.

 

전체 면적은 9만4290㎡로, 현재 연수동 2동과 숙박동 7동, 관리동 1동, 부대시설 1동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계열사인 삼성물산이 시공을 맡고 있다. 2015년 7월 첫 삽을 떴고, 내년 1월 완공 예정이다. 연수원 입구에서는 진입로 공사도 같이 진행되고 있었다. 2km 정도의 비포장도로를 따라 덤프트럭과 중장비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기존의 논과 밭, 숲이 있던 자리를 깎아 진입로를 만들었다”며 “진입로 땅 중에는 군(郡) 소유나 국가 소유 땅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이석

삼성 임원 출신이 매입, 李 회장에게 명의 넘겨

 

주목되는 사실은 삼성연수원 부지의 소유주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라는 점이다. 현재 개발 중인 9만4295㎡의 부지 중 시행사인 삼성전자 소유의 땅은 6000㎡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 90% 이상은 모두 이 회장 소유였다. 2014년 5월 이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한 번도 병원을 나온 적이 없는 점을 감안할 때 그룹 차원에서 연수원 건립을 추진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 땅이 이 회장 개인의 수목원 용도로 개발될 예정이었다는 점이다. 이 회장은 2004년 이곳 땅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일부는 삼성 계열사 임원 출신인 박아무개씨가 대신 매입해 주기도 했다. 박씨는 삼성자동차 개발팀장과 이사, 삼성생명 투자사업본부 신규사업팀 담당 임원 등을 지냈다. 영리 11××번지(2192㎡)와 11××-3번지(1617㎡) 등의 경우 박씨가 먼저 매입한 뒤, 이 회장에게 넘긴 것으로 등기부등본에 표시돼 있었다.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이 의심된다. 부동산 실명제법은 부동산 투기와 차명 거래를 막기 위해 1995년 도입된 정책이다. 관련법을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부동산가액의 30%를 과징금으로 물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삼성그룹 측은 “일부 땅을 매입하면서 박씨와 용역계약을 맺었다. 대부분은 이건희 회장이 직접 매입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모재단의 토지를 매입하기 위해서는 재단총회 등의 절차가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가 유출돼 알박기 등 투기세력이 개입할 수 있었다”며 “퇴직 후 부동산 관련 개인사업을 하는 박씨에게 해당 부지의 매입용역을 의뢰했다. 용역업체를 통해 토지를 선매입하는 것은 부동산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방법”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연수원 부지의 대부분은 이 회장이 마을 주민 권아무개씨 등에게 직접 매입한 것으로 표시돼 있다. 이 회장은 이 땅을 개인 수목원으로 꾸밀 예정이었다. 2004년 8월 경상북도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승인까지 받은 상태였다. 사업 예정부지는 7만300㎡이고, 총 사업비는 70억원 규모였다. 이 회장은 이곳에 침엽수원과 유실수원, 약용식물원, 분재실 등 수목원을 계절별로 특성 있게 꾸미겠다고 밝혔다. 종 보존을 위해 1000여 종이 넘는 식물유전자원을 심고, 수목원 길을 만들어 탐방객에게 공개하는 내용도 사업계획서에 포함돼 있었다.

 

❶ 삼성연수원은 모두 11개 동으로 현재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❷ 산림을 깎아 연수원으로 향하는 2km의 진입로를 조성 중이다. ❸ 삼성연수원은 국립칠보산 자연휴양림과 직선으로 300m도 안 되는 거리다. © 시사저널 이석

진입로, 영덕군이 부지 매입·시공 대행 논란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수목원 조성은 진척을 보이지 않았다. 수목원의 사업 만료일은 2007년 12월이다. 이 회장은 그해 1월까지도 공사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경상북도는 2007년 1월 조속한 사업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 회장은 빠르면 4월부터 수목원 사업공사를 시작한다고 회신했다. 그럼에도 연말까지 공사가 시작되지 않으면서 수목원 사업의 승인이 취소됐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땅이 어떻게 삼성연수원 부지로 바뀌게 됐는지에 우선 의문이 일고 있다.

 

이 회장은 수목원 조성 사업을 승인받은 이후에도 인근 땅을 추가로 매입했다. 현지에서 ‘범흥마을’로 불리는 자리였다. 지난해 7월에는 삼성전자가 인근 논과 밭 6085㎡를 매입하기도 했다. 한 풍수지리학자는 “이곳은 과거 신라시대 때 범흥사라는 절이 있던 곳”이라며 “이 회장이 이 땅을 매입하기 위해 지관(地官)과 헬기를 타고 직접 둘러봤을 정로도 명당 중의 명당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지역에서는 이 땅이 그룹 연수원이나 골프장, 또는 이건희 회장의 전용 별장, 심지어 가족 묘역으로 개발될 수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현지에서 만난 한 부동산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2013년 말 연수원을 짓겠다고 영덕군에 제안한 지 3년여가 흘렀지만 아직까지 소유권은 이 회장 명의로 되어 있다”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2km에 이르는 연수원 진입로 부지 매입과 공사를 영덕군이 대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삼성에서 진입로 공사를 위해 필요한 돈을 영덕군에 위탁했다. 이후 영덕군이 공사에 필요한 부지를 매입하고, 공사까지 대행했다”고 말했다. 특정 기업을 위해 영덕군이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덕군은 “특혜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영덕군의 한 관계자는 “지역사회의 발전 차원에서 삼성연수원을 유치했다”며 “완공되면 지역경제 활성화와 함께 고용 창출에도 상당한 도움을 받을 것으로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요한 절차 역시 모두 거쳤다”는 입장이다. 앞서 관계자는 “2014년 7월 경상북도와 영덕군, 삼성전자가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며 “이후 산림청과 경상북도, 영덕군의회 등과 협의해 연수원 건립에 필요한 절차를 모두 마친 상태”라고 설명했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 서초동 사옥으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립 칠보산 자연휴양림과 불과 300m 거리

 

삼성그룹 측도 “(이건희 회장이) 수목원 용도의 부지를 삼성전자에 기증해 연수원을 건립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연수원 조성 후 토지 소유권 역시 이전하려 했지만 (이 회장이) 와병 중이라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지 못했다”며 “삼성전자 소유 부지는 연수원의 주차장 및 진입로 용도로 추가 매입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삼성연수원 부지는 국립 칠보산 자연휴양림과 직선거리로 300m도 떨어지지 않았다. 연수원과 2km 정도의 진입로를 만들면서 상당 규모의 숲이 훼손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영덕군이 군의회에 제출한 ‘군관리계획(용도지역) 결정(변경)안에도 연수원 사업 부지의 70% 정도가 보전관리지역으로 표시돼 있다. 정부는 국토 이용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생산관리지역과 계획관리지역, 보전관리지역으로 나눠 관리하고 있다. 보전관리지역은 자연환경 보호와 수질오염 방지, 녹지공간 확보 등을 위해 관리가 필요한 지역을 지정한 곳이다. 경상북도와 영월군이 특정 기업을 위해 이곳의 용도를 변경해 줬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이 회장은 이 땅을 당초 수목원 용도로 매입했다. 경상북도 역시 2004년 개인 수목원 용도로 이 땅의 개발을 승인했다. 특정 기업의 연수원이 들어서도록 지자체가 조직적으로 뒤를 봐줬다는 점에서 향후 형평성 논란까지 예상되고 있다.

 

삼성그룹은 최근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12월초로 예정된 사장단 인사가 검찰수사로 연기될 수 있다는 얘기가 그룹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은 11월8일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과 장충기 사장의 집무실 등을 기습적으로 압수수색했다. 삼성이 지난해 최순실씨의 독일 회사인 비덱스포츠(옛 코레스포츠)에 280만 유로(한화 35억원 상당)를 송금한 이유를 밝히기 위함이었다.

 

검찰은 이 돈이 ‘보험용’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문제까지 불거졌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이사회를 열고 합병을 결정했다. 합병 비율은 ‘1(제일모직) 대 0.35(삼성물산)’였다. 당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합병 비율을 문제 삼았다. 결국 표 대결로 이어졌고, 주주들이 삼성의 손을 들어주면서 합병이 마무리됐다. 당시 삼성물산의 지분 11.21%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 게 결정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최순실씨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특위 첫날인 11월30일의 화두 역시 ‘삼성 합병’이었다. 특위에 참여했던 의원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국민연금 관계자가 이재용 부회장을 만난 이후 국민연금이 갑자기 합병을 찬성한 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이 외압의 배후로 거론되기도 했다. 검찰은 최근 삼성그룹 2인자 격인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의 42층 집무실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덕 삼성연수원 프로젝트의 인허가 의혹까지 불거져 향후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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