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판도라의 상자 열리나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12.2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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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문화계 블랙리스트 실체 정조준…김기춘 전 비서실장∙조윤선 장관 주거지 등 압수수색

특검이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했다. 특검은 12월26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주거지와 문체부 등 10여 곳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특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일부를 확보, 현재 내용을 분석 중이라고 12월27일 밝혔다. 특검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 재직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의혹이 제기된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을 오늘 소환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은 10월 현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들의 이름이 적힌 문서가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관가에서는 정부 관련 인선이나 각종 지원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작성됐다는 의혹이 나왔지만, 관련자들의 부인으로 소문만 무성했다. 블랙리스트 실체가 드러남에 따라 특검 수사도 빠르게 진척될 것으로 보인다. 

 

블랙리스트는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실이 작성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관리했다. 작성 시기는 2014년 5월부터 2015년 1월 사이로 알려졌다. 2014년 7월 면직된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블랙리스트의 배후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지목하며 “퇴임 직전 블랙리스트를 직접 봤다”고 말했다. 특검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었던 조윤선 장관과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이었던 정관주 전 문체부1차관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지시를 내려 보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조윤선 문체부장관(왼쪽)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 시사저널 박은숙·사진공동취재단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인사만 9473명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해당 리스트에는 정부에 비판적인 진보 성향의 문화예술인들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명단에 오른 사람들의 수는 9473명에 이른다. ‘2014년 6월2일 문학인 세월호 시국선언 754명 명단’, ‘2015년 5월1일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서명 문화인 594명’ 등 세월호에 대해 현 정부 생각을 달리하는 이들의 이름이 나열됐다. 

 

이미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고 알려진 송강호나 김혜수 외에도 윤진서, 박해일, 문소리, 명계남, 한영애, 문성근 등 배우들의 이름이 리스트에 올랐다. 영화 ‘내부자들’의 원작자인 만화가 윤태호를 비롯해 주호민, 이충호, 강풀 등의 이름도 기재됐다. 이밖에도 ‘촛불의 노래를 들어라’의 공동 저자인 함성호 시인, ‘눈물은 왜 짠가’를 펴낸 함민보 시인, 시사만화가 이동수씨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야당 정치인들을 지지한 인물의 이름도 기재됐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한 문화예술인 4110명과 2014년 6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지선언을 한 문화예술인 909명도 리스트에 올랐다. SBS의 12월26일 보도에 따르면 교수나 시인, 안무가 등 예술계 인사 48명과 영화계 인사 91명 등의 이름이 올라있는데, 이들의 명단 옆에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유가 자세히 명시돼 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블랙리스트 게재 이유는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등 야당 정치인의 지지하는 선언을 했거나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는 것이었다. 이들과 함께 활동하거나, 노동자 시위를 지지하는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경우도 대상이 됐다. 

 

서울대, 연세대 교수 등 용산 참사 해결이나 이명박 정부 규탄과 관련한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들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언론사의 성향도 블랙리스트를 통해 분류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한국일보 등 언론사 7곳이 ‘좌파 성향 언론사’로 기재됐다. 

 

특검은 현재 특검이 확보한 명단의 입수경위나 분량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집무실에 블랙리스트 원본이 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서도 “앞으로 조사해서 확인할 문제”라고 즉답을 피했다. 다만 특검 측은 “(블랙리스트) 일부 명단은 확보한 상태”라며 “명단을 추후 수사과정 통해 확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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