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내쫓더라도 원칙은 지켜야
  • 김현일 대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13 14:04
  • 호수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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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최순실 때문에 동창 모임에 안 나간다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듣기 좋은 유행가 가락도 한두 차례라는데, 열 받치는 얘기가 매번 거듭되니까 지겹다는 겁니다. 게다가 독신 여성 대통령이라서 핑크색 사연까지 곁들여지면 낯 뜨거워진다는 탄식입니다. 물론 이런저런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과거 다른 대통령들은 훨씬 더 해먹었다’ ‘좌익의 선동 놀음’ 어쩌니 하며 거품을 무는 측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일각의 해프닝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청와대에 머무르며 녹봉을 받으니 대통령이긴 합니다만 우리가 알던 대통령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다수 국민으로부터 최소한의 존중은커녕 조롱이나 받았으니 대통령 타이틀은 허물에 불과했습니다. 대통령의 지역 기반인 대구 각계 인사 1386명이 ‘못난 대통령 뽑아 죄송하다’는 반성문을 쓰는 마당이니 다른 말이 필요 없을 겁니다. 사족(蛇足)으로, 저는 반성문의 ‘못난’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못된’이 적확합니다. 그저 ‘소양이나 지식이 부족하다’는 ‘못난’보다는, ‘언행이 고약하다’는 ‘못된’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강남 아낙네와 동급(同級)이라는 증언까지 나온 판이니 입이 열 개라도 변명 여지가 없을 겁니다. 몸단장에나 열심인, 최순실의 꼭두각시였다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대통령 측근들마저 손가락질을 하고, 대통령이 총애하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목숨 부지를 위해 도망 다니기 바쁩니다. 최순실 농단이 극성이던 시절 청와대 참모장으로서 국정 전반을 주물렀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비굴한 발버둥은 차라리 희대의 소극(笑劇)입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12월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300명 중 299명이 참여해 찬성 234표, 반대 56표, 무효 7표, 기권 2표로 가결됐다. © 시사저널 박은숙


12월9일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습니다. 아직 헌법재판소(憲裁)의 최종 결정이 남아 있어 권한 중지 상태라지만 최종 수순인 파면(罷免)은 시간문제일 겁니다. 憲裁에서 법리(法理) 다툼을 해 본들 소용이 없을 테니까요. 여당 의원 60명 이상이 탄핵에 가세한 게 단순히 대통령과 노선 차이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성난 민심 결과라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될 대목일 겁니다. 재판관 한두 명만 틀어도 결과가 달라지기에 변수가 없진 않으나 시민혁명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현 단계에서 주시할 부분은 야당의 자세입니다. 탄핵소추를 했으면 후속 절차를 밟는 게 당연합니다. 국회가 압도적으로 탄핵을 의결했으니 당장 퇴진하라든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황교안 총리더러 나가라는 것은 아주 잘못입니다. 탄핵소추를 받았더라도 자의로 물러나선 안 되게 돼 있고, 총리는 엄연한 대행권자입니다. 탄핵받은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는 자격이 없다는 식의 논리는 反헌법적 발상입니다. 대통령 탄핵이 ‘내각 총불신임’ 의미를 담고 있다는 주장은 얼핏 그럴싸하지만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차기 대선 일정 등에 대한 여야 간 정치적 합의를 통해 대통령 퇴임 수순을 밟는 것은 몰라도 제 유리하자고 헌법 조항까지 짓뭉개는 행위 역시 ‘탄핵’받을 짓입니다. 촛불 정신을 외치면서 실은 그 근본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편협·단견입니다. 지금 야당이 누리는 기세등등이 자신들이 결코 잘해서 얻은 게 아닌 무임승차이며, 무능·무책임에 더해진 박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의 반사이익일 뿐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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