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들 "우리는 한국 정부와 싸워야 했다"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7.01.05 17:16
  • 호수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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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합의 1년…일본 입장 대변하는 한국 정부

한국과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한 지 1년이 되던 2016년 12월28일 낮 12시40분쯤. 부산시 동구 초량동 주한 일본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기습 설치됐다. 20대 대학생을 중심으로 구성된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는 모금을 통해 소녀상을 제작했다. 소녀상은 일본영사관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뜨고 섰다. 하지만 오후 4시쯤 부산 동구청 직원 30여 명이 소녀상을 에워싼 시민 40여 명을 한 명씩 떼어내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소녀상을 지켜내자” “일본경찰 물러가라”며 격렬히 저항했다. 결국 4시간 만에 소녀상은 강제로 철거됐다. 동구청 직원들은 소녀상을 차량에 싣고 가버렸다. 이후 시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자 부산 동구청은 이틀 만에 소녀상 설치를 허용하기로 했다.

 

부산에서 소녀상이 수모를 겪던 시각,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선 2016년 마지막 수요집회가 열렸다.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모이다 보니 어느덧 1263번째 집회를 맞았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와 소녀상 지킴이 등 시민 2000여 명(주최 측 추산)은 집회 이후 인근 외교부 청사 앞에 몰려갔다. 이들은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과 똑같은 모양의 대형 풍선 소녀상(높이 5m)을 들고 갔다. 늘 수요집회에 참석해 온 김복동 할머니(1926년생)는 “일본이 진실로 사죄하고 배상할 때까지 함께 싸우자”며 시민들을 독려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2016년 12월28일 1263차 수요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망각 바라는 일본 “잃은 것은 10억 엔뿐”

 

2016년을 나흘 앞둔 2015년 12월28일, 한국의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협상이 1년8개월 만에 타결됐음을 알렸다. 정부는 ‘아베 총리의 사죄 표명’과 ‘일본 정부 예산으로 피해자 지원’ 등 전례 없는 합의가 이뤄졌다며 성공적인 협상이라고 평가했다. 시민들은 놀랐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반발했지만, 이내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렇게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역사 문제는 종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양국의 분위기가 다르다. 한국에선 위안부 피해자 단체는 물론 보수개혁신당을 포함한 절대 다수의 야권에서도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반대로 일본에선 위안부 합의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외교적 성과를, 일본 정부와 언론이 이행을 촉구하는 모순적인 모습이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합의는 여전히 진통 속에 있다.

 

© 연합뉴스


이미 예고된 논란이었다. 합의 내용은 양국 정부가 각자의 입맛에 맞게 해석할 여지가 다분했다. 대표적으로 소녀상과 관련된 합의가 그렇다. 합의 문구에 소녀상 철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다만 소녀상에 대해 ‘일본대사관의 안녕과 위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면 된다’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문구가 있다. 일본 측은 소녀상 철거를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일본이 합의 이행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피해 당사자가 있는데 국가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를 내놓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작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이들을 지원해 온 단체는 합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스스로 저지른 범죄임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데 목적이 있다. 하지만 합의를 통해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범죄 사실을 시인하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해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 가해의 주체는 사라지고 없다. 누가 저지른 것인지 모르는 범죄에 일본군이 개입했을 뿐이다. 일본 총리의 사과도 정작 외무상이 발표했다. 피해자에게 직접 사죄한 것도 아니었다. 특히 아베 총리는 합의 이후 “피해자들에게 사과 편지를 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고 했다. 합의안에 따른 ‘대리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할 마음이 있었다면, 피해자들을 찾아가 무릎을 꿇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일본이 잃은 것은 10억 엔뿐이었다. 협상에 나섰던 일본 기시다 외무상의 발언이다. 1년 뒤 이 발언은 사실로 드러났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출연한 10억 엔으로 화해·치유재단을 만들었다. 생계가 어려운 생존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치유금’을 지급했다. 지원금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일자 한국 정부는 “배상금적 치유금”이라는 억지 표현까지 끄집어냈다. 한국이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대가로 받은 돈이라는 점은 피해 당사자들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망각에 대한 기억의 싸움

 

일본 정부의 태도는 합의 이후 더욱 강경해졌다. 약속대로 10억 엔을 출연했으니 소녀상을 철거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 세워지고 있는 소녀상에 대해서도 방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총리가 나서 사과를 한, 과거 범죄를 반성하고 있는 정부의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할 뿐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다시 협상해 달라고 해도 일본이 응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위안부 문제는 국가 간 협의를 거쳐서 결정된 것으로 연속성 있게 유지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국민이 원하는 ‘(일본이) 발가벗고 나오라’는 합의가 되면 제일 좋지만 합의는 상대가 있으니까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의 입장은 고려하면서도 피해자나 자국민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해야 한다는 응답이 일관되게 60%를 넘는데도, 이를 ‘감정적 대응’으로 간주하는 상황이다.

 

2015년 12월28일 한·일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문을 도출했다. © AP 연합

12월6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박숙이 할머니가 별세했다. 박 할머니는 “소녀상 아래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박 할머니를 포함해 2016년에만 7명의 위안부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다. 생존 피해자는 이제 39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가해자인 일본 정부로부터 진정 어린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전 세계를 누볐다.

 

1263차 수요시위에 참석한 참가자들은 위안부 합의에 대해 “잘못을 저지르고서 아니라고 우기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박근혜식 농단’의 전형”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범죄에 대한 인정과 사죄, 진상 규명과 교육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나비의 꿈’은 영원히 이어져야 하며, 우리의 행진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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