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소녀상’을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한 부산 동구청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12.3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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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법 근거로 소녀상 철거 한 뒤, 비난 이어지자 허겁지겁 반환 “설치 막지 않겠다”

‘한∙일 위안부 합의’ 1주년인 12월28일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됐다.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추진위)’가 수요집회를 마치고 설치한 소녀상이었다. 그러나 소녀상은 4시간 만에 구청 직원들에 의해 철거됐다. 철거를 막는 시민과 대학생 13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했다가 석방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시민들은 부산 동구청에 전화를 걸어 “소녀상 건립을 왜 허용하지 않느냐”는 등의 항의를 쏟아냈고, 동구청 홈페이지에도 소녀상 철거와 관련한 민원이 폭주했다. ‘일본 관광객을 위한 것이냐’,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지 말라’는 내용의 글도 게재됐다. 

 

시민단체 대표들은 12월29일 동구청을 방문해 소녀상을 돌려받기 위한 반환 절차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전국 시민단체 연합인 ‘평화의 소녀상 전국연대’는 “부산 동구청의 소녀상 철거는 일본 정부의 손발이 되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고 부산 동구청을 규탄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표창원 민주당 의원 등 야당 정치인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문 전 대표는 자신의 SNS에 “부산 시민들의 소녀상 설치는 진정한 독립선언”이라며 “부산 동구청과 그 배후 세력은 설치를 두려워한다. 청산되지 못한 친일 행위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12월28일 오후 부산 동구청 직원들이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한 추진위 회원이 소녀상을 부둥켜 안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 총영사 “일본에 대한 배려 소홀히 하는 행위”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은 왜 철거당한 것일까. 부산 동구청은 29일 “도로법에 따라 불법 시설물로 보고 철거에 나선 것”이라며 “절차상 하자 없는 정당한 권한 행사”라고 밝혔다. 부산 동구청은 도로법을 철거 이유로 들었지만, 철거한 소녀상이 어디에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도로법 시행령에 따르면 노상 적치물 소유자 등이 쉽게 보관 장소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유자가 과태료를 내면 적치물을 돌려주게 돼 있다. 그러나 동구청은 보관 장소 고지를 하지 않았고, 과태료 부과도 하지 않았다. 법적 근거 없이 소녀상을 돌려주지 않은 것이다. 

 

또 앞서 부산 일본영사관 모리모토 야스히로 총영사가 박삼석 동구청장에게 한통의 서한문을 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일부 시민단체가 우리 총영사관 앞 인도에 소녀상을 설치하려고 활동 중이다. 올해 12월28일 설치를 목표로 진행 중’이라며 ‘구청장이 강한 리더십으로 대응해주고 있지만 일본정부로서는 영사관 앞의 동상 설치가 일본에 대한 배려를 매우 소홀히 하는 행위로 받아들인다’는 내용이었다. 또 영사관 주변에 소녀상이 설치될 경우 일본 국민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며, 일본인의 한국 방문객 수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내용도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2월 30일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재설치됐다. 동구청은 철거한 지 이틀 만에 소녀상을 반환했다. ⓒ 연합뉴스

박삼석 동구청장 “철거는 구청장 아닌 담당부서 권한”

 

홈페이지가 다운 돼 업무가 마비되는 등 비난 여론이 계속되자 동구청은 자체 회의를 거쳐 소녀상 반환을 결정했다. 12월30일 오전 동구청 측은 추진위 측에 소녀상을 돌려줬다. 박삼석 동구청장은 “압수에 대해 많은 시민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 문제는 자치단체가 감당하기 힘들다. 시민단체가 일본 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치한다면 막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구청의 ‘오락가락 행정’과 함께 구청장의 책임 회피도 비난을 받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반환을 요청한 12월29일 박 구청장은 휴가를 내고 서울에서 열린 새누리당 전국위원회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구청장은 기자회견에서 “(소녀상) 철거의 권한은 구청장이 아니라 담당 부서에 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강제 철거된 소녀상이 부산 동구 충장로 고가도로 아래 동구 야적장에 방치돼 있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보고받은 바가 없다”고 밝혔다. 박 구청장은 “나는 소녀상 설치에 반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가 시민단체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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