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특수요? 대리 부르는 사람이 보이지 않네요”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12.19 11:36
  • 호수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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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 기사 24시 동행취재…새벽 찬바람 맞으며 번 돈 7만원

새벽을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고된 하루를 달래기 위해 한두 잔 걸친 뒤 집으로 안전하게 가기 위해 필요한 이들이다. 바로 대리운전 기사(대리기사)다. 누군가는 대리운전을 더 나은 인생을 향해 달리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부업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인생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생명줄을 부여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최후의 보루라 여긴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건 저마다의 사정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쉴 시간에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흔히 대리기사에게 연말은 ‘성수기’라고 한다. 연말에 삼삼오오 모여 송년 모임을 갖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대리운전을 원하는 고객이 늘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리기사들은 “예년 같지 않다”고 말한다. 어수선한 정국을 탓하는 이도 있었고, 김영란법 때문이라는 이도 있었다. 원인 분석은 제각각이었지만 겨울나기에 대한 걱정은 한결같았다. 날이 추워져 늦게까지 술 마시는 사람이 적어지고, 자연스레 일거리가 줄어들 것이란 걱정이다. 대리운전 시장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대리기사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 또한 희소식은 아니다. 이들이 겪는 2016년 마지막 달을 함께 보내고자 동행 취재에 나섰다.

 

흔히 대리기사에게 연말은 ‘성수기’라고 한다. 하지만 대리기사들은 올해 연말 분위기에 대해 “예년 같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 시사저널 임준선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들

 

대리기사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을까. 여러 차례 접촉을 가진 대리기사들은 취재를 꺼렸다. 고달픈 일상을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알리기 싫었을 것 같다. 어렵사리 2년 차 대리기사 정아무개씨(남·36)와 연락이 닿았다.

 

12월12일 저녁 6시, 서울 강남구 삼성중앙역 인근의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두터운 외투에 목도리, 장갑으로 중무장한 정씨는 기자와의 약속 때문에 다른 날보다 한 시간가량 일찍 나왔다고 했다.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20대 초반부터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어느덧 30대 중반에 이르렀다. 음식점 배달부터 공사장 일용직까지 온갖 종류의 일을 다 해 봤다고 한다. 2014년까지 택배기사로 일하다가 관두고 대리기사의 길을 택했다.

 

옛이야기가 무르익어갈 무렵인 저녁 7시10분쯤 그의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오늘 운이 좋나 봐요. 일찌감치 첫 콜이 잡혔네요.” 그는 대화를 멈추고 옷을 동여맨 뒤 인근에 있는 음식점으로 이동했다. 40대 초반의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성으로부터 자동차 열쇠를 건네받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까지 가는 경로였다.

 

퇴계원에 도착해 첫 손님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그는 인근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그는 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보통 남양주 쪽은 (대리기사들이) 잘 안 오려고 하죠. 여기서 다른 콜을 받기가 어려워서 ‘오지’라고 불러요. 시간이 이르니까 버스 타고 다시 들어올 생각으로 잡았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서울시 은평구·강동구, 경기도 남양주·용인, 인천광역시 등이 대표적인 기피 지역이라고 한다. 다시 콜을 받기 어렵거나 서울로 돌아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청량리행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대화도 잠깐뿐이었다. 그는 쉴 새 없이 휴대전화를 보며 콜을 찾고 있었다. 좋은 콜이 몇 번 있었지만 다른 대리기사들이 먼저 배차를 받자 아쉬워했다. 저녁 9시쯤 돼서야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그는 청량리 역사 안으로 들어가 계속 휴대전화를 응시했다. 15분가량을 머무르다가 다시 손님을 맞이하러 걸음을 옮겼다.

 

“오늘 운이 별로 없나봅니다. 또 ‘똥콜’이네요. 중랑구로 다시 가야겠어요.” 1만5000원에 중랑구 면목동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거리는 멀지 않지만 역시나 다른 콜을 받기 힘든 지역이라고 했다. 면목동 손님이 떠난 뒤 그는 유흥가가 밀집한 장안동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다행히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콜이 잡혔다. 동작구 상도동으로 가는 길이었다. 처음으로 무난한 콜을 받았다고 기뻐했다.

 

문제는 상도동에 도착했을 때 일어났다. 10시 반쯤 상도역 인근의 은행 ATM실에서 10여 분을 머물렀지만 괜찮은 콜을 찾지 못했다. 참다못한 그는 버스를 타고 서울대입구역으로 이동했지만 역시나 허탕이었다. 그곳에서 지하철을 타고 사당역으로 가서야 겨우 배차를 받았다. 노원구 월계동까지 2만5000원짜리 콜이었다.

 

월계동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지하철도 버스도 끊긴 시간이었다. 정씨는 내내 휴대전화를 들여다봤지만 그를 찾는 손님은 없었다. 다행히 인근에 심야버스가 있었다. 약 10여 분을 걸어 심야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버스가 15분 뒤에 도착한다고 했다. 추위와 적막함만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심야버스를 타고 동대문으로 이동한 뒤 1시간가량 기다렸다가 또다시 중랑구 묵동으로 향하는 손님을 배웅했다. 그리곤 새벽 3시가 다 돼서야 인근 PC방에서 첫차가 다닐 때까지 시간을 때웠다.

 

“아무리 월요일이라고 해도 오늘 일진이 사납나 봐요. 연말은커녕 평소 수준도 못했어요.” 이날 하루 그가 번 수입은 9만2000원, 대리점 수수료와 버스비 등을 제외하면 순수입은 7만원가량이 전부였다.

 

12월15일 서울시 서초구 사평대로에 위치한 휴(休)서울이동노동자쉼터에서 대리기사들이 콜을 기다리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대리기사가 전하는 ‘대리운전 세계’

 

정씨가 말해 준 대리운전의 세계는 이렇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앱을 통해 손님과 연결된다. 각종 전단지를 보고 손님이 요청하면 접수회사에서 ‘시스템회사(플사)’로 연결했다가 대리운전 기사들에게 전달하는 구조다. 작은 접수회사들의 연합 시스템인 ‘로지’나 ‘카카오대리’ 등을 이용한다. 대리운전을 부른 손님의 가까운 곳에 있는 대리기사부터 콜이 가고, 수락·거절 버튼을 누르게 된다. 일정 시간 동안 누르지 않으면 순차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넘어간다. 자칫 배차를 받았다가 일방적으로 취소하면 30분간 콜을 못 받게 된다. 손님과 만나 운행 버튼을 누르고 목적지에서 종료 버튼을 눌러 카드로 정산한다. 다음 날 수수료를 뗀 비용이 계좌로 입금된다.

 

때문에 대리기사들은 밤마다 휴대전화를 쉴 새 없이 바라본다. 불과 2초 사이에 콜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 콜은 다른 대리기사 몫이 된다. 하루 종일 화면을 켜놓고 있는 탓에 보조배터리를 한두 개씩 챙기는 것은 대리기사의 기본이다.

 

하루에 10만원 이상 수입을 올렸다고 해도 안심은 금물이다. 앱 이용을 위한 비용과 보험료, 수수료, 이동 비용, 식사 비용 등을 제외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카오 대리운전이 출시되면서 프로그램 비용을 없애고 수수료율을 낮추긴 했지만, 손님이 많지 않아 대부분의 대리기사들이 로지 같은 프로그램을 함께 사용한다. 일부 로지 업체에선 카카오 대리운전을 견제하기 위해 앱을 동시에 설치할 경우 구동이 안 되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

 

손님을 내려준 뒤 대리기사들은 어디로 갈까. 자정 이전까진 버스를 타고 유흥가 쪽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버스가 끊긴 시간부턴 걷고 또 걷는다. 지도를 켜고 손님이 많을 법한 곳을 향한다. 노하우가 많은 대리기사들은 도착지의 수요를 대충 파악하고 콜을 받는다고 한다. ‘오지’에 떨어졌을 경우 3~4km를 걸어서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교외 지역에서 서울로 복귀할 때 대리기사 전용 셔틀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요금은 기사 한 사람당 3000원에서 5000원 사이다.

 

주말을 제외하곤 새벽 2~3시 정도에는 콜이 급격히 줄어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으로 복귀했을 시간이다. 이때 집으로 복귀하거나 첫차를 기다리며 ‘시간과의 전쟁’을 벌인다. 해장국집에서 소주 한잔을 걸치기도 하고, PC방에 들러 시간을 때우기도 한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으면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콜을 기다리며 휴대전화를 계속 보고 있는 사람도 있다.

 

대리기사가 접하는 이야기는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다. 택시에서 이뤄지는 이성적이면서도 냉철한 토론과는 거리가 멀다. 술김에 내뱉는 문자들은 직설적이면서도 자조적(自嘲的)이다. 대리기사는 하소연의 상대이자 화풀이 대상이기도 하다. 때문에 목적지를 향하는 도중 대리기사가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드물다. 각양각색의 술버릇을 지닌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어느새 ‘성인(聖人)’이 된다는 말까지 나온다.

 

대리운전 기사들이 9월2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노동기본권 보장’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연합뉴스

“술 취한 손님 상대하다 聖人 된다”

 

정씨에 따르면, 대리기사에게 행패를 부리는 ‘진상 손님’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일단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서 만취한 손님은 흔치 않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만취를 했다 해도 차에 타면 목적지를 말하고 자는 손님이 다수다.

 

대리기사와 손님, 둘 중 누군가 입을 열면 세상 이야기가 시작된다. 정씨가 상도동까지 태워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도 마찬가지였다. 이 손님은 “회사 부장님의 성화로 저녁 약속까지 깨고 술시중을 들었다”며 “왜 자기가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다른 사람들까지 붙잡아 놓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집까지 가는 30분 동안 회사에서의 고달픔과 상사에 대한 불만 등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 정씨는 적당히 수식어를 붙여가며 맞장구를 쳤다.

 

술 한잔 걸친 손님들은 주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단연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이 최대 화두다. 누군가는 “믿었던 박근혜가 그럴지 몰랐다”며 배신감을 토로했고, 누군가는 “정유라한테 어떻게 그런 특혜를 줄 수 있느냐”고 분노했다. 정씨는 “아직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손님은 만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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