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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AI 1년 뒤, 만약 계란이 사라진다면?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18(Sun) 12: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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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뭘 먹으란 말야?”

 

짜증이 절로 터져 나온다. 엄마 잔소리를 피해 마음 맞는 친구와 스타트업을 해보겠다고 원룸살이를 시작한지 1년 된 혼밥족 삼식씨. 삼시 세 끼를 잘 먹어야 머리도 잘 돌아가고 건강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모진 마음을 먹고 아침밥은 꼭 스스로 장만해 챙겨먹는 편이다. 전자레인지 밥 맛이 없다며 레토르트 백반을 가스불로 냄비에 데워 먹고, 엄마표 김치에 계란 한두 개는 꼭 프라이로 만들어 먹고 있었다.

 

작년 말, 그러니까 2016년 11월 말 경부터 시작해서 전국의 양계 농가를 휩쓴 AI 때문에 불쌍한 닭들이 무수히 살처분 되고, 그 여파로 닭고기는 물론 계란 품귀 현상이 생긴 지 한참 됐다. 어쩌다 슈퍼에 나오는 계란 한 줄 값이 쇠고기 한 근 값보다 더 비싸졌을 뿐 아니라 삼식씨 같은 늦잠족은 아예 구경도 못한다. 부지런한 대한민국 아줌마들, 슈퍼가 열리기 무섭게 몇 줄 안 나오는 계란을 싹쓸이해가기 때문이다.

 

© pixabay·시사저널 편집


처음에는 김치와 밥만 먹어도 버틸 수 있다고 야무지게 채식식단을 몰고 가던 삼식씨. 곧 사흘에 한 번 삼겹살을 구워먹는 걸로 노선을 바꿨다. 그나마 질려버려 눈물 머금고 가끔 쇠고기 중 값싼 부위를 사서 구워먹기도 해보지만, 돈도 아깝고 양념 안 된 고기 맛을 더 이상 참지 못할 지경이 됐다.

 

친구 오참이가 추천하는, 콩을 원료로 계란맛이 나게 가공한 정체불명의 레토르트 식품은 처음 먹은 날부터 두드러기가 생겨 엄청 고생했다. 그런 계란 대용식은 최근 들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수입도 되지만, 첫 경험에 호된 기억이 있어 사먹어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삼식씨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옥상에서 스트레칭하고, 냉장고를 열어 아침 준비를 하다가 폭발했다.

 

소비자의 고충도 고충이지만, 닭고기와 계란을 주원료로 하던 식품업체는 사업의 사활이 달린 결단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치맥 열풍 덕에, 그리고 기름을 일반 식용유 대신 올리브유를 쓴다는 특성 덕분에, 치킨 장사로 꽤 재미를 보던 김계육씨. 다량의 계란과 양질의 밀가루로 고급 카스테라를 만들어 인터넷 주문으로 전국에 택배 발송하던 박제과씨. 계란말이와 닭계장을 전문 메뉴로 식당을 내어 사무실이 밀집되어 있는 도심에서 성업하던 한밥집씨 등…

 

닭고기와 계란을 주원료로 한 제품을 공급하던 크고 작은 식품업체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언제 AI로 인한 소동이 가라앉고 소비가 부활할지 추정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생산이 불가능해졌는데 작업라인을 돌리느라 드는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AI만 지나가면 오히려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 뻔한데, 지금 여기서 라인을 접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전망이 불확실한 계란 대용품을 조심스럽게 시도해보는 업체들도 있지만, 중소자본 업체 중에는 두 손 들고 나가버리는 경우가 자꾸 늘고 있다.

 

좀 더 자본에 여유가 있는 업체들은 장기적인 판단을 해보려고 한다. 집단 사육이라는 환경이 기본적으로 면역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고질적으로 발생할 수 있으며, 실제로 양계장에서 AI를 비롯한 신종 전염병 유병률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는 건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이런 환경 변화 속에서는 투자를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하나? 계란 대용식품 개발? 아니면 아예 닭고기나 계란 없이도 단백질, 칼슘, 철분을 손쉽고 풍부하게, 그리고 맛있게 섭취할 수 있는 메뉴 개발? 전문가 의견도 들어보고 외국 사례도 수집하느라 더 분주해진다.

 

영양학계에서는 이 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연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닭고기와 계란의 영양가를 분석해서 이와 비슷한 영양가와 미각 효과를 제공할 수 있는 식단 개발 사례, 콩을 원료로 한 닭고기 및 계란 대용식품의 영양 및 미각 효과 분석 등 소비 분야에 중점을 둔 연구들이 주인공이다. 대규모 양계장에서 전염병을 예방하고 닭의 면역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배합사료를 개발하는 문제, 양계장 환경 개선을 통해 집단 감염을 방지할 수 있는 대안적 소독 및 방제 방법 등 공급 분야에 중점을 둔 연구도 많다.

 

하지만 공급 분야에서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양계농가. 무더기 살처분과 엄청난 소독약 살포 외에는 별로 해주는 게 없는 정부에 분통이 터진 농민들은 빈 닭장을 트럭에 싣고 상경해서 서울 광장과 여의도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번 정권의 비리 측근들이 취했던 부당 이익을 몰수해서, 양계농 지원 펀드를 마련하자는 피켓이 눈에 띤다.

 

미디어에서는 이런 연구와 연계해 계란과 계육 없이도 맛있고 균형 잡힌 영양을 취할 수 있게 해주는 요리교실이 여러 가지 형태로 제공된다. 앞서 나온 삼식씨 같이 답답한 혼밥족이 쉽게 할 수 있는 단백질 풍부한 아침 식사, 치킨 아니어도 맥주와 어울리는 간단한 안주 만들기 등등 말이다.

 

이 모든 걸 다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온 가족이 계란이나 닭고기 없으면 밥을 먹지 않으려 하는 계란·계육 애호가 집안의 주부 계사랑씨. 슈퍼가 열리기도 전에 뛰어가 줄을 서고 개점과 동시에 잽싸게 뛰어 들어가 달걀을 한 팩 집어오며, 그 비싼 값에 또 어디서 돈을 줄여야 하나 따져보며 집으로 돌아온다.

 

전처럼 계란 한 줄 다 풀어서 계란말이하는 건 이제 꿈도 못 꿀 일이다. 다시국물을 맛있게 내서 큰 스텐 용기에 담고 계란을 두 개 넣고 잘 풀어서 중탕한 계란찜을 저녁 밥상에 올릴 예정이다. 닭고기 못 먹은 지 오래 되어 아이들이 통닭 노래를 부른다. ‘이 달 말 둘째 생일에는 작은 거라도 오븐에 구워 깜짝 선물해야지’라고 머릿속 셈을 하던 계 주부의 공상이 어느새 곁가지를 친다.

 

‘아아, 정말 아이들 다 대학 마치고, 아이 아빠 은퇴하면 교외에 아주 작은 땅이라도 딸린 집을 하나 구하고 싶다. 텃밭도 가꾸고, 닭도 꼭 키워야지. 어릴 때 학교 뒤뜰 닭장에서 해봤던 것처럼 잡곡하고 채소를 줘서 닭을 건강하고 예쁘게 키워야지. 그렇게 정성으로 키우면 잡아먹을 때 잡아먹더라도, 저 불쌍한 닭들처럼 무더기로 살처분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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