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석·모르쇠’ 증인들에게 농락당한 청문회
  • 유창선 정치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13 12:51
  • 호수 14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순실 없는 최순실 청문회…국민 조롱하는 증인 처벌

최순실 없는 최순실 청문회. 국정 농단 2차 청문회가 열리던 12월7일, 국민들은 이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시청하고 있어야 했다. 대통령이라도 된 듯이 행세해 나라를 혼돈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은 희대의 국정 농단극 주인공이 정작 자신은 청문회에 나타나지도 않는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어디 그뿐인가. 이날 청문회는 출석 대상 증인 27명 중 14명만이 출석한 채 ‘반쪽 청문회’로 진행되고 말았다. 최순실씨 이외에도 딸 정유라씨, 언니 최순득씨가 건강과 해외 체류 등의 이유로 출석을 거부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장모 김장자 회장,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등도 출석하지 않았고,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적 의혹과 지탄을 한 몸에 받던 핵심 증인들은 대부분 출석을 거부한 것이다.

 

물론 국정조사특위는 강력히 대응한다고 했다. 김성태 위원장은 “이들의 출석 거부에 대해서는 국회모욕죄를 적용하고 이와 별개로 증인들이 청문회장에 나오는 그 순간까지 출석을 요구하도록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특위는 청문회가 시작되자마자 불출석한 증인들에 대한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국회 경위들이 그 명령장을 들고 집행하러 증인들이 있는 곳으로 갔지만, 완강하게 버티는 증인들 앞에서 동행명령장은 무력하기만 했다. 구치소 안에 있는 최순실씨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최씨 조카 장시호씨만 동행명령에 응해 오후 청문회에 출석했을 뿐, 나머지 증인들은 동행명령장마저 거부한 것이다. 특조위원장이 청문회 시작 직후 수십 명의 경위들을 모아 동행명령장을 전달하며 신속하게 집행해 달라는 당부까지 한 세리머니가 무색해지는 상황이 돼 버렸다.

 

12월7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제2차 청문회’.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이 불출석해 자리가 비어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김기춘, 막무가내식 부인으로 일관

 

특히 우병우 전 수석과 장모 김장자 회장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출석을 회피하며 고발까지도 어렵게 만드는 교묘한 수를 썼다. 두 사람은 진작에 문을 걸어잠근 채 잠적해 출석요구서 수령 자체를 피했다. 출석요구서를 수령하지 않으면 청문회 출석 의무가 없고 법적 처벌도 받지 않는 점을 노린 것이다. 지방에서 우 전 수석을 봤다는 제보가 언론사에 전해지기도 했다. 청문회 당일 국회 직원들이 동행명령 집행을 위해 김 회장의 자택을 찾아가고, 다시 제보받은 곳들을 찾아 나섰지만 결국 허탕을 치고 말았다. 우 전 수석의 자택에는 국회 직원들이 부착하고 간 출석요구서와 유치송달 안내문이 전달되지 않은 채 그날까지도 붙어 있었다고 한다. 청문회는 이미 시작돼 시간은 가고 있는데 그날이 돼서야 증인을 찾아 헤매는 전근대적인 방식에 우리 청문회는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청와대의 최고 실세로 불리던 사람이 이렇게 도피행각을 벌이는 모습 자체가 기가 막히지만, 충분히 예상됐던 상황임에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청문회의 한계 또한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그나마 출석한 증인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기도 하고, 심지어 위증 논란까지 빚곤 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 장시호씨 등이 모두 위증을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김 전 실장은 하루 종일 최순실을 모른다고 증언하다가 의원들이 정황증거를 들이대자 그때 가서야 “착각했다”고 말을 번복하며 청문회를 조롱했다. 김 전 실장은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기록돼 있던 수많은 내용들에 대해서도 자신이 지시한 것이 아니라며 막무가내식 부인으로 일관하는 태도를 보였다.

 

김영한 비망록에 비서실장 지시로 담겨 있는 수많은 내용이 김 전 실장이 한 얘기가 아니었다면, 고인은 청와대 회의 시간에 소설이나 쓰고 있던 사람이 되는 셈인데도, 김 전 실장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런 답변을 반복했다. 김종 전 차관도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원 모집 과정에서 김재열 사장을 만났는지 여부 등 여러 가지 거짓말 의혹을 자초해 위증 논란이 계속됐다. 생중계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분노했고 청문회장의 의원들은 “당신은 죽어서도 천당에 못 간다”는 호통까지 쳤지만, 반성할 줄 모르는 증인들의 벽을 뚫고 들어가지는 못하고 말았다. 결국 이들에게 선의를 호소할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밝혀내지는 못할망정, 거꾸로 국민의 스트레스만 더 쌓이게 만드는 이런 청문회를 무엇하러 하느냐는 원성이 자자했던 건 당연한 일이다. 증인들의 참회와 고해성사만 기다리고 있었지, 제도의 허점이 너무도 많았다. 유명무실한 청문회가 계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청문회와 국민을 조롱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은 증인, 보고 또는 서류 제출 요구를 거절한 자, 선서 또는 증언이나 감정을 거부한 증인이나 감정인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증인이 동행명령을 거부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동행명령장 집행을 방해하도록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우병우 전 수석처럼 출석요구서나 동행명령장을 직접 수령하지 않았으면 처벌 자체가 어렵다. 그러니 청문회장에 나가서 국민들이 보는 가운데 망신을 당하느니 벌금을 내거나 가벼운 처벌을 받고 말겠다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무거운 처벌을 받을 것이 예상되는 증인에게 그 정도의 처벌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 사진공동취재단

강도 높은 대책 국회가 강구해야

 

이제는 청문회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이번 청문회를 겪으면서 이미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여러 제도 개선안이 나오고 있다. 불출석 증인에 대한 처벌이 대개 벌금형으로 그치고 있는 점을 바로잡기 위해 벌금형은 없애고 징역형만 남겨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 국회가 불출석자에 대해 직접 처분을 결정해 집행을 명하는 방안, 국정조사에 한해 국정조사 특위 의결을 거쳐 법원이 ‘구인영장’을 발부하면 검사 지휘로 강제구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증인이 출석요구서 수령을 피하면 관보 등으로 출석 요구 의사를 전달해 출석 거부를 원천적으로 막도록 하는 방안, 증인이 불출석하면 나올 때까지 청문회를 추가로 잡는 방법 등 여러 제안들이 이어지고 있다.

 

만시지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제라도 서둘러 법을 고칠 필요가 있다. 온 국민이 분노한 국정 농단 사건의 청문회를 추진하면서 이렇게 핵심 증인들이 대거 불출석할 것을 예상하고 대비하지 못한 것은 국회가 큰 허점을 드러낸 것이었다. 앞으로 3차·4차 청문회가 계속 이어진다. 국정 농단뿐 아니라 ‘세월호 7시간’ 의혹의 열쇠를 쥐고 있는 증인들이 대거 채택됐다. 그들이 또다시 진실 찾기를 거부하는 꼴을 봐야 하는 것인지. 더 강도 높은 대책들을 국회가 강구하기를 주문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